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강성곤의 아름다운 우리말…올바르게 알고 쓰기-③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K-VIBE] 강성곤의 아름다운 우리말…올바르게 알고 쓰기-③

연합뉴스 2025-06-20 10:28:36 신고

3줄요약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강성곤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강성곤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본인 제공

◇ '녹록지'와 '녹록치'

많이 틀리는 표현 중 하나다. '녹록지'가 맞는다. 다음과 같이 정리해 봤다.

ㄱ, ㄷ, ㅂ, ㅅ(무성음) 다음에는 '하' 자체가 줄어든다. 따라서 '지'만 남는다.

'생각하지→생각지, 익숙하지→익숙지, 깨끗하지→깨끗지, 섭섭하지→섭섭지, 마뜩하지→마뜩지, 탐탁하지→탐탁지'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ㄴ, ㅁ, ㅇ, ㄹ(유성음) 다음에는 'ㅎ' 요소가 남아있다. 따라서 격음/거센소리로 적는다.

'간단치/만만치/적절치/마땅치/괘념치' 등이다.

그런데 '서슴지'는 'ㅁ'인데 왜 '서슴치'가 아닐까.

원형이 '서슴하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슴다'가 기본값이다. '삼가하다'가 아니라 '삼가다'처럼 말이다.

대개는 '치'에는 불만이 없는데 '지'에 당혹해하고 허탈해한다. 문자적 설명에 그쳐 그렇다.

표기는 '지'지만 발음은 [찌]다.

[생각찌] [익쑥찌] [깨ㄲㅡㄷ찌] [섭썹찌] [마뜩찌].

표정이 비로소 순해지고 평안을 찾는다.

◇ 수요자 중심의 전환

요즘 특별히 강조하는 표현에 관한 내용이다. 발신자/공급자 중심에서 수신자/수요자 중심의 언어를 쓰자는 것이다.

'분리 수거→분리 배출, 임대료를 내다→임차료를 내다, 경력 단절 여성→경력 보유 여성, 접수 받습니다→신청하면 됩니다' 등이다.

이런 맥락에서 '수신료 분리 징수'를 일단 '수신료 분리 납부'로 한 건 잘했다.

그러나 더 정확히는 '수신료 별도 납부'가 적절하다. '분리'는 마치 월별로 나눠 내는 느낌을 준다.

전기료와 관계없이 따로 내도 된다는 의미이기에 '별도'가 타당하다는 생각이다.

◇ '작열'과 '작렬'

오랜만에 햄버거 가게에 들렀다. 늘 가던 곳인데 천장에 걸어놓은 신제품 홍보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풍미 작렬'.

글로벌 기업이라 틀릴 줄 알았는데 정확히 썼다. '작열'이라고 하기 쉽다.

작열(灼熱)은 타거나 뜨겁거나 끓을 때 쓰는 표현이다. 열(熱)이 그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 '작열하는 태양/분노 작열'이라고 쓴다.

반면, 작렬(灼裂)은 터지거나 퍼지는 모양이다. 보통은 긍정 쪽으로 어떤 통쾌성을 담보한다고나 할 수 있다.

'2루타 작렬/강스파이크 작렬/잭폿 작렬/유머 작렬'. 발음은 [장녈]로 둘 다 같다.

◇ 따옴표와 간접인용

"우리는 원래 태어날 때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러다 어른이 되어 도대체 삶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하는 지경에 놓였다. 삶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부인하려 애쓰면서 비합리적인 신념과 독단적인 확신까지 만들어낸다. '이렇게 사는 것이 정답이다'는 경직된 신념과 확신을 뒤흔드는 사건은 매일 일어난다." - 00일보 칼럼

위