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교 정상화 이듬해 부산에 터 잡고 영남 일대 관할
"부산은 일본과 문화를 주고 받으며 함께 성장"
[※ 편집자 주 = 올해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았습니다. 부산은 한일 관계의 굴곡진 역사를 가장 가까이서 목격해온 도시입니다. 부산항 개항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해방과 분단, 산업화를 거치며 쌓아온 교류의 흔적이 지역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부산에 남겨진 흔적을 따라가며 한일 관계의 과거를 되짚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하는 기획 기사를 10회에 걸쳐 매주 한 차례 송고합니다.]
(부산=연합뉴스) 박성제 기자 = 부산과 일본의 교류 중심에는 주부산 일본국총영사관이 있다.
한국이 광복을 맞이한 뒤 20년 만인 1965년, 한국과 일본의 국교가 정상화됐다.
이에 따라 서울에 주한일본대사관이 생긴 데 이어 1966년 부산 중구의 한 건물에 일본국총영사관이 설치됐다.
총영사관에서는 한국인에게 비자를 발급하거나, 자국민을 보호하는 등 업무가 주로 이뤄졌다.
그러다가 1974년 동구에 현재의 총영사관 건물이 신축되면서 이전하게 된다.
지금은 부산과 경남, 경북, 울산, 대구지역의 업무를 담당하지만 한때 전라도 지역까지 관할하기도 했다.
총영사관은 현재 영남 지역에 거주하거나 사업하는 등 이유로 머무는 자국민을 도울 뿐 아니라 한국인들에게 일본 문화를 소개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총영사관은 부산과 일본 간 교류가 이뤄진 상징적인 장소다.
1965년 일본과의 국교가 정상화되긴 했지만 일본의 게임, 영화, 만화, 노래, 잡지 등은 여전히 합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시기가 있었다.
당시 주부산 일본국총영사관은 영사관 내 도서관을 운영하며 다양한 일본 문화를 접하도록 했다.
오스카 츠요시 주부산 일본국총영사는 "매일 아침 도서관을 찾아 일본 신문을 읽는 단골 어르신뿐 아니라 만화책이나 문예 잡지를 읽으려는 시민들이 많았다"며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결정함에 따라 서서히 그 역할이 작아지면서 자연스레 운영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1990년대에는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시민들을 위해 일본어 교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일본국제교류기금에서 파견 나온 전문 인력들이 총영사관에서 일본어를 가르쳤다.
이외에도 비싼 물가로 국비유학, 사업을 제외하고는 일본에 갈 수 없던 시절 한국 청소년에게 견학이나 홈스테이 등 일본에 방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민감한 과거사 문제로 갈등이 확산할 때도 총영사관은 현장의 중심에 있었다.
2019년 우리나라 사회운동가와 대학생들은 총영사관에 들어가 기습 시위를 했다.
당시 이들은 총영사관 내부 도서관을 이용하겠다며 출입증을 발급받은 뒤 갑자기 마당으로 뛰어나와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총영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과 강제징용 노동상 역시 과거사 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마다 화두에 있었다.
소녀상 철거를 주장하는 한 우익단체가 총영사관 인근에서 평일에 집회를 열어 한국 경찰이 금지 처분 내리는 일도 있었다.
최근 법원은 경찰의 처분이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은 올해 주부산 일본국총영사관은 그동안의 교류를 기념하는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17일에 열린 롯데자이언츠 홈경기에서는 부산에 거주하는 일본 야구팬과 한일 교류단체에서 활동하는 양국 시민 등 220여명이 경기를 관람했다.
21일에는 일본 외무성이 실시해 온 청소년교류사업에 참여한 영남지역 학생이 참석해 한일 수교 60주년을 축하하는 기념행사를 연다.
오스카 츠요시 주부산 일본국총영사는 "부산은 바다를 끼고 있어 다른 지역과 달리 교류로 발전하고 성장했다는 차별점을 지닌다"며 "이 과정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과 서로 문화를 주고받아 함께 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총영사관 역시 부산지역 사회의 일원"이라며 "일본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져 앞으로 더 많은 교류와 협력의 기회가 생기길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psj1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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