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를 걷다 보면 초가을 바람 속에 은은한 향과 함께 핀 하얀 들꽃이 눈에 들어온다. 언뜻 보면 흔한 들국화처럼 보이지만, 이 식물은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종 ‘울릉국화’다. '울릉 구절초'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 식물은 노화 억제 효능이 과학적으로 밝혀져 기능성 작물로 사용되고 있다.
울릉도에만 자라는 ‘기능성 국화’
울릉국화는 국화과에 속한 다년초로, 다른 국화류와 달리 해풍과 건조한 환경에 강하다. 울릉도의 화산토, 다습한 공기, 맑은 일조량 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외지에서 재배는 거의 불가능하다. 현재까지 확인된 자생지는 울릉도 일대가 전부다.
꽃은 흰색으로 9월 말~11월 초에 핀다. 군락을 형성해 가을철에는 해안 절벽이나 고지대 평원에서 장관을 이룬다. 울릉군 북면 나리분지에 조성된 울릉국화 군락지는 섬백리향과 함께 천연기념물 제52호로 지정돼 있다.
울릉군에선 이 식물을 기능성 고부가가치 작물로 발전시키기 위한 품종 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 울릉군농업기술센터는 2015년부터 울릉국화 품종을 개량해 총 10종 이상의 신품종을 개발했고, 이 가운데 ‘무릉’, ‘삼봉’, ‘울도’, ‘울동’, ‘울서’ 등은 이미 품종보호 등록을 마쳤다. 품종 보호법에 따라 이들 품종은 향후 20년간 독점 재배권이 보장된다. 농가 소득 창출을 위한 기반도 마련된 셈이다.
세포 노화를 억제하는 천연 소재로도 쓰여
농촌진흥청은 울릉국화가 그저 지역 식물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했다. 2016년 공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 피부 세포에 노화를 유도하는 독성물질을 처리한 뒤 울릉국화 추출물을 투여했을 때, 최대 61%까지 세포 노화가 억제됐다. 추출물의 농도에 따라 억제 비율은 34.8%, 46.3%, 61.1%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또한 울릉국화는 ‘활성 산소’ 억제 효과를 가진다. 활성 산소는 세포 손상과 직결되는 요소로, 노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울릉국화 추출물을 투여한 그룹에선 활성 산소 생성이 60.4%까지 줄었다. 이런 수치는 일반 항산화 식물에서 나타나는 효과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연구 결과는 특허 출원까지 이뤄졌다. 울릉도에 자생하는 식물이 ‘노화 억제 천연 소재’로서 산업적 가능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울릉군은 울릉국화 차, 비누, 샴푸 등의 특산품 개발을 완료했고, 농가 보급도 시작했다.
울릉도의 효자 '울릉국화'
울릉국화는 염색재로도 쓰인다. 흰 꽃에서 추출되는 색은 의외로 엷은 회색에서 연보라까지 나올 수 있다. 천연 소재 사용이 필요한 수공예 시장에서 각광받는 이유다.
또한 국화류의 강한 생명력은 농업적 가치도 크다. 울릉국화는 병충해에 강하고, 기후 스트레스에도 잘 견딘다. 재배 수명도 길어 관리 부담이 적다. 울릉군에서는 이를 기반으로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작물’로도 육성 중이다.
울릉국화 관련 연구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울릉군농업기술센터는 매년 품종 안정성과 추출물 효능 검사를 하고 있다. 신품종 확대와 함께 생산 기반도 정비돼, 향후 국내외 기능성 소재 시장에서 독자적인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식물 하나로 만들어낸 울릉도의 생물 주권
울릉국화는 울릉도 안에서도 귀한 존재로 여겨진다. 울릉도는 전체가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무분별한 채취나 판매는 불법이다. 하지만 지역 농업기술센터와 농가의 협업을 통해 품종화된 울릉국화는 ‘울릉도에서 태어나 울릉도에서 자란 식물’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산업화가 가능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이는 지역 고유 식물에 대한 유전자원을 보호하고, 지역이 스스로 생물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든 사례다. 울릉국화가 자생식물로서, 천연기념물로서, 고부가 작물로서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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