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직썰] 장기연체 탕감의 본질…‘면책’ 아닌 ‘복귀’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금융직썰] 장기연체 탕감의 본질…‘면책’ 아닌 ‘복귀’

직썰 2025-06-20 11:00:17 신고

3줄요약
우리 사회는 금융의 영향 아래 놓여 있습니다. 자금의 흐름에 따라 가정의 살림살이부터 기업의 흥망, 국가 경제의 성패까지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낯설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금융권에서 벌어지는 주요 이슈를 소개하고, 그것이 사회 전반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 짚어보려 합니다. [편집자주]
이재명 정부가 소상공 채무 탕감을 위한 배드뱅크 설립을 추진한다. [그래픽=손성은 기자·챗gpt]
이재명 정부가 소상공 채무 탕감을 위한 배드뱅크 설립을 추진한다. [그래픽=손성은 기자·챗gpt]

[직썰 / 안중열 기자] 정부가 이번 정책을 통해 지우려는 대상은 단순한 빚이 아니다. 되살리려는 방향은 금융 생태계 밖에 놓인 이들이 다시 제도권으로 돌아올 수 있는 권리다. 총 143만명, 16조4000억원 규모의 장기 연체채권을 정부가 직접 사들여 소각하거나 재구조화하는 이례적 실험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했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채무 감면이 아니라, 제도권 복귀를 구조적으로 설계하는 포용 금융의 첫 단추다. 선별 기준, 여신 심사 모델의 진화, 도덕적 해이 통제 장치, 신용평가 체계 개편 등이 정교하게 결합돼 있다. 다만 복귀 제도화는 금융회사에 새로운 리스크 셈법을 요구하고, 고위험군 여신 공급을 위축시킬 수 있는 ‘역설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복귀 정책의 진화, 면책에서 구조 설계로

금융위원회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이 19일 발표한 ‘장기 연체채권 직접 매입 및 채무조정’ 정책은 ‘특별 채무조정 패키지’ 일환으로, 같은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2차 추가경정예산안에 반영돼 확정됐다.

‘특별 채무조정 패키지’는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의 무담보 개인 채권을 캠코가 일괄 매입한 뒤, 이를 소각하거나 최대 80% 감면해 장기 분할 상환 형태로 재구조화하는 방식이다. 이번 조치의 핵심은 단순한 면책이 아닌, 제도화된 복귀 경로를 설계하는 데 있다. 그동안은 신용회복위원회가 금융사의 자율 조정을 유도해왔지만, 이번에는 정부가 직접 채권자의 지위를 인수해 정책 목적에 따라 정리한다.

캠코 역시 회수 중심의 기능에서 벗어나 회복 경로를 설계하고 조정하는 정책 금융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추진 중이다. 복귀는 ‘재량’이 아닌 ‘설계’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반복 가능한 회복 구조, 금융 생태계 다시 엮는다

이 정책은 단발성 구제책이 아니라, 금융 생태계 안에서 반복 가능한 회복 경로를 제도화하는 구조다. 연체 채권은 회생 가능성을 기준으로 구조화돼 감면 혹은 소각되고, 회복 과정에서의 태도와 성실성이 신용평가에 반영될 수 있도록 체계가 바뀐다. 회복 이력을 축적한 대상에게는 금융 접근이 다시 설계되며, 여신 공급이 재개된다.

모든 과정은 위험을 정량화하고 회복을 검증하며 금융을 다시 설계하는 순환 구조로 연결된다. 결과적으로 ‘복귀 설계’는 단순한 구제가 아니라, 시스템 내 회복 메커니즘을 제도화하는 시도다.

◇조건부 설계, 무조건 탕감은 없다

정책은 무차별적인 면책이 아니라, 엄격한 선별 기준 아래 운영된다. 중위소득 60% 이하이면서 처분 가능한 실질 자산이 없는 채무자만 복귀 대상에 포함된다. 재산 은닉, 반복 신청, 상환 회피 정황이 있으면 대상에서 제외되며, 복수 신청이나 명의 분산 등은 신청 단계에서 실시간 탐지된다. 신복위, 캠코, 금융사, 법원 간의 정보 공유를 통해 부정 신청은 사전 차단된다.

정부는 “복귀 의지가 명확한 채무자만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원칙을 강조하며, 과세 이력과 부동산 등기, 금융 정보를 통합 분석해 도덕적 해이를 통제한다. 성실 상환자에게는 금리 인하 등의 인센티브도 제공된다. 이번 정책은 ‘면책’이 아닌 ‘조건부 참여’, ‘단절’이 아닌 ‘설계된 복귀’를 지향한다.

◇금융사의 변화, 신용평가와 회계 셈법 도입

정부의 채권 매입 기준 제시로 금융사들은 부실 채권을 조기에 정리하고, 회계상 손실 인식을 앞당기고 있다. 이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9)에 따라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 기준이 있으면 회수 가능성이 낮은 채권을 빨리 정리할 수 있어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구조가 반복되면 고위험군 신규 여신은 더 보수적으로 운용될 것”이라며 공급 위축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는 회복자 대상 여신 공급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책 금융상품 우선 공급권이나 감독평가 가점 등을 통해 금융사가 복귀 설계에 공동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신용정보 체계도 변화한다. 과거의 불이행 기록 중심 평가에서 벗어나, 회복 과정에서의 행동 데이터를 반영하는 이력 기반 모델이 도입된다. 예컨대 24개월 중 20개월 이상 성실 상환 시 신용 점수가 15점 가산되는 방식이다. 한 전환사채(CB)사 관계자는 “신용기록은 낙인이 아니라 복귀 가능한 이력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캠코의 전환, 복귀 설계 허브로

캠코의 전략적 역할 변화도 주목된다. 단순한 채권 회수기관에서 벗어나, 복귀 설계를 담당하는 정책 금융 허브로의 전환이 진행 중이다. 무담보 채권 매입과 재구조화는 물론, 지자체·금융사·복지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금융 복귀 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을 확대하고 있다.

캠코 관계자는 “금융사가 자율적으로 회수하던 구조에서, 공공 주도의 회복 설계 체계로 전환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기회와 통제 사이, 정책 설계의 역설

하지만 복귀 설계의 제도화는 금융 포용성과 리스크 통제라는 상충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제도권 밖 이들에게 새로운 복귀의 문을 열어주는 정책이, 고위험 채무자의 반복 구조화를 초래할 가능성 또한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복귀 가능한 금융은 설계 가능한 금융이어야 한다. 이 설계는 기회를 보장함과 동시에 통제의 장치를 내포해야 하며, ‘면책’의 끝이 아닌 ‘복귀 체계의 시작’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신뢰 기반 알고리즘, 복귀 경로의 투명성, 금융사와의 정합적 인센티브 구조가 함께 제도화돼야 한다.

Copyright ⓒ 직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