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에서 매듭으로 #1 | 마리끌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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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에서 매듭으로 #1 | 마리끌레르

마리끌레르 2025-06-25 11:02:36 신고

3줄요약
우먼스 파빌리온의 파사드.

두 시간을 날아 도착한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에는 한국과 사뭇 다른 열기가 감돌았다. 5월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뜨거운 날씨 때문이기도,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를 향한 기대감 때문이기도 했다. 이번 행사는 UN 공식 기관인 국제박람회기구(BIE)가 승인하고 운영하는 ‘월드 엑스포’의 일환으로,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1년 연기해 진행한 지난 2020 두바이 엑스포에 이어 4년 만에 개최됐다. 2020 두바이 엑스포에서 까르띠에는 엑스포와 협력해 사상 처음으로 여성의 업적을 기리는 단독 파빌리온인 ‘우먼스 파빌리온(Women’s Pavilion)’을 공개했다. ‘여성이 번영할 때 인류도 함께 번영한다(When Women Thrive, Humanity Thrive)’는 메시지를 내건 첫 번째 우먼스 파빌리온은 여성의 공헌을 되새기고 성평등의 현주소에 대한 논의를 이어갈 뿐만 아니라 현실적 장애물을 극복할 해결책까지 제시하며 세상에 긍정적 반향을 일으켰다. 오사카에 마련된 우먼스 파빌리온은 그 의의와 형태를 계승하는 것으로, 성평등을 지지하고 회복력 높은 사회를 이룩한 여성들의 기여를 조명하는 장으로서 존재한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가는 걸음까지 여성의 손길과 보이지 않는 힘이 관객을 맞이하며 이를 증명한다.

우먼스 파빌리온에서 가장 먼저 관객을 맞이하는 ‘당신의 이름’ 공간.

전시가 열리는 장소이자 그 자체로 예술품인 파빌리온은 건축가 나가야마 유코(Nagayama Yuko)의 작품으로, 못이나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조각을 짜맞추는 일본 전통 목공예 기술인 구미코(組子) 세공에서 영향을 받았다. 작은 유닛이 서로 얽히며 하나의 거대한 구조물로 탄생한 모습에서 ‘연대’를 형상화하고자 한 의도가 느껴지기도 했다. 파사드를 지나 입장하자 관람객이 이름을 말함으로써 단순한 게스트가 아닌 참여자로 거듭나도록 하는 공간, ‘당신의 이름’이 펼쳐졌다. 마이크에 이름과 목소리를 남기는 순간 본격적으로 전시가 시작되었고, 수단계 미국인 시인이자 활동가인 엠티탈 마흐무드(Emtithal Mahmoud), 일본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Yoshimoto Banana), 멕시코 출신 기후 운동가 시예 바스티다(Xiye Bastida)를 주인공으로 하는 3개의 문이 열리며 각 인물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세 갈래 길’이 나타났다. 이어 잠시 멈춤을 의미하는 ‘마’의 방에서 말없이 사유의 시간을 보낸 후 전시는 성평등과 관련한 전 세계의 데이터를 미디어 아트로 풀어낸 ‘퍼즐 박스’, 여성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애쓰는 여러 예술가들의 목소리가 담긴 ‘당신의 손’으로 관객을 인도했고, 이내 우리 모두의 일상적인 노력이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일깨우며 끝을 맺었다.

아름답게 꾸민 2층의 정원.

1층 전시에서 받은 감명을 뒤로하고 찾아간 2층에는 회복력과 변화, 그리고 여성의 끝없는 내적 힘이라는 테마를 공감각적으로 표현한 멜라니 로랑(Mélanie Laurent)의 전시가 마련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정원을 따라 다다른 ‘와 스페이스(WA Space)’에서는 ‘함께 성장하기: 더 밝은 미래를 위한 연대 구축’, 그리고 ‘삶을 바꾸는 힘, 전환적 자선 활동’이라는 제목의 두 대화 세션을 통해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어떠한 제도적 노력이 요구되는지 다양한 분야의 패널 간의 대담이 이어졌다. 그 후 마주한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다름 아닌 우먼스 파빌리온 개막식. 1천6백 명의 관객이 원형 구조의 강당에 둘러앉아 까르띠에 문화 및 인류애 프로젝트 의장 시릴 비네론(Cyrille Vigneron)을 비롯해 문화, 혁신, 사명의 중요성을 알리는 인사들의 연설을 경청했다. 개막식의 시작과 마지막을 장식한 공연 역시 청중에게 큰 울림을 안겼다. 영향력 있는 시인이자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 대사인 JJ 볼라(JJ Bola)는 꿈꾸고, 기억하고, 행동할 것을 촉구하는 시를 낭독했으며 일본 전통 북인 와다이코(和太鼓) 연주자, 청소년 솔리스트, 그리고 일본 및 국제 합창단과 함께한 안나 사토(Anna Sato)의 공연은 연대와 회복에 대한 집단적 의지를 음악으로 승화시킨 결과물이었다.

