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국내 대기업 총수들의 경영 실적 성적표가 나왔다.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이 매출, 순이익, 고용 등 핵심 지표에서 여전히 1위를 지킨 가운데,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영업이익 부문에서 사상 처음 삼성의 아성을 무너뜨리며 만만치 않은 강자로 부상했다.
한편, 크래프톤과 고려에이치씨 등 일부 비(非)전통 제조업 중심 그룹이 수익성 및 성장성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전통적 재계 구도에 균열을 예고하고 있다.
기업분석 전문기관 한국CXO연구소(소장 오일선)는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공시대상기업집단 중 공정자산 5조원 이상 92개 그룹 총수를 대상으로 총 13개 항목의 경영 성적을 분석한 결과를 25일 발표했다.
▲삼성, 3대 부문 독주…영업익 800%↑에도 SK에 근소한 차로 밀려
이재용 회장이 총수로 있는 삼성그룹은 지난해 국내 계열사 기준 전체 매출(399조6362억 원), 당기순이익(41조6022억 원), 고용(28만4761명) 등 3개 핵심 항목에서 1위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그룹 전체 매출은 11.3%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2조8564억 원에서 27조352억 원으로 846.5%나 뛰어 13개 항목 중 가장 큰 폭의 실적 반등 중 하나로 평가됐다.
그러나 그룹 영업이익 부문에서는 최태원 회장이 이끄는 SK그룹(27조1385억 원)에 불과 0.4% 차이로 밀리며 2위를 기록했다. 이는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보다 약 9조원가량 더 높은 21조3314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것이 결정적 요인이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삼성SDI의 실적 감소도 영향을 미쳤다.
▲최태원 회장, ‘순익 증가율 2689%’ 폭풍 성장…재계 새 질서 예고
SK는 삼성의 뒤를 이어 그룹 총수 경영 평가에서 확실한 반전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SK 전체 순익은 18조3595억원으로, 전년(6582억 원) 대비 무려 2689.1%나 증가했다. 이는 전체 조사 대상 중 가장 높은 순익 증가율이다.
영업이익도 27조1385억원으로 전년(3조8841억원) 대비 598.7% 증가했으며, 매출 역시 205조6752억원으로 삼성, 현대차에 이어 3위에 올랐다. 특히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부문의 실적이 폭발적으로 개선되며 그룹 전체 수익성을 견인했다.
▲정의선 회장, 실적 ‘안정적 우상향’…영업익은 3위
정의선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은 전체 매출(292조1195억원), 당기순익(23조7712억원), 고용(20만3915명)에서 3개 부문 모두 삼성에 이어 2위를 유지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8% 증가한 18조5333억원으로 SK와 삼성에 밀려 3위로 내려앉았으나, 자동차 본업 중심의 꾸준한 성장 기반이 재확인됐다.
▲크래프톤, 수익성 지표 '절대 강자' 입증…넥슨·빗썸도 강세
영업이익률과 순이익률 두 항목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한 곳은 장병규 의장이 이끄는 크래프톤이었다. 크래프톤은 지난해 매출 2조7512억원, 영업이익 1조2083억원을 기록하며 43.9%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 순익률도 50%에 달해 수익 구조의 질적 우위를 입증했다. 뒤이어 빗썸홀딩스(전 이정훈 의장)와 넥슨(유정현 이사회 의장)이 각각 2~3위를 차지하며 디지털 플랫폼 기반 기업들의 수익성이 부각됐다.
▲고려에이치씨·SM그룹, 증가율 부문서 '숨은 강자'로 부상
해운업계의 부상도 눈에 띈다. 박정석 회장이 이끄는 고려에이치씨그룹은 지난해 영업이익 증가율이 무려 1450.3%에 달하며 증가율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적자였던 고려해운이 4000억원 이상의 흑자로 돌아섰고, 지주사 고려에이치씨도 실적이 급반등했다. SM상선과 대한해운 등을 거느리고 있는 SM그룹도 영업이익이 1조561억원으로 전년 대비 1034.1% 증가하며 2위를 기록, 비제조 기반 그룹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개인 생산성 지표 1위는 미래에셋·신영·엠디엠
총수 1인당 실적 항목에서는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이 1인당 매출 36억3500만원으로 1위를 기록했다. 엠디엠 문주현 회장은 1인당 영업이익(9억4100만원)에서 선두를 유지했고, 신영그룹 정춘보 회장은 1인당 순익(6억1500만원)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문 회장은 지난해 4개 항목 1위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다소 주춤한 성적이다.
▲구광모 회장, 매출 외 소득 지표 전반적 부진…적자 탈출 ‘숙제’
반면, 구광모 회장이 이끄는 LG그룹은 매출은 전년 대비 3.6% 증가한 140조2076억원을 기록했지만, 영업손익과 순익 모두 적자를 기록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2년 연속 영업적자(-3861억 원→-5328억 원), 순익도 순손실로 전환되며 LG로서는 의미 있는 경영 반등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번 경영 성적표는 단순한 순위 경쟁을 넘어, 반도체·자동차·디지털 콘텐츠 등 각 산업군의 수익 구조 변화와 함께 총수들의 전략적 판단력이 실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준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삼성이 영업이익 부문에서 2년 연속 1위를 놓친 상황에서, SK가 반도체 호황을 지속하며 왕좌를 수성할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라며 “2025년에는 글로벌 시장 환경과 기업별 신성장 동력 투자 성과가 명확히 갈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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