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K-팝이 전 세계 음악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가운데, 일본과 중국도 본격적으로 음악 산업의 플랫폼화에 뛰어들고 있다. 더 이상 아시아 음악 시장은 단순히 인기 곡이나 스타를 배출하는 경쟁이 아니다. 이제 싸움의 무대는 팬덤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조직하고, 그 열정을 어떻게 유통하고 수익화하는 플랫폼 구조를 갖췄느냐로 옮겨졌다. 아시아 음악 플랫폼 전쟁은 지금, 콘텐츠가 아닌 시스템의 우위를 두고 벌어지고 있다.
한국, ‘완결형 플랫폼 시스템’으로 독주
한국은 이미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등 개방형 글로벌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팬덤 확장과 더불어, 위버스와 같은 독자 생태계 구축으로 이를 실현하고 있다. 일
현재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한국이다.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등 개방형 글로벌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K팝 플랫폼은 단순한 콘텐츠 유통을 넘어서, 글로벌 팬덤을 형성하는 핵심 통로로 작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본 아티스트들마저 한국 음악 방송 출연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노리는 현상이 늘고 있다. 이는 K팝이 단순히 장르가 아닌, ‘글로벌 진출 시스템’ 자체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하이브(HYBE)가 운영하는 글로벌 팬덤 플랫폼 위버스(Weverse)와 같은 독자 생태계도 구축하고 있다. 위버스는 단순한 팬 커뮤니티를 넘어 ‘음악-소통-굿즈-공연-데이터 분석’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올인원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위버스의 구조는 팬과 아티스트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게시판, 라이브 방송 기능(Weverse LIVE), 콘텐츠 구매, 굿즈 쇼핑몰(Weverse Shop), 유료 멤버십 시스템까지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 이러한 통합형 플랫폼은 단순 스트리밍 플랫폼이 아닌, 팬의 감정과 소비를 모두 품은 ‘슈퍼팬 생태계’를 가능하게 한다.
위버스는 아티스트에게도 강력한 지원 도구다. 어떤 나라의 팬이, 어떤 시점에, 어떤 게시물이나 콘텐츠에 반응하는지까지 데이터를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어, 투어 일정, 언어 번역, 상품 구성 등도 전략적으로 계획할 수 있다. 유튜브·인스타그램 같은 개방형 SNS와 연동되면서 팬 유입도 지속적으로 이뤄진다. K-팝이 단순한 장르를 넘어 글로벌 콘텐츠 유통 시스템 자체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일본, 내수 중심에서 ‘아시아 허브’로 방향 전환
한편 일본은 세계 2위의 음악 시장이라는 거대한 내수를 기반으로 전통적으로 피지컬 앨범과 콘서트 중심의 음악 문화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런 폐쇄적인 구조는 글로벌 팬과의 연결고리를 약화시켰고, 유튜브나 스포티파이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한 스타 탄생의 속도에서도 뒤처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정부와 음악계는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2025년 5월, 교토에서 열린 ‘뮤직 어워즈 재팬 2025’는 일본이 아시아 음악 허브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도였다. 영어 진행, 다국적 후보 노미네이트, 글로벌 팝스타 초청을 통해 일본 음악의 ‘외부 노출’ 기회를 확대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구조적인 한계는 여전히 존재한다. 일본의 대표적인 스트리밍 플랫폼인 라인 뮤직(LINE Music)은 메시징 앱 기반으로 사용자 간 음악 공유, 스티커 기능 등 지역 기반 소셜 확장에는 강하지만, 글로벌 팬덤 통합이나 커뮤니티 시스템은 부족하다. 팬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커머스와 연동해 수익을 창출하는 플랫폼 경쟁에서는 위버스나 중국의 텐센트뮤직보다 한 발 느린 셈이다.
대형 기획사 LDH는 동남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태국 GMM Grammy와의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으며, 아시아 시장 전체를 연계하는 흐름을 만들려 하고 있다. 하지만 플랫폼적 기반보다는 콘텐츠 교류나 공연 중심 확장이 핵심이라는 점에서, 일본이 ‘플랫폼 강국’으로 자리잡기 위해선 보다 깊은 디지털 전환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따른다.
중국, A팝 프레임으로 플랫폼 블록화 시도
중국은 다르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스포티파이 등 주요 글로벌 플랫폼이 차단되어 있는 환경은 단점이지만, 동시에 ‘자체 플랫폼 중심의 폐쇄형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중국은 이 틀 안에서 A팝(Asia Pop)이라는 새로운 프레임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K팝, J팝, 중국 음악을 하나의 ‘아시아 음악’ 장르로 묶고, 이를 자국 플랫폼 중심으로 확산시키려는 시도다. A팝이라는 묶음 속에서 인구수 기반 투표, 국수주의적 마케팅을 앞세워 아시아 음악 시장의 주도권을 노리는 셈이다.
대표적인 중국 플랫폼 텐센트뮤직(Tencent Music Entertainment)는 QQ뮤직, 쿠거우, 쿠워 등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합하고 있다. 이들 플랫폼은 음원 감상은 물론, 팬과의 소통, 실시간 댓글, 음원 투표, 실시간 랭킹 등 다층적 기능을 제공하며, 수억 명에 이르는 사용자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 추천 시스템도 도입 중이다. 다만 이 모든 구조는 중국 본토 사용자에게 최적화돼 있어, 외국인 접근은 여전히 어렵다.
웨이보를 중심으로 한 ‘팬덤 응원 문화’는 콘텐츠 소비를 넘어 정치적·사회적 메시지 전달 수단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과거 애니메이션 영화 나타투의 흥행처럼, 애국주의적 소비 캠페인이 음악 산업에도 적용돼, 특정 아티스트에 대한 단체 소비 운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플랫폼 자체의 영향력보다는, 국가 주도의 콘텐츠 마케팅과 결합된 독특한 생태계라고 할 수 있다.
미래 트렌드: AI·메타버스·토큰 이코노미와 융합하는 플랫폼
음악 산업은 이제 ‘콘텐츠의 시대’에서 ‘팬덤의 시대’를 거쳐, ‘플랫폼의 시대’로 진화하고 있다. 단순히 노래가 좋아서 듣는 시대는 지났다. 팬들이 얼마나 오래 머무르고, 얼마나 자주 소통하며, 어떤 방식으로 음악과 아티스트를 소비하는지 그 ‘소비 여정’을 설계할 수 있는 플랫폼이 곧 산업 경쟁력의 핵심이다.
아시아 음악 플랫폼 경쟁은 앞으로도 빠르게 진화할 전망이다. 단순한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벗어나 인공지능(AI), 메타버스, 인터랙티브 팬 경험을 결합한 신개념 플랫폼으로의 전환이 핵심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결국 이 전쟁의 승자는 단순히 스타를 많이 배출한 국가가 아닌, 음악을 ‘시스템’으로 완성한 국가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음악 콘텐츠와 아티스트 자체뿐 아니라, 팬덤이 오랫동안 머무르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플랫폼 내 다양한 소비 행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설계된 ‘생태계’를 구축하는 곳이 글로벌 시장의 중심에 설 것이다.
플랫폼 경쟁은 앞으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맞춤형 콘텐츠 추천, 메타버스 기반 가상 공연과 팬미팅, 블록체인과 NFT를 활용한 팬 주도형 경제 모델 등과 결합하며 진화할 전망이다. 팬들의 참여와 소통, 콘텐츠 생산에 AI와 가상공간 기술이 융합되면서 음악 소비 경험은 더욱 다채롭고 개인화될 것이다.
이처럼 ‘플랫폼이 곧 산업 경쟁력’인 시대, 아시아 각국은 음악을 단순한 예술을 넘어 문화 영향력의 첨병이자 글로벌 경제 자산으로 삼기 위한 치열한 전략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knewscor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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