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 회장이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 행사장에 마련된 SK 전시관에서 유리기판을 살펴보고 있다. |
SK그룹이 인공지능(AI)을 중심축으로 한 ‘제4의 퀀텀 점프’에 본격 나섰다. 이동통신(1994년), 반도체(2012년)에 이어 AI 중심 산업재편을 가속화하며 울산에 국내 최초의 하이퍼스케일 AI 데이터센터(AI DC)를 세운다.
최태원 SK 회장이 직접 주도한 이번 행보는 단순한 기술 투자를 넘어,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는 ‘첨단 미래산업 육성’ 기조와 맞물리며 정치·경제 양측에서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AI 시대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재계 2위 그룹의 야심이 본격 현실화되는 가운데, SK의 전면에 선 최 회장의 ‘정무 감각’과 ‘기술 통찰력’이 동시에 시험대에 오르게 된 셈이다.
국내 첫 'AI 클라우드 요새', 울산에 상륙
SK는 6월 20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아마존웹서비스(AWS), 울산시와 함께 ‘울산 AI DC 건립 협약식’을 열고, 국내 최대 규모의 AI 전용 데이터센터 건립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지난 2023년 말, 그룹 경영전략회의에서 AI 및 반도체를 향후 투자 핵심축으로 천명한 지 약 1년 만에 이룬 첫 성과다.
특히 이번 울산 AI DC는 단순한 데이터센터를 넘어, AI 반도체(HBM), 냉각 전력 시스템, 친환경 에너지 등 미래 인프라의 집약체로 평가받는다. AWS의 기술 요구를 충족한 이 센터는 오는 2027년 가동을 목표로 하며, 약 7만8000명 이상의 고용 창출 효과가 기대된다.
건설 및 운영에는 SK텔레콤, SK브로드밴드, SK하이닉스, SK가스 등 주요 계열사들이 총출동한다. SK하이닉스는 초고속 AI 연산을 뒷받침할 HBM 등 메모리 기술을 제공하고, 통신 계열사는 구축 및 운영을 책임진다. 에너지 계열사들은 냉각·전력 인프라를 맡아 AI DC의 지속가능성을 강화한다.
"기술과 정치를 넘나드는 리더십"... 최태원, 빅테크 외교도 '진행형'
이번 AI DC 추진의 배경에는 최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자리한다. 그는 지난해 SK AI 서밋과 CEO 세미나 등에서 “AI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고 강조하며 “SK는 AI부터 반도체, 에너지까지 전 분야를 아우르는 드문 기업”이라 선언했다.
최 회장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대표 빅테크 리더들과도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와의 연쇄 회동을 통해 SK의 글로벌 위상을 다지는 외교전을 병행해왔다.
이는 ‘첨단기술 자립’을 내세운 이재명 정부의 방향성과도 맞닿아 있다. SK의 AI DC는 기술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현 시점에서 ‘산업 안보 자산’이자, 한미 경제동맹의 실질적 지렛대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정부의 정책적 후속 지원이 어떻게 뒤따르느냐에 따라 SK의 계획도 크게 좌우될 전망이다.
‘울산발 AI 르네상스’… 지역 성장·국가 경쟁력 동시 노린다
울산은 SK가 주목한 첫 AI DC의 무대다. 제조업 중심 도시인 울산에 AI 인프라가 들어서면, 스마트팩토리·디지털 트윈 등 첨단 제조 혁신이 본격화될 수 있다. 이는 지역 산업 생태계의 체질 개선은 물론, 전국적인 AI 혁신 거점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AI 스타트업과 빅테크 기업의 유입, 지역 대학·연구기관과의 산학협력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SK는 울산을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 AI 거점을 확산시켜, 대한민국을 AI 3대 강국 반열에 올려놓겠다는 목표다.
최태원의 과제… 정치 리스크·에너지 공존·데이터 주권 논쟁까지
하지만 이번 AI DC 추진은 쉽지만은 않은 여정을 예고한다.
첫째, 정치적 리스크다. 대규모 국책급 인프라에 해당하는 AI DC는 정부의 정책, 규제, 에너지 정책과 깊숙이 얽힌다. 최 회장과 이재명 정부 간의 ‘정책적 교감’은 향후 실질적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 정권이 바뀌거나 대외 리스크가 커질 경우 AI DC가 중단되거나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둘째, 에너지와 환경 이슈다. 하이퍼스케일 DC는 막대한 전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친환경 에너지 전환 및 수급이 관건이다. SK는 청정연료 기반 전력 사용을 계획하고 있지만, 실현 과정에서 지역 반발과 규제 장벽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셋째, 데이터 주권 문제다. AWS와의 협력은 강력한 기술적 기반이지만, 외국계 클라우드 기업과의 데이터 관리 권한, 보안 리스크 등은 여전히 논란의 불씨다.
SK의 ‘AI 제국’ 꿈, 한국형 실리콘밸리의 시작이 될까
AI DC를 필두로 한 SK그룹의 행보는 단순한 기업 확장을 넘어 국가적 경쟁력과도 직결된다. 최태원 회장의 담대한 기술·정책·글로벌 전략이 어느 정도 현실화될 수 있을지, 그리고 이재명 정부가 이를 얼마만큼 뒷받침할지에 따라 대한민국 AI 산업의 미래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AI 전쟁의 중심에 선 SK, 그 퀀텀 점프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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