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금융에 무게를 둔 제4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이 지연될 전망이다. 새 정부에서 금융위원회가 조직개편 타깃이 되고 배드뱅크 설립이 구상되고 있어서다.
예비인가를 승인해야 하는 금융위는 해체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해체되지 않는다 해도 조직을 정비한 후에야 제4인뱅 인가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발표된 추가경정예산안에는 배드뱅크 추진 관련 내용이 포함됐다. 배드뱅크 설립으로 제4인뱅은 새 정부가 추진하는 과제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 있다.
새 단장 나선 정부…금융당국 대대적 개편 가능성
이달 중 나올 예정이던 제4인뱅 예비인가 심사결과가 밀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검토 과정에서 각 컨소시엄에 서류 보완을 요청한 부분도 있지만 최종 결정권을 가진 금융위부터가 해체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아직 금감원 외부평가위원회 심사 일정도 정해지지 않은 데다 금융위도 지난 13일 후속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혀 앞으로의 진행도 미지수다.
후보 시절부터 금융위를 개편하겠다고 밝혀 온 이재명 대통령은 당선과 함께 본격적으로 조직개편 준비에 들어갔다. 지난 16일 출범한 국정기획위원회는 금융위를 해체하고 금융감독위원회를 신설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금감위가 금융감독 정책을 총괄하고 산하에 금감원‧금융소비자보호원을 두는 방향이다. 그간 금융위가 맡았던 금융산업정책 기능은 재정경제부로 이관하는 식이다.
이외에도 금융당국은 새 수장 준비와 정책 변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 제4인뱅에 대한 주요 결정을 내리는 일이 조심스러울 거란 게 업계 시각이다. 금융당국 조직 안정화가 우선이란 얘기다. 당장 금융감독원장 자리만 해도 2주가 넘도록 공석이다. 이복현 전 금감원장이 지난 5일 퇴임한 뒤 이세훈 수석부원장이 권한대행을 맡고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7월 선임돼 임기가 남았지만 이전 정부 인사로 분류되며 교체설이 나오고 있다. 금융위원장이 대통령에게 제청해 세우는 금융위 산하 기관장들도 공석만 세 곳이라 어수선한 분위기다. 금감원장을 비롯해 산업은행 회장, 서민금융진흥원장이 공석이며 윤희성 수출입은행장은 내달, 신용보증기금 최원목 이사장은 오는 8월 임기가 종료된다.
제4인뱅보단 배드뱅크 먼저
배드뱅크 추진도 본격화되면서 사실상 제4인뱅 설립은 뒷전이 됐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재명표 배드뱅크’ 설립에 관한 내용이 담긴 제2차 추가경정예산안이 의결됐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제4인뱅 지연은 불가피하단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앞서 대선 공약 중 하나로 ‘장기소액연체채권 소각 등을 위한 배드뱅크 설치’를 든 바 있다. 국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오는 9월 코로나19 대출 만기를 앞둔 상황을 염두에 둬서다. 배드뱅크 관련 예산은 8000억원으로 추정되며 이중 절반은 금융권에게 지원받을 계획이다. 지원 대상은 빚이 7년 이상, 5000만원 이하인 개인 자영업자를 비롯한 금융 취약계층이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 19일 국무회의를 열고 2차 추경안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가동하기로 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출자하는 배드뱅크 곧 채무조정 기구에 해당한다. 배드뱅크는 장기간 회수 못한 부실 채권을 저가에 인수‧정리하는 전문기관이다.
본 프로그램은 배드뱅크가 금융사로부터 일괄적으로 장기 연체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이후 해당 채권은 즉시 추심중단되고 소득‧재산심사를 거친 후 소각 또는 채무조정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정부는 해당 정책을 통해 취약차주 113만4000명이 부담하는 연체채권 약 16조4000억원을 소각할 수 있을 거라 추산했다.
제4인뱅 향방은
제4인뱅 인가 심사 일정이 미지수이긴 하지만 백지화되기보다는 결국 출범할 거란 전망에 무게가 쏠린다. 제4인뱅 설립은 금융시장 내 경쟁 촉진, 금융소외계층 포용, 디지털 전환 가속화 측면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취약계층에 대한 중금리대출 전문 인터넷은행 추진’과도 방향이 맞물린다.
금융업계에서는 이르면 오는 8월, 늦으면 10월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예비인가가 발표되려면 먼저는 금융위 조직 개편과 금융정책국장의 인사, 배드뱅크 구체안이 확정돼야 한다는 점에서 내년 상반기라는 의견도 나온다. 내달까지 금융위 내부를 정비하고 배드뱅크 로드맵이 확정될 경우 오는 8‧9월엔 예비인가 심사 결과가 발표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세종대학교 경제학부 김대종 교수는 더리브스 질의에 “현 상황은 금융위의 정책방향 조정, 또는 정권 말기 국정 과제 선정의 우선순위 변화 등 정치적 요인에 기인한 지연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제4인뱅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무리”라며 “출범은 지연될 수 있으나 중단 가능성은 낮다”고 언급했다.
이화여자대학교 경영학과 채상미 교수는 더리브스와 통화에서 “(제4인뱅이 추진되려면) 장‧차관급 인사 섭외와 금융위 구조개혁이 진행되고 은행관리감독과 제도 관련 컨트롤타워가 명확히 돼야 할 것”이라며 “빠르면 연말 혹은 내년까지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편 새 정부가 들어서며 추가로 추진되는 소상공인전문은행이 제4인뱅 형태로 실현되지 않겠냐는 의견도 나온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18일 국정기획위원회에 소상공인전문은행 설립에 관한 계획을 보고했는데 이는 금융포용성과 관련해 제4인뱅과 맞닿는다는 점에서다. 다만 중기부는 보고내용을 함구하고 있어 어떤 형태일지는 지켜봐야 한다.
이와 관련 채 교수는 “재무제표도 신용평가체계를 개편해서 소상공인에게 추가적인 신규대출을 공급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라며 “정부의 추경 방향과도 나름 일치하고 있어 민간과 연계된 인뱅 형태로 제공하는 것도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양하영 기자 hyy@tleav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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