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정부가 전 국민에게 15만~50만 원 상당의 소비쿠폰을 지급하기로 했다. 지급 방식은 현금이 아닌 지역사랑상품권, 선불카드, 신용·체크카드 충전금 형태로 이르면 7월부터 지급이 시작되고, 8월 중으로 마무리된다. 명칭은 ‘민생회복 소비쿠폰’. 코로나19 이후 세 번째로 시행되는 전국 단위의 보편적 소비 지원정책이다.
정책의 목적은 명확하다. 가라앉은 내수를 끌어올리고, 지역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실질적인 매출 증진 효과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쿠폰은 ‘지원금’이라기보다 ‘소비 유도형 쿠폰’에 가깝다. 현금이 아닌 만큼, 생계비나 채무 상환이 아닌 실제 소비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다.
과거 사례를 보자. 2020년 1차 긴급재난지원금 당시 가장 많은 소비가 일어난 업종은 ‘마트·식료품’이었다. 외출이 제한됐던 탓에 외식보다 가정 내 소비에 집중됐고, 이로 인해 소고기, 생필품, 간편식 등에서 일시적인 수요 폭증 현상이 나타났다. 농촌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당시 재난지원금은 고소득층일수록 더 많이 지출됐으며, 그중에서도 소고기 소비가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지원금은 소비를 자극했지만, 고소득층이 더 큰 수혜를 본 셈이다.
그렇다면 2025년 현재는 어떨까. 외출과 여행, 외식이 자유로운 지금은 당시와는 소비 양상이 다를 수밖에 없다. 대면 소비가 늘어나고, 음식점과 여가·문화 분야 지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지출이 얼마나 ‘지역 경제’로 흘러갈 수 있느냐다. 정책이 유효하기 위해선 쿠폰의 사용처가 실제 소상공인 매장에 집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국민들은 "어디에서 쓸 수 있느냐"는 질문에 갸웃거린다.
사용처 제한이 여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상황을 보면 백화점, 대형마트, 복합쇼핑몰, 면세점, 유흥업소,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했다. 프랜차이즈도 직영점은 제외됐다. 편의점이나 음식점이라 해도, 가맹점이 아니면 쿠폰 사용이 막혔다. 지역화폐의 경우, 연매출 30억 원 이하 매장에서만 쓸 수 있는 등 기준은 더 까다로웠다.
이쯤 되면 ‘어디서 쓰느냐’보다 ‘쓸 수 있기는 한가’에 대한 불안이 커진다. 소비를 강제할 순 없지만, 소비자의 선택권이 지나치게 좁다면 소비 자체가 무력화될 수 있다. 심지어 실효성 논란으로 정책에 대한 신뢰마저 흔들릴 수 있다.
정부는 ‘소상공인 보호’라는 명분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진짜 소비는 심리에서 비롯된다. 국민들이 쿠폰을 손에 쥐고 ‘쓸 데가 없다’고 느낀다면, 쿠폰은 현금보다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사용처 확대, 배달앱·온라인 플랫폼과의 제한적 연계, 소멸기한 완화 등 유연한 정책 보완이 시급하다. 쿠폰이 한낱 ‘지역화폐 실적용’이 아니라,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 회복의 출발점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보다 정교한 설계와 세심한 조율이 필요하다.
소비는 정부가 강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정부는 소비의 ‘조건’을 만들 수 있다. ‘어디서 쓸지 고민이다’라는 말이 ‘이 돈이 진짜 도움이 된다’는 말로 바뀌는 날, 비로소 이번 소비쿠폰은 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knewscor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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