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김종효 기자] 국내 페인트 업계가 전통적인 도료 시장 한계를 넘어 이차전지(배터리) 소재 분야로 속속 진출하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페인트 기업들이 건설·자동차 등 기존 주력 시장이 경기 침체와 성장 둔화에 직면한 가운데 전기차와 신재생에너지 시장 급성장세에 힘입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행보를 취하고 있다.
해당 기업들은 수십 년간 축적한 도료·코팅 기술을 바탕으로 배터리 안전성, 내구성, 효율을 높이는 첨단 소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노루페인트는 최근 이차전지 및 수소에너지용 첨단 신소재 6종 양산에 성공했다. 대표 제품인 ‘배터리용 몰딩제’는 배터리 내외부 충격을 흡수하고 셀 사이 공간을 메워주는 난연제로 화재 위험을 줄이고 구조적 안전성을 높인다.
고온·고습 환경에서 배터리 셀의 부식을 방지하는 ‘ESS용 우레탄 난연폼’ 등도 상용화했다. 노루페인트는 이 밖에 바인더(접착제), 몰딩제, 갭필러, 난연폼, 코팅제 등 다양한 이차전지 소재를 이미 시장에 선보였다.
노루페인트의 강점은 기존 건축·산업용 내화도료에서 쌓아온 난연·내열 기술을 이차전지 소재에 접목했다는 것이다. 노루페인트는 2011년부터 전자소재 연구개발을 시작해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배터리·수소연료전지 소재 개발에 투자해왔다. 최근에는 이차전지 모듈과 셀 접착제 사업에서 수익을 내기 시작했으며 향후 소재 라인업을 확대해 종합화학회사로의 도약을 목표로 한다.
노루페인트 관계자는 “이차전지와 방산, 실리콘, 친환경 바이오 등 핵심 소재 영역의 기술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화페인트 역시 이차전지 소재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배터리 내 전자 이동을 최적화하는 첨가제, 방열·차열 보호 소재, 전력 인프라 보호 특수도료 등 첨단 제품을 상용화했다.
이 중 방열·차열 보호 소재는 배터리 작동 중 발생하는 열을 효과적으로 제어해 성능 저하와 화재 위험을 줄인다. 이 소재는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다양한 응용 분야에 적용될 전망이다.
삼화페인트는 전기차 충전소, 송전탑, 변전소 등 전력 인프라를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특수도료 솔루션도 개발했다. 이 특수도료는 내구성과 절연성이 뛰어나 전력 인프라의 안정성과 수명을 극대화한다. 최근에는 이차전지용 전해액 첨가제 제조공법 특허를 취득하고 리튬이온 이차전지의 수명을 늘릴 수 있는 전해질 첨가제 개발에도 성공했다.
삼화페인트 관계자는 “지속가능한 이차전지 라이프사이클 구축을 목표로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자체 기술을 접목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조광페인트는 이차전지 분리막 업체인 에너에버배터리솔루션에 내열바인더를 납품하며 소재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내열바인더는 전기차 이차전지 분리막에 적용돼 기계적 강도와 내열성을 크게 개선한다. 기존 바인더 대비 내열 성능과 코팅성이 우수해 분리막의 안정성과 배터리의 전체 수명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조광페인트는 자회사 CK이엠솔루션을 통해 방열 접착소재, 우레탄·에폭시·실리콘 기반 제품 등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며 이차전지용 소재 시장에서 주도권을 강화할 계획이다.
또한 강남제비스코는 자회사 강남화성을 통해 이차전지 파우치용 접착제, 과열 방지 방열소재 등 신제품을 개발 중이다. 2022년에는 한국전기연구원과 ‘고용량 리튬 이차전지용 양극 바인더 기술’ 도입 계약을 체결하며 기술 경쟁력을 확보했다.
이같은 움직임의 배경에는 건설경기 침체로 인한 기존 시장의 수익성 저하가 있다. 도료 원료의 수입 의존도와 원자재 가격·환율 변동성도 페인트 업계의 사업 안정성을 위협해왔다. 이에 따라 페인트 업체들은 기존 도료 개발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고 중장기 성장성이 높은 이차전지 소재 분야를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것이다.
시장조사회사 SNE리서치는 전기자동차 이차전지 시장이 2025년 1960억달러에서 2030년 4010억달러, 2035년 6160억달러로 연평균 10%대 고성장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최근 전기차 수요가 일시적으로 주춤한 캐즘 국면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성장 흐름이 견조하다는 평가다.
수익성 다각화도 기업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노루페인트는 이차전지 소재 양산화에 성공해 관련 사업에서 수익을 내기 시작했으며 삼화페인트와 조광페인트도 각각 배터리 첨가제, 내열바인더 등에서 상용화 실적을 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페인트업계가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 도료와 접목 가능한 화학물질을 광범위하게 연구해온 덕분에 도료 외 화학사업으로의 확장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애도 기존 도료 기술을 고도화해 배터리 안전성, 내구성, 효율을 높이는 신소재 개발에 더욱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차전지 소재 시장에서의 성과가 본격화된다면 업계의 수익구조 다각화와 종합화학회사로의 전환도 가속화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관계자는 “기존 도료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이차전지 소재라는 새로운 블루오션에서 ‘비장의 무기’를 꺼낸 것”이라며 “축적된 기술력과 시장의 성장성을 바탕으로 신규 진출한 페인트 기업과 기존 기업 간의 이차전지 소재 시장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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