엠티탈 마흐무드, 요시모토 바나나, 시예 바스티다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세 갈래 길’의 입구.

이튿날, 사카이 공연아트센터에서 진행한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 (Cartier Women’s Initiative, CWI)’ 2025 어워드 시상식은 전날 못지않게 감동적이고 다채로운 이벤트로 가득했다. 방송인이자 성평등 운동가인 샌디 토크스빅(Sandi Toksvig OBE)이 특유의 유쾌함으로 식을 이끌어가는 가운데 일본을 대표하는 클래식 예술가 3인이 CWI를 위해 특별 작곡한 신작을 연주하며 막이 올랐고, 하이라이트인 시상 순서에는 총 9명의 여성이 무대에 섰다. 폐기되는 고무 소방 호스를 패션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엘비스 앤 크레시(Elvis & Kresse)의 크레시 웨슬링(Kresse Wesling)부 터 바나나와 대나무 섬유로 생분해 생리대를 만드는 기업 사티(Saathi)의 크리스틴 카게추(Kristin Kagetsu), 나무 10만 그루가 정화하는 양에 준하는 탄소 발생량 저감 결과를 이끌어낸 비비드 엣지(Vivid Edge)의 트레이시 오루크(Tracy O’Rourke), 독자적 플랫폼을 통해 평균 3시간 이상 소요 되던 케냐 내 응급 대응 시스템을 16분 수준으로 단축시킨 플레어(Flare)의 케이틀린 돌카트(Caitlin Dolkart), 유기물 분해 장치인 바이오디게스 터를 통해 인도 전역에 깨끗한 화장실을 보급한 반카 바이오루(Banka BioLoo)의 나미타 반카(Namita Banka), 태양광 기반의 정수 ATM을 설치함으로써 르완다를 포함한 아프리카 일대에 식수를 공급하는 이리바 워터 그룹(IRIBA Water Group)의 이베트 이심웨(Yvette Ishimwe), 아랍 내 읽기 빈곤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접근하기 쉬운 아랍어 교육 콘텐츠를 론칭한 리틀 싱킹 마인즈(Little Thinking Minds)의 라마 카이얄리(Rama Kayyali), 성폭력 피해 여성에게 긴급 구조 및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세이프 유(Safe YOU)의 마리암 토로스얀(Mariam Torosyan), 기술과 유통의 인프라를 결합해 농촌의 판매망을 혁신적으로 개혁한 에스마트 글로벌 (Essmart Global)의 재키 스텐슨(Jackie Stenson)까지. 자신만의 방식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여성들은 마리끌레르와 CWI, 그리고 이들이 공유하는 여성과 연대라는 키워드가 얼마나 큰 의미와 힘을 지니고 있는지 다시금 깨닫게 했다. “우리는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세대를 위한 길을 개척한 그들의 용기와 비전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들의 여정은 우리 모두에게 희망과 영감을 선사합니다.” 어워드 말미에 울 려퍼진 시릴 비네론의 전언 역시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마음을 맴돈다. 때로 우리는 스스로를 둘러싼 환경에 순응하기를 택한다. 그게 부조리이든 불합리이든 익숙해지고 나면 더 이상 불편할 게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오사카에 모인 9명의 여성, 그리고 CWI가 해를 거듭하며 후원해온 3백30명의 펠로우는 기꺼이 불편함을 견디기로 결정함으로써 실존한다.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한 칸의 ‘지정 주차 구역’을 단호하게 벗어난다. 이제 그들의 용기는 한 올로 태어나 연대를 통해 매듭이 됐다. 이 매듭이야말로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모두의 오늘을 몇 발짝 더 나아지게 만드는 실마리다. 니체는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은 과도기적 존재이며, 사회가 그은 틀을 벗어나 자신만의 삶의 이유를 찾아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니체의 바람은 어쩌면 이런 이들을 두고 남긴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리끌레르 코리아는 CWI 어워드 시상식에 올해로 두 번째 동행했다. 까르띠에가 오로지 ‘선의를 위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 이어온 이토록 진심 어 린 지원을 목도하며 느낀 깊은 공감과 책임감이 독자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며, 프로그램을 6년간 지휘해온 CWI 글로벌 프로그램 디렉터 윈지 신 (Wingee Sin)과 나눈 짧은 대화를 전한다.

연대와 회복을 노래한 피날레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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