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원 아카이빙] 장면의 경계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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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원 아카이빙] 장면의 경계②

문화매거진 2025-06-27 09:54:1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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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원 아카이빙] 장면의 경계①에 이어 
 

▲ 8장의 편화 상태로 된 '화조도(민속24221)'(상)를 가상으로 장황 복원한 병풍(하) /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 8장의 편화 상태로 된 '화조도(민속24221)'(상)를 가상으로 장황 복원한 병풍(하) /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문화매거진=정서원 작가] 그림을 그리는 일보다 그것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더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동양화의 장황은 그런 방식으로 ‘보는 법’을 설계해왔다. 장황(裝潢)이란 단지 종이를 보존하고 장식하는 기술이 아니라, 감상자와 회화 사이의 관계를 공간적으로 배치하는 고유한 장치다. 그것은 회화를 하나의 장면으로 고정시키기보다 감상자 주변을 감싸며 시선의 방향을 결정하고, 감정의 리듬을 조율한다. 말하자면 장황은 회화가 설치되는 방식 자체를 회화의 일부로 만든다.

장황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족자, 축, 화첩, 병풍 등은 모두 장황의 일종이다. 이들은 단순히 형식이 다른 것이 아니라, 감상 방식과 시선의 흐름을 구조적으로 규정한다. 족자는 수직의 선상에서 정적인 응시를 유도하고, 화첩은 장면을 손으로 넘기며 천천히 읽는 감상의 흐름을 만든다. 그중에서도 병풍은 가장 극적으로 공간을 점유하며 장면의 분절과 감상의 이동을 유도하는 구조다. 병풍은 방 안의 공기를 나누고, 시선을 가르며, 이야기 없는 장면들 사이에 감정을 흘러가게 만든다.

조선 후기의 병풍은 특히 독립적인 회화 형식으로서 발달했다. 기록화, 문자도, 책가도, 화조도, 불화 등 다양한 주제가 병풍으로 표현되었고, 각 폭은 하나의 작은 세계처럼 독립적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결코 완전히 고립된 단편이 아니었다. 병풍은 접히고 펼쳐지며, 각 장면 사이에 리듬과 여백을 만들어낸다. 이는 단순한 배열이 아니라 감각과 의미의 순서를 재설계하는 행위다. 

▲ 남계우, '화접대련', 종이에 색, 121.2×28.2㎝ /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정해진 시작과 끝이 없기에 감상자는 어느 폭에서든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고 스스로 장면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그 자유로운 흐름 속에서 병풍은 감상자의 몸의 움직임과 함께 내러티브를 구성해나가는 동적인 회화가 된다.

무엇보다 병풍은 사적인 공간에 설치되는 예술이었다. 왕실의 의전 장치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거실의 정물처럼 존재했다. 사대부가의 방 안에 놓인 병풍은 꾸밈의 도구이자 사유의 배경이었다. 침묵 속에서 감정을 일으키고, 설명 없이 세계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병풍은 오늘날의 설치미술보다도 더 복합적인 시각적 장치였다. 그 장면들을 읽어내는 감상자는 말없이 스스로 감정의 간격을 체험하고, 시선을 유영시킨다. 병풍이 설계한 것은 하나의 이야기라기보다 시선의 흐름 그 자체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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