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정부가 2020년부터 시행해 온 고효율 가전 보조금 정책을 올해도 재개했지만, 실질적인 전력 절감으로 이어지기엔 한계가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거용 수요 반응(DR) 시스템이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어 반복되는 지원책이 기술 기반의 에너지 관리로 충분히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에너지공단은 에너지소비효율 1등급 가전제품에 대한 환급 정책을 다시 운영했다. 소비자는 구매 금액의 10%, 최대 30만 원까지 환급받을 수 있으며 대상 품목은 TV·냉장고·세탁기·에어컨·건조기·김치냉장고·공기청정기 등 7종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고효율 제품 보급 확대’와 ‘전력 소비 절감’을 핵심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제도 설계상 구조적인 한계도 지적된다. 환급액은 구매 금액의 10%로 일률 적용되다 보니 제품 가격이 높을수록 환급액도 커지는 구조를 띠고 있어서다. 중저가 고효율 제품보다 프리미엄 제품 소비가 유리해져 제도가 특정 가격대 소비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나온다.
유통 시장은 환급 정책에 맞춰 관련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롯데하이마트는 SNS를 통해 고효율 가전 구매 시 정부 환급 외에도 추가 혜택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공지했다. LG전자 베스트샵 관계자는 “최근 더운 날씨와 정부 환급 정책의 영향으로 에너지효율 높은 제품에 대한 문의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김 모 씨는 “고효율이라길래 냉장고를 바꿨는데 실제로 절전이 되는지는 체감이 안 된다”며 “전기요금도 별 차이 없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고효율 건조기를 구매한 50대 소비자도 “기대했던 환급 혜택과 실구매 가격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정부는 1등급 고효율 제품의 시장 점유율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며 정책의 긍정적 효과를 강조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에너지 소비 효율은 연평균 1.6% 개선, 가정 에너지 사용량은 연평균 0.4%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서울YWCA의 설문에서는 전기요금 인상 이후 76.4%의 응답자가 여전히 ‘요금 부담’을 호소, 이 가운데 67.8%는 절감을 위해 별도 절약 행동까지 실천 중이라고 답했다. 수치상 절전 효과는 있었지만, 고효율 제품 도입만으로는 절감 체감이 크지 않다는 반응도 제기된다.
전력 수요를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기술 인프라도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지능형 전력계량기(AMI)의 주택용 보급률은 약 54%로 정부가 설정한 보급 목표에 미치지 못했다. DR 제도도 산업·상업용 중심으로 운영, 주거 부문에서는 실시간 전력 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제어가 아직 시범사업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주택 전기요금이 고정 단가로 책정돼 있어 시간대별 요금제, 실시간 요금 연동제 등 DR 유인을 제공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때문에 에너지 소비자가 수요 반응 시스템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유인이 떨어지고, 전력 사용 데이터를 축적할 기반도 부족한 실정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DR 기술을 에너지 시스템 유연성과 회복력을 강화하는 핵심 수단으로 보고 있다. 프랑스는 상업용 고객을 대상으로 시간대별 요금제를 적용해 최대 16%의 절전 효과를 얻었고, 미국과 유럽 주요국들도 실시간 요금 연동제와 참여형 DR 시스템을 확산하고 있다.
DR 확산이 전제되는 환경은 실시간 요금제, 소비자별 데이터 축적 인프라, 전력 요금에 따른 인센티브 체계가 삼위일체로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 의견이다. 하지만 한국은 구매 단계 보조금에 집중하는 구조에 머물러 있어 전력 사용 단계에서 작동하는 관리 시스템은 주거 부문에서 아직 시범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
에너지 정책 한 전문가는 “주거용 DR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제도 개선과 소비자 참여 모델 정비가 시급하다”며 “반복되는 소비 유도 정책이 기술 기반 없이 이어질 경우 지속성과 실효성 모두에서 한계가 뚜렷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조금은 단기적 구매를 자극할 수 있지만, 실사용 데이터를 반영한 수요 관리 체계가 없다면 정책 효과는 일회성에 그칠 수 있다”며 “구매 유도에서 그치지 않고, 전력 사용 단계까지 연결되는 종합적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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