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안중열 기자] 중동발 불안이 유가·환율·금리를 동시에 압박하는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은 외교 무대가 아닌 국정 본진에 남았다. 다자외교의 대표 무대인 나토 정상회의가 열리는 와중에도 출국하지 않았다. 외교적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였지만, 대통령은 ‘어디에 있는가’를 통해 리더십의 기준을 새로 설정했다. 외교보다 위기, 상징보다 실익을 택한 선택은 단순한 외교 유보가 아닌, 구조적 통치 방식의 전환 선언이다.
◇중동발 위기, 삼중 압박…통제력이 먼저였다
이재명 대통령의 결정은 지정학과 경제, 그리고 국내외 복합 리스크를 염두에 둔 선택이었다. 그러나 진짜 배경은 정책 통제력 확보다.
미국의 정밀 타격 이후,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 해협은 전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30%, 한국 수입 원유의 70% 이상이 지나는 전략 요충지다. 봉쇄가 현실화되면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고, 원가 상승과 물가 불안, 내수 위축이 동시에 발생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유가 상승은 수입물가 인상을 유발하고, 이는 원화 약세로 직결된다. 환율 불안은 금리와 자산시장으로 번지며 실물경제와 금융을 동시에 흔든다. 이중고가 아닌 ‘삼중 복합 위기’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 위기는 단기 처방으로는 관리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다. 대통령의 현장 리더십은 단순 상징이 아니라 실질적 시장 안정 신호”라고 말했다.
◇나토 회의, 명분은 충분했지만 실익은 불확실
나토 회의는 한국 외교의 상징 무대 중 하나다. 그러나 이번 회의는 외교적 딜레마만 낳은 형식적 외유에 가까웠다.
미국은 회의에서 이란 규탄 공동성명을 주도했다. 한국이 이에 동참하면 이란과의 에너지 협력 채널이 손상된다. 한국은 중동 원유·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이란은 제재 해제 이후 원유 수입을 재개한 주요 공급처였다. 반대로 공동성명에서 거리를 두면 ‘한미 동맹 이탈’이라는 정치적 공세에 휘말릴 수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번 회의에서 한국이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낼 공간은 거의 없었다. 실질 외교 성과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였다”고 밝혔다. 게다가 바이든 대통령의 불참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정상회담 성사도 불확실했다.
◇성과 중심 실용외교로 전략 전환…‘외교 유보’가 아니다
대통령의 나토 불참은 외교 회피가 아니라 전략 재설계의 신호다. 대통령실은 “다자 외교보다 양자 중심, 선언보다 성과 중심 외교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한국 외교는 공급망·기후변화·에너지 안보 등 전략 산업과 직접 연계된 실용 외교로 재편된다. 미국 대선을 앞둔 불확실한 외교 지형에서, 상징적 무대보다 실익 중심의 정교한 외교 전략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제 외교는 형식이 아니라 구조”라며 “외교도 산업 전략처럼 정밀하게 설계돼야 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은 외교 컨트롤타워 역할까지 직접 조정하며 방향성을 재설계하고 있다.
◇취임 후 첫 수보회의 직접 주재…정책 컨트롤타워로 이동
이재명 대통령은 외교 일정보다 국내 위기 대응 체계의 통합을 선택했다. 23일,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수석·보좌관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회의는 에너지 수급, 금리·환율 대응, 금융시장 안정, 외교 전략 조정 등 경제안보 전반을 다뤘다.
그 전날에는 위성락 안보실장을 중심으로 경제·안보 통합 점검회의가 열렸다. 이는 단일 부처 중심 위기 대응에서 전면 통합형 거버넌스 체계로 전환된다는 신호다.
대통령은 각 부처의 단편적 대응을 넘어, 국정 중심축을 통합 정책 실행으로 조정하고 있다. 위기 대응 방식도 ‘지시’에서 ‘실시간 조정’ 체제로 진화하고 있다.
◇정상회담보다 수보회의…‘어디에 있었는가’로 말하는 리더십
이재명 대통령은 외교적 존재감 대신 위기 대응 현장에 머무르며 리더십을 재정의했다. 정상회담보다 수보회의, 국제무대보다 국내 지휘를 택한 결정은 단순한 ‘불참’이 아닌 리더십 방식의 근본 전환이다.
국민은 발언보다 행동, 행동보다 ‘위치’를 통해 대통령을 평가한다. 이번 결정은 ‘외유보다 국익, 의전보다 통제, 외교보다 기반’을 선택한 통치 철학의 변화다.
대통령의 이번 행보는 위기를 통제하는 리더십, 정책 컨트롤타워로서의 대통령제를 강조하는 동시에, 실익 중심 국정 운영의 구조적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22일 서면브리핑에서 “산적한 국정 현안에도 불구하고 적극 검토해온 끝에, 이번에는 직접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단순한 일정 조정이 아닌, 국정 우선, 실익 중심 판단이라는 메시지를 공식적으로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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