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구상엽(사법연수원 30기) 변호사가 법무부 검사 시절 성년후견제도 도입을 위해 만난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그의 손을 붙잡고 하소연했다. 홀로 남겨질 자녀 걱정에 차마 먼저 눈을 감을 수 없다는 절절한 호소였다. 이 말에 가슴이 아파 현장을 뛰어다녔던 그는 제도 도입 후 “검사님 덕분에 이제 마음 편히 눈 감을 수 있게 됐다”는 감사 인사를 들었을 때 ‘검사 되길 정말 잘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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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소해도 평판 잃으면 끝…‘최적점’ 찾아야”
공익의 대표자로서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던 그는 지난 1월 법무부 법무실장(검사장)을 끝으로 21년간의 검사 생활을 마감했다. 그리고 로펌이나 기업으로 가는 대신 지난달 방배동의 조용한 이면도로에 연구실을 겸하여 자신의 이름 이니셜을 내건 ‘법률사무소’를 열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1부장, 반부패수사1부장, 공정거래조사부장 등 특수·공정거래 수사의 핵심 보직을 거친 검사장 출신의 홀로서기다. 그의 도전은 단순히 ‘변호사 개업’에 그치지 않는다. 구 변호사는 25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법률시장의 ‘불편한 진실’에 대해 지적하면서 그 구조를 바꾸려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고 밝혔다.
구 변호사는 “변호사의 최고 덕목은 ‘의뢰인의 이익(best interest)’”이라며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돈 때문에 의뢰인을 저버려서도 안 되지만, 의뢰인에게 궁극적으로 좋은 해법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궁극적으로 좋은 해법’이란 법정에서의 승패를 넘어선다. 그는 이를 ‘최적점(Pareto Optimum)’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구 변호사는 “사회적으로 큰 피해가 발생한 사건에서 기업이 대형로펌을 선임해 ‘전면전’을 벌여 재판에 이기더라도 평판을 잃는다면, 머지않아 쇠락할 것”이라며 “반면 법정 공방에 매몰되지 않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투자하며 소비자와 국가기관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기업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단기적 이익과 장기적 이익은 분명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백화점식 로펌 넘어설 ‘법률 주치의’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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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최적점’을 찾기 위해 구 변호사가 내세운 비전은 바로 ‘부티크 협업 모델’과 ‘법률 주치의(Legal Coordinator)’라는 역할이다. 그는 “지금 법률 시장은 의뢰인과 로펌 간 ‘정보 비대칭성’이 너무 크다”며 “의뢰인은 변호사를 선임하고 나면 그가 잘하고 있는지 검증할 방법 없이 끌려다니기 쉬운 일종의 ‘락인(Lock-in) 효과’가 발생한다. 비용은 비용대로 쓰면서 최적의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대리인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형 로펌들조차 내부 변호사 간의 치열한 수임 경쟁 때문에 같은 로펌 안에서도 협업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하물며 외부 전문가와의 협업은 더욱 어렵다는 진단이다. 그는 이 악순환을 깨는 열쇠를 ‘의뢰인’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구 변호사는 주치의가 환자 상태를 정확히 진단해 각 분야 최고 전문의들과 협력하듯, 의뢰인의 사건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단순히 사건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과 ‘최정예 드림팀’을 꾸려 실질적으로 협업하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그는 “미국의 글로벌 로펌들도 특화된 분야에서는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최고의 부티크 로펌과 협업한다”며 “우리나라도 의뢰인이 원하면 당장이라도 국내외 로펌과 전문가 간 협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울대에서 행정법(석사)과 민법(박사), 공정거래형사법(전문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하버드 로스쿨(LL.M)까지 거치면서 그는 늘 ‘일이 공부고, 공부가 일’이었다. 민사·형사·행정을 넘나드는 그의 다양한 연구와 실무 경험은 사건을 종합적으로 보고 다양한 전문가 네트워크를 연결해야 하는 ‘법률 주치의’ 역할에 큰 자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10여 년 전 “자식보다 하루만 늦게 죽고 싶다”던 부모의 손을 잡아주었던 검사는 이제 변호사가 되어 ‘정보의 비대칭성’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놓인 또 다른 약자인 의뢰인의 손을 잡으려 한다. 결국 구 변호사의 ‘법률 주치의’ 모델은 가장 필요한 곳에 최적의 도움을 제공하려는 그의 오랜 신념이 변호사로서 발현된 모습 내지 해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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