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대 부산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장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우분투추진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알제리는 아프리카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이집트에 이어 세 번째로 경제 규모가 큰 국가다. 게다가 석유와 천연가스, 인광석 등의 자원, 광활한 국토와 4천700만명의 인구,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지정학적 위치를 바탕으로 한 성장 잠재력은 오랫동안 대내외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2025년 5월 우리 정부는 알제리와 18년 만에 경제공동위원회를 재개하고 경제협력 확대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는 우리가 2006년 알제리와 맺은 '전략적 동반자관계' 이후 뜸했던 관계를 다시 복원해 신흥 시장 개발을 다시 가동하기 위함이다.
알제리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기 때문에 우리 기업이 진출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문제는 알제리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점이다. 또우리가 너무 알제리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알제리가 우리와 경제 관계를 재개하려는 의미를 다각도로 짚어보는 일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흔히 마그레브 국가 중 알제리는 모로코와 튀니지에 비해 외국인에게는 굳건히 문이 닫혀 있는 국가로 인식되고 있다. 알아서 온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알제리 입국에 호의적이지 않은 것이 일반적인 정서다. 이런 모습은 여전히 알제리를 폐쇄적인 국가로 인식하게 하고 접근을 어렵게 하고 있다.
알제리를 잘 알기 위해서는 '르 뿌부아르'(Le pouvoir)에 대해 잘 이해해야 한다. 프랑스어로 '권력'이란 이 뜻은 알제리의 정치적인 상황, 이에 따라 펼쳐지는 경제적인 정책까지를 이해할 수 있는 핵심적인 키워드다. 알제리와 관계를 재개하기에 앞서 지난 20년 동안 알제리에서 벌어진 일을 보면 알제리를 바라보는 시선을 새롭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알제리는 1962년 프랑스로부터 독립 이후 세계 무대에서 그리 잘 알려진 국가는 아니었다. 사회주의 시스템을 중심으로 독립운동 세대가 구성원인 민족해방전선(FLN) 주도의 정치 체제가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FLN은 이후 수십 년간 알제리의 정치와 권력을 독점했다. 초대 대통령 아흐메드 벤 벨라와 후아리 부메디엔 등 주요 지도자는 군부 출신이었다. 군이 정치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FLN은 1980년대 중반부터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서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또 관료주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팽배해졌다. 이러한 틈에 이슬람 세력이 사회 전면에 등장해 곳곳에서 활동했다.
구소련이 붕괴하면서 알제리도 사회주의 체제에서 다당제와 자본주의 체제가 도입됐다. 1989년 헌법 개정을 통해 치러진 1990년 지방선거에서 이슬람구국전선(FIS)이 압승을 거둬, 정치 주류로 급부상했다. 이에 군부는 1992년 1월 대통령을 해임하고, 선거를 무효로 한 후 FIS를 해산했다. 이후 FIS를 이어받은 이슬람무장세력(GIA)이 군부 정권에 투쟁을 선언하면서 알제리는 일명 '암흑의 10년'(Black Decade)이란 기간을 보냈다.
1999년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성장, 민주주의 제도 정착, 국민화합 정책, 외자 유치 등이 혁신적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군과 FLN 중심의 권력 구조는 깨지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2004년과 2009년에 이어 2014년까지 4선에 성공하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그는 임기 중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 연임 제한을 없애고 4선까지 가능하게 하는 등 권력 구조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재편했다. 그러나 20년 장기 집권을 하는 과정에서 오늘날 알제리 사회의 민낯을 볼 수 있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는 알제리에서 '르 뿌부아르'가 자리 잡고, 이를 통해 권력 체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알게 해줬다.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공과가 있지만 그의 업적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 점이다. 테러 집단이 창궐한 알제리에서 그의 대테러 정책은 국가 통제력을 회복했다는 의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재선 당선 해인 2004년 전후, 유가 상승과 석유·가스 수출로 경제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높은 에너지 의존도로 인해 경제 다각화 정책은 실패했다. 부정부패와 주택난, 사회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국민의 불만은 쌓여갔다.
