[문화매거진=정서원 작가] 제단화는 이미지가 신앙과 만나는 지점에 세워진 하나의 무대이자 시선을 제의의 질서 안으로 끌어들이는 장치다. 우리는 그것을 감상하는 동시에 일종의 의례에 참여한다. 감상자는 제단화 앞에서 보는 자이자, 목격자이며, 신의 이야기 속에 관여된 조용한 등장인물이다. 회화는 더 이상 독립된 이미지가 아니라 신성한 극의 일부가 된다. 이처럼 제단화는 르네상스와 중세 유럽의 교회 공간 안에서 감상자의 위치와 시선, 감정의 동선을 동시에 설계한 시각적 구조물이다.
서구 기독교 미술에서 제단화는 13세기부터 급속히 발전했으며, 특히 고딕 후기와 르네상스 초기에 다양한 개폐 구조를 갖춘 다면화(polyptych)의 형태로 정교하게 제작되었다. 초창기에는 정면에 단일한 성인을 묘사한 단일화(monopanel)가 많았지만, 이후 삼면화(triptych) 혹은 다면화 구조로 진화하면서 닫혔을 때와 열렸을 때 전혀 다른 서사를 보여주는 복합적 장치로 기능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이젠하임 제단화는 닫힌 상태에서는 십자가형과 성인의 수난이 강조되고, 날개를 열면 부활과 천상의 환영으로 전환된다. 감상자는 제단의 개폐를 통해 고통과 구원의 여정을 순차적으로 체험하게 되며, 이는 시각적 감상이 아닌 신학적 몰입의 형식이다.
제단화는 감정을 직접 전달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의 흐름을 구조적으로 설계한다. 감상자는 고정된 위치에 놓이고, 그 앞에서 장면은 개시된다. 닫힌 날개는 사건의 전제를 보여주고, 열린 구조는 절정을 드러낸다. 우리는 날개의 경계에서 ‘비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때의 시간은 현실의 연속된 시간이 아니라 신학적 시간, 즉, 구속사의 흐름이다. 그것은 비선형이지만 철저히 순차적이며, 감정은 이 안에서 절정으로 몰아간다. 감상자는 정면에 고정된 채 신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자신의 감정이 그 이야기의 일부가 되도록 훈련받는다.
무엇보다 제단화는 ‘열림’과 ‘드러남’이라는 사건 중심의 구조를 전제로 한다. 감상자는 그림을 보는 동시에, 제단의 안쪽에 숨겨진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자세로 존재하게 된다. 이 연출은 회화에 대한 시각적 호기심을 넘어선다. 그것은 ‘공간을 통해 사건을 전개하는’ 극적 장치이며, 감상자는 그 전개에 참여하는 일종의 증인이다. 예배의 공간 안에서 회화는 조용히 무대화되고, 보는 행위는 믿음의 서사에 동참하는 신체적 행위가 된다. 제단화는 그렇게 감상을 다시 믿음의 감각 안으로 밀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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