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츠금융그룹은 빠르고 효율적인 자본집행 모델의 대명사로 주목받아왔다. 그러나 올봄 홈플러스 회생절차를 기점으로 ‘위험 분산’ 전략의 실효성을 묻는 시험대에 올랐다. 1조2000억원에 달하는 홈플러스 관련 대출은 단일 자산군 중심 담보모델의 리스크, 회생절차 내 채권 회수 현실성, 사회적 파장까지 복합적 이슈를 담고 있다. 본보는 이를 통해 국내 금융시장에서 드러난 구조적 리스크와 메리츠의 투자모델에 생긴 균열을 심층 분석하고 메리츠의 현황과 향후 과제까지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지난 10년간 자본시장과 투자은행(IB)업계에서 메리츠금융그룹은 가장 눈에 띄는 존재였다. 보수적 관성에 머물던 국내 금융업권에서 메리츠는 과감한 투자와 속도감 있는 의사결정으로 시장의 판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최근 이런 성장 공식은 예기치 못한 복합 리스크 앞에서 시험대에 올랐다. 딜 이름은 ‘홈플러스’, 판돈은 1조2000억원이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메리츠금융그룹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홈플러스에 총 1조2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대출 형태로 공급했지만, 현재 해당 대출에서 발생해야 할 이자 수익조차 지급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2024년 이후 홈플러스 영업 부진으로 인한 이자 미수와 자산 매각 지연 등으로 인해 메리츠의 현금 흐름이 악화되면서 그룹 전체 재무상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메리츠금융그룹 전체 IB 자산 집행 중 약 12%가 홈플러스 딜에 집중된 점은 그룹 차원의 자산 안정성 문제와 직결되는 사안으로 평가되고 있다.
연쇄출자 구조의 명암…성장 엔진이 위기의 뇌관으로
‘원메리츠’ 체제의 핵심은 계열사 간 자본 이동의 자유로움이다. 2022년 말 지주사 체제 전환 및 완전 자회사화를 통해, 증권이 발굴한 딜에 캐피탈, 화재가 동반 투자하는 등 그룹 전체가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 이 구조는 평상시에는 단기 수익 극대화와 자본 효율성 측면에서 강점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메리츠금융그룹은 2023년 연결 기준 약 2조300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업계 최고 수준의 수익성과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 같은 연쇄출자 구조는 위기 상황에서는 그룹 전체로 리스크가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는 치명적 약점도 내포한다. 2024년 부동산 PF 부실에 이어, 2025년 홈플러스 사태까지 겹치면서 메리츠의 시스템 리스크가 현실화됐다는 평가다.
특히 메리츠캐피탈은 부동산 PF 부실과 홈플러스 부담이 동시에 작용하며 유동성 및 자산건전성 지표가 악화됐다. 이에 따라 2025년 상반기 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가 단행됐고, 이 과정에서 메리츠증권 등 그룹 내 계열사로부터 자본 지원이 이뤄졌다. 메리츠캐피탈의 사례는 연쇄출자 구조의 취약점이 현실화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메리츠화재 역시 부실등급 유가증권 비율이 업계 최고 수준으로 상승하고, 대규모 후순위채 발행을 통해 자본확충에 나서는 등 건전성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이는 연쇄출자 구조의 직접적 영향은 아니지만, 그룹 내 복수 계열사에서 동시에 건전성 지표가 악화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임을 보여준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계열 금융사 간 자금 순환 구조는 법적으로 문제는 없지만, 출자관계 내에서 자금을 주고받는 방식은 리스크가 연쇄적으로 확산될 수 있어 지양해야 한다”며 “예상치 못한 부실이 발생할 경우, 그룹 전체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공격적인 투자를 병행할수록 위험은 커진다”고 경고했다.
선택이 아닌 필수의 함정… 홈플러스 회생 동의
한편 메리츠금융그룹은 지난 18일 홈플러스의 회생계획 인가 전 인수합병(M&A)에 동의하는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메리츠금융그룹 관계자는 “홈플러스의 인가 전 M&A에 반대하지 않는다. 홈플러스와 대주주의 강도 높은 자구책을 지켜보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자구책 이행을 지켜보겠다는 신중한 입장이지만, 실제로는 법적 구속력, 사회적 책임, 자산건전성 부담 등 복합적 압박 속에서 회생절차에 협력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한계가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채무자 회생법상 법원이 강제 인가를 내릴 수 있어, 메리츠가 회생계획에 반대해도 실익이 크지 않다는 점이 지목된다. 만약 담보권을 행사해 점포를 처분할 경우 대량 실업과 협력업체 파산 등 사회적 파장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했다.
아울러 홈플러스 대출이 그룹 자산의 12% 내외를 차지하는 만큼, 회수 실패 시 그룹 전체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압박 속에서 메리츠가 회생 동의에 나선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분석이 금융권 안팎에서 제기된다. 실제로 이번 사태는 단순 투자 실패를 넘어 그룹 전체 시스템 리스크 현실화와 금융권의 투자·리스크 관리 관행 전반에 변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평가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건의 투자 실패가 아니라, 그룹 전반적인 시스템 리스크가 현실화된 결과로 보인다”며 “단기 수익에 집중한 공격적 투자 전략이 장기적 안정성과 사회적 책임과 충돌할 수 있음을 보여 준 사례”라고 짚었다.
이어 “실제 금융권 전반에서 대형 딜 사전 심사 강화, 리스크관리위원회 전면 가동, 단독 투자 한계 인정 및 공동 투자 확대, 계열사 간 자금 지원 한도 설정, 딜 간담회 전 리스크 평가 기간 확대 등 구조적 개편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