여기에 더해 2005년 이후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서 국정을 돌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2014년 4선 당선 때부터는 휠체어에 의지해 살았다. 언론에 나와 연설 등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결국 실질적인 국정 운영은 동생 사이드 부테플리카를 비롯해, 부테플리카의 정치적 고향인 틀렘센과 독립운동 세대의 중심지 바트나가 '르 뿌부아르'의 핵심이 되면서 고위공직자 사회에 부패가 만연했다. 회전문 인사와 연고주의(nepotism)도 계속되면서 국민들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2019년 거동조차 불가능한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5선 출마를 선언하자, 국민 불만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알제리에서 민중 시위, 즉 '히락'(Hirak)이 발생했다. 거의 매 주말 전국 대도시를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가 확산했다. 결국 부테플리카는 임기 중 물러났다. 측근과 정경유착 세력 다수가 축출되거나 부패 혐의로 구속됐다. 부테플리카와 더불어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군참모총장이자 국방부 차관이었던 아흐메드 가이드 살라 또한 부테플리카와 같은 해 사망했다. 부테플리카 측근들인 군과 정보부 인사, 동생 사이드 등은 현재 수감 중이다.
2019년 12월 '히락' 시위대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무소속의 압델마지드 테분(Abdelmadjid Tebboune)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부테플리카 임기 내내 장관부터 총리까지 역임했던 그를 '히락' 시위대는 구시대 인물, 구태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한 것이다. 결국 투표율 39%, 득표율 58%로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민심, 특히 청년 세대는 그를 외면했다.
그가 '르 뿌부아르'를 다시 잡은 건 군과의 동맹에 힘입었다. 정확히는 군의 비호 아래 정권을 보장받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특히 그의 대통령 당선과 동시에 군참모총장으로 있던 사이드 쉥그리하는 대(對)모로코 강경 정책을 진두지휘하며 군부의 실세로 떠올랐다. 테분 대통령은 국가적 행사장이나 선거 유세 과정에서 늘 그를 대동하면서 '르 뿌부아르'가 여전히 군과 함께하고 있음을 알려줬다. 군의 존재감이 표면화되자 청년 세대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테분 대통령 치하에서 언론과 SNS 등의 단속이 더욱 강화됐다. 반체제 인사와 언론인이 상당수 체포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테분 대통령이 2024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하고 '르 뿌부아르'에 여전히 군림하고 있는 건 청년 창업 지원이나 실업 수당제 도입으로 반짝인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알제리 가스 수출이 호황을 맞으면서 경제 여건이 다소 호전된 것도 재선 성공의 요인이었다. 여기에 더해 대(對)프랑스, 대(對)모로코 강경 노선은 국민의 애국심을 자극하고, 그들을 하나로 모으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그의 재선 당선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국민들이 테분 정권에 냉소적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9월 대선에서 테분 대통령은 94.65%의 지지율로 당선됐지만 투표율은 23.4%로 알제리 선거 역사상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다. 군부가 절대적인 '르 뿌부아르'의 위상을 테분 정권과 드러내고 있고 정치·경제 구조 개혁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알제리는 북아프리카와 사헬(Sahel) 지역에서 위상 추락 등 외교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알제리는 2000년대 초반부터 실행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산업의 다각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계에 봉착해 있다. 현재의 '르 뿌부아르', 즉 권력은 한국을 어떤 방식으로 새 파트너로 대하려는지, 그리고 국내외의 거센 도전을 어떤 방식으로 헤쳐 나갈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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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기대 교수
현 부산외대 아프리카연구소장 및 중앙도서관장, 프랑스 파리7대학 박사(언어역사인식론), 저서 '베르베르문명', '7인 7색 아프리카' 외 다수. 한국프랑스학회장과 한국연구재단 인문한국(HK)3.0 과제 주관연구소 연구 책임자 겸임.
dlarle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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