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지난해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해 전공의 집단 사직 등을 주도해온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이 물러나면서 의정갈등이 새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커졌다.
그간 박단 위원장은 정부와 대화를 통한 사태 해결 보다 강경 노선을 고수해 왔으나 새로운 지도부는 정부와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고려대학교의료원·서울대학교병원·서울아산병원·세브란스병원 전공의 단체는 지난 24일 이재명 정부에 대화를 제안한 상태다.
또, 차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이 지난 23일 대부분 수업에 복귀하면서 다른 미복귀 의대생들도 복귀를 희망하고 있다. 다만, 교육부가 5월말까지 수업에 복귀하지 않은 의대생에 대해서는 '학사 유연화' 조치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박단 "모든 직 내려 놓을 것"…강경 노선 변경 요구에 사퇴
박단 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24일 사퇴 의사를 밝혔다.
박 위원장은 24일 대전협 대의원, 대한의사협회 대의원들이 소속된 온라인 대화방 등을 통해 "지난 1년 반 최선을 다했지만 실망만 안겨드렸다"며 "모든 직을 내려놓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것이 내 불찰"이라며 "모쪼록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박 위원장은 지난 2023년 9월 대전협 회장으로 선출된 후 지난해 2월 윤석열 정부가 의대 증원 계획을 밝히자 반대 투쟁의 선봉 역할을 맡아왔다.
특히 정부와 대화를 통한 사태 해결 보다는 강경 노선을 고수해 왔다. 정부가 여러차례 특혜를 제공하며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복귀를 유도해 왔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던 중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면서 노선 변경 요구가 잇따라 분출됐다.
원광대병원 사직 전공의 30여 명은 지난 19일 박 위원장을 향해 "그간 전공의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날치기 의정 합의'가 없도록 노력해오셨을 비대위원장님의 노력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서도 "지금 대전협의 의사소통 구조는 누군가가 보기에는 우리가 비난했던 윤석열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같은 날 서울시 사직 전공의 200여 명은 9월 복귀를 희망한다는 내용의 의견을 모아 제출하기도 했다.
결국 24일 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세브란스병원 전공의 대표들이 "의정 갈등을 하루빨리 종식해야 한다"며 대전협과의 결별을 선언하자 박 위원장이 사퇴한 것으로 보인다.
4개 병원 전공의 "정부와 함께 해답 찾을 것"
이에 따라 주요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들은 새로운 비대위 구성에 나섰다.
김은식 세브란스병원 전공의 대표, 한성존 서울아산병원 전공의 대표, 김동건 서울대병원 전공의 대표, 박지희 고려대의료원 전공의 대표는 '새로운 비대위 구성의 건'을 위한 임시 대의원총회를 열겠다고 알렸다.
새롭게 구성되는 비대위는 정부와 대화와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고려대학교의료원·서울대학교병원·서울아산병원·세브란스병원의 각 전공의협의회 비대위는 24일 공동 성명을 통해 이재명 정부에게 의정갈등 해결을 위한 대화를 제안했다.
이들은 "무너진 의료를 다시 바로 세우고 싶다. 더 이상 전공의들을 명령과 처벌의 대상으로 삼지 말아 달라"며 "전공의를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동반자로, 의료를 책임질 전문가로 바라봐 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우리는 정부와 함께 해답을 찾을 준비가 돼 있다. 정부가 진정으로 의료 정상화를 원한다면 그 길의 시작은 신뢰와 협력일 것"이라며 "내일의 의료는 무너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정부에 △윤석열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료개혁 실행방안 재검토 △보건의료 거버넌스 의사 비율을 확대와 제도화 △열악한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과 수련 연속성 보장 등을 요구했다.
의료계도 정부와 대화를 위한 준비에 나섰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의대생과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복귀에 대한 입장, 의학교육 재개 조건 등을 묻는 인식 조사에 착수했다. 수렴된 의견은 정부와의 협상에서 교육과 수련체계 회복을 위한 명분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與 박주민·김영호-국힘 김용태, 전공의·의대생 면담
정치권도 전공의, 의대생과 만남을 가지며 사태 해결을 위한 노력에 힘을 보태고 있다.
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3일 대한의료정책학교 주최로 열린 '전공의·의대생에게 듣는 의료대란 해결 방안' 대담을 통해 전공의, 의대생들과 만남을 가졌다.
다음 날인 24일에는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과 김영호 교육위원회 위원장이 사직 전공의와 의대생을 만나 의료현장 복귀 방안 등을 논의했다.
원광대병원 사직 전공의 김찬규 씨는 전날 내부 공지를 통해 "늦은 저녁 국회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이번 면담에는 사직 전공의 둘과 24학번 의대생 1명이 함께했다"고 밝혔다.
김 씨는 "감정을 배제하고 현안 해결을 위한 실질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며 논의를 시작했다"며 "이미 윤석열 정부에 의해 의학교육과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기가 초래됐으며 이를 회복하기 위해 신뢰 기반의 구조가 필요하다는 데에도 뜻을 같이했다"고 설명했다.
차의전원, 의대생 대거 수업 복귀…타 의대생들도 복귀 희망
교육부 "학사 유연화 없다"…의대생 복귀 걸림돌
이미 의대생들 가운데 일부는 수업에 복귀하고 있다.
차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은 지난 23일부터 대부분 수업에 복귀했다. 차의전원은 앞서 학생 70여 명에게 제적 대상 통보를 하는 등 강경한 대응에 나섰지만 복귀 의사를 밝힌 학생들을 전격 수용하며 입장을 선회했다.
의대생 복귀는 다른 의대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경북대 의과대학은 오는 30일과 7월 1일, 예과생과 본과생을 대상으로 수업 정상화 관련 간담회를 열 계획이다. 학생 의견을 토대로 학사 정상화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여전히 대다수 의대는 본과생 복귀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정부가 '학사 유연화는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이 의대생 복귀를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 교육부는 수업에 복귀하지 않고 있는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5월 말까지 수업 참여를 촉구하며 기한을 넘길 경우 학칙에 따라 제적, 유급 조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구연희 교육부 대변인은 23일 정례브리핑에서 일부 의대생의 학사 유연화 요구에 대해 "해당 부서에 확인 결과 '학사 유연화는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전했다.
환자단체 "전공의·의대생, 복귀 앞서 사과·재발방지 약속부터"
환자 단체는 전공의, 의대생들의 복귀 움직임에 대해 대국민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부터 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23일 논평에서 "여전히 국민과 환자의 피해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는 찾아볼 수 없다"고 질타하며 "당신들이 떠난 그 시간, 환자와 국민은 어디에 있었는가. 단 한 번이라도 그 고통과 두려움에 공감했는가"라고 비판했다.
연합회는 "환자와 국민이 원하는 것은 반성과 사과, 그리고 책임 있는 자세의 복귀"라며 "정권이 바뀌었건, (대표) 단체가 침묵했건 그것은 본질이 아니다. 복귀 의사를 내비치기보다 먼저 국민 앞에 사과하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실천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국회에는 의료 공백에 따른 환자 피해 조사기구 발족, 진료 중단에 대한 보상제도 신설, 의료공백 재발 방지 특별법 제정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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