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지난달 14일 부산 부산진구 서면 젊음의 거리에서 열린 유세에서 권기흥 에이치라인해운해상직원노조 위원장과 해양수도 부산 협약서에 서명한 후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충청권 핵심 기능이 통보식 이전 시도와 정책 후순위 배치의 연속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 지시에 이어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천문연구원의 경남 사천 이전 시도, 국회 세종의사당과 제2집무실 추진 지연까지 이어지는 흐름은 충청권이 국가 균형발전 전략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키우고 있다. 공론화 없는 기능 이동은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를 훼손하기 마련인데 충청권은 논의 없이 결과만 통보받는 형국이다. 반발은 확산됐고 전략 없는 정책 결정에 대한 구조적 불신이 싹을 틔우고 있다. 정책은 힘으로 밀어붙일 수 없다. 균형발전은 정권에 따라 흔들려선 안 되는 백년대계인 만큼 새 정부 들어 최근의 혼선은 전략 수립 초기 단계에서의 기획 부족이나 조율 미비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동시에 충청권 스스로의 전략 부재도 거론된다. 어떤 기능을 수용하고 어떤 역할을 맡을지에 대한 구체적 비전이 부족한 채 반대만 이어지는 대응은 설득력 측면에서 한계를 보일 수 있다는 평가가 그렇다.
◆정책 테이블 밖의 충청권
지난 9일 최민호 세종시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해수부 부산 이전 지시 직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충분한 논의 없이 내려진 조치다”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단순한 반발이 아니라 충청권 전체의 배제감과 위기의식을 반영한 대응이었다. 이 대통령이 행정수도 완성을 공약한 상황에서 핵심 부처의 이전은 세종시 입장에선 상징 훼손이자 약속의 자기 부정과 같다. 더 큰 문제는 이 결정이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됐다는 점이다. 행정 비효율과 막대한 이전 비용, 형평성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충청권이 결정 과정에서 소외됐다는 점은 절차적 정당성 측면에서 결코 가볍지 않다. 반면 타 지역은 이 대통령 공약 실현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충청권에겐 예고 없는 배제, 타 지역에겐 약속 실현이라는 이중적 상황은 정책의 무게 중심이 어디로 기울었는지를 보여준다.
◆연구기관도 사천행?
해수부 논란이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대전이 기능 이전 위기에 직면할 뻔했다. 국민의힘 서천호 국회의원(경남 사천·남해·하동군)이 항공우주청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항우연과 천문연의 주된 사무소를 사천으로 이전하겠다고 명시하면서다. 연구기관 이전 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국회 동의 절차조차 삭제한 이 법안은 말 그대로 법을 고쳐가면서라도 대전의 핵심 과학기술 기관을 가져오겠다는 노골적인 시도였다. 충청권은 즉각 반발했다. 법안에 이름을 올렸던 같은 당 성일종 의원(충남 서산시·태안군), 박덕흠 의원(충북 보은·옥천·영동·괴산군), 엄태영 의원(충북 제천·단양군) 등은 비판 여론이 커지자 공동 발의에서 빠졌고 서 의원은 결국 법안을 거둬들였다. 과학기술계도 즉각 반발했다.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항우연지부는 “그럴 바엔 우주항공청을 세종으로 옮기라”며 맞섰고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도 대전 내 우주청 연구개발본부 신설 필요성을 제기하며 맞불을 놨다. 대전을 중심으로 한 과학기술 융·복합 생태계의 지속성과 국가 전략의 일관성을 가늠하는 시금석이라는 절박함의 발로다. 다만 이런 문제 제기가 설득력을 갖기 위해선 충청권 스스로의 전략적 시야도 요구된다는 조언도 나온다.
권선필 목원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무조건적인 반대는 전략의 부재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충청권은 어떤 기능을 수용하고 어떤 역할을 설계할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멈춰 선 行道 프로젝트
해수부와 항우연 논란에 이어 행정수도 세종을 둘러싼 과제들도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과 대통령 제2집무실 설치는 문재인정부에서 본격 추진됐으나 이재명정부에선 아직 뚜렷한 신호조차 잡히지 않는 상황이다. 이 대통령이 대선 당시 임기 내 추진을 약속했지만 현재는 용산 대통령실의 청와대 복귀 문제가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세종은 뒷전으로 밀렸기 때문이다. 세종시는 국정기획위원회를 통해 행정수도 완성을 국정과제로 반영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과연 새 정부 정책 기조에서 이 과제가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할지는 불투명하다. 행정수도 완성은 충청권에 상징적인 국가 균형발전 전략이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정책 일관성보다 선별적 지역공약 이행이 우선되는 상황에 대한 회의감이 커지는 까닭이기도 하다.
◆공동 대응하지만
정책 결정에서의 소외가 이어지자 충청권은 공동 대응에 나섰다. 지난 19일 세종시에서 열린 4개 시·도지사 조찬 회동에서 이장우 대전시장, 최민호 세종시장, 김태흠 충남지사, 김영환 충북지사가 해수부와 과학기술 기관 이전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다. 이들은 “충청권이 다시 중심축에서 밀려나는 걸 좌시하지 않겠다”며 초당적 대응을 예고했다. 정권 교체 후 여당 소속 단체장들이 야당 지방정부가 되며 중앙정부를 향한 견제 목소리가 커진 점이 흥미로운 가운데 각 시·도의회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대전시의회는 해수부 이전 반대 건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고 세종시의회는 행정수도완성특별위원회를 통해 국회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세종집무실 설치를 국정과제로 포함할 것을 연일 촉구 중이다. 충남도의회와 충북도의회 역시 중앙부처 기능 이전 움직임에 공동 대응하며 공조 의지를 드러냈다. 다만 외형적인 공조에 그칠 뿐 구체적인 대응 전략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는 건 한계로 꼽힌다.
◆균형발전 전략… 일관성 관건
최근 충청권을 둘러싼 현안들은 국정 운영에서의 일관성 부족, 그로 인한 지역 간 신뢰 훼손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균형발전은 정권을 초월해 추진돼야 할 국가적 과제지만 최근 정부의 결정은 단기 공약 중심의 편향된 운영으로 비춰지고 있다. 지역 주민 삶과 국가 행정 효율성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충청권의 반발은 단순한 지역 이익이 아니라 국가 전략 붕괴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초당적 합의와 전략적 연속성이 국가 운영의 기초가 돼야 한다는 점에서 새 정부 정책 방향은 중요한 시험대에 올랐다. 육동일 한국지방행정연구원장은 “이재명정부의 균형발전 전략은 아직 구체적인 기획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5극 3특 같은 원칙은 존재하지만 실행 가능한 청사진이 아직 부재하고 정책 결정이 정치적 힘의 대결로 흐르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충청권이 중앙의 전략 테이블에서 배제되는 현실은 이제 지역 이슈를 넘어 국가 운영 철학에 대한 근본적 질문으로 확장되고 있다. 균형발전은 모두를 위한 성장 전략이다. 지금 필요한 건 충청권을 포함한 소외된 지역을 다시 정책 중심에 올려놓고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전략적 설계와 제도적 기반을 확보하는 일이다. 이재명정부가 그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지 충청권 전체가 주시하고 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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