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문영서 기자】 정부의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사회적 약자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안전망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빈곤 탈출을 위한 자립 시도가 오히려 수급 삭감으로 돌아와 현 제도가 자립을 돕는 게 아니라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자소득 발생하면 수급액 삭감...‘빼앗긴’ 자립 시도
25일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국민기초생활수급자 수는 약 255만4627명, 의료급여 수급자 수는 약 151만7041명으로 집계됐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률은 2017년 3.1%에서 꾸준히 상승해 지난 2023년 4.9%를 기록했다.
현재 기초생활수급자가 예금이나 적금 등으로 소액의 이자소득을 얻으면, 해당 금액이 소득인정액에 포함돼 생계급여 등 수급액이 삭감된다. 2025년 기준 월 2만원을 초과하는 이자소득은 모두 급여 산정에 반영된다.
이 때문에 수급자들은 소액의 금융소득조차 ‘수급액 삭감’이라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오히려 자립을 위한 저축과 금융활동이 위축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의 이자소득을 깐깐하게 소득인정액에 반영하기 시작한 것은 2016년 3월부터다. 이전까지는 연간 2000만원을 초과하는 이자소득만 급여 평가에 반영했고, 2000만원 이하는 자진 신고할 경우에만 포함됐다. 그러나 2013년 감사원이 “부정수급 방지를 위해 2000만원 이하 이자소득도 적극적으로 급여 평가에 반영하라”고 권고했고,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3월부터 보건복지부가 월 1만원을 초과하는 모든 이자소득을 생계급여에서 차감하는 조치를 도입했다.
이후 수급자들이 저축이나 적금 만기 시 발생하는 이자소득 대부분이 생계급여에서 삭감되면서, 저축의 보람을 느끼기도 전에 지원금이 줄어드는 역설적인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실제로 저소득층을 위한 고금리 적금상품에 가입한 수급자들이 이자소득이 발생하자, 오히려 수급액이 줄어드는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해당 부분에 대한 정부의 정보 제공, 안내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이자소득이 수급액에서 공제된다는 사실도 모른 채 예·적금에 가입하는 수급자들도 있다.
빈곤사회연대 정성철 사무국장은 “주민센터에서 안내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사실상 그런 안내가 되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라며 “적금을 드는 게 돈을 모으는 것도 있지만 이자가 생활에 조금 더 보탬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인데 그런 경험(수급액 삭감)을 한 번 겪고 나시면 그냥 입금하지 말라는 말이라고 느끼고 미래를 계획하기 어려워하다가 또 단념하게 되는 상황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나중을 생각해서 장기간으로 가입하기 때문에 총금액은 적더라도 이자가 비교적 많이 나오는 경우들이 있어서 사실상 그런 경우에 삭감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충남대 경제학과 정세은 교수는 “돈을 모으고 싶어도 급여가 삭감될까봐 돈을 모으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자소득이 너무 높으면 문제지만 노년층과 같은 수급자들은 노동이 불가능할 때를 대비해서 저축을 해야할 수도 있기 때문에 관계기관 등에서 수준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원에서 자립으로’ 패러다임 전환 시급
정부의 현금 지원은 단기적인 생계 안정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수급자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소액 금융소득에 대한 과도한 삭감은 저축과 경제활동 의욕을 저해한다. 장기적으로는 수급자들이 근로와 저축을 통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일정 한도 내 이자소득에 대한 비과세 또는 삭감 유예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단순한 현금 지원을 넘어, 수급자들이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현실에 맞는 정책 개편을 통해 기초생활수급자들이 지원에 의존하는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과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자소득 등 소액 금융소득에 대한 수급액 삭감 기준을 완화하거나, 자립을 위한 저축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정 사무국장은 “제도 안에 탈수급·탈빈곤을 위한 장치들이 많이 마련돼 있어야 하는데 있던 장치조차 없애는 문제를 계속 지적하고 있으나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며 “근로소득 공제 같은 경우도 실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가진 대상을 중심으로는 확대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이어 “지금의 제도를 당사자들이 평가할 때 수급자가 되기도 어렵고 수급자로 살기도 어렵고 수급에 갇힌 삶을 살게 된다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명지대 경제학과 우석진 교수는 “인플레이션이 심한 상황에 맞게 실제 기본공제를 유지시킬 수 있도록 명목공제를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로소득공제 확대나 재산공제 확대 등은 수급자 선정 기준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어, 급여 수급액이 늘거나 더 많은 가구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근로소득공제 등이 확대되면 일을 해도 급여가 줄어드는 부담 역시 줄어 근로 의욕 상승에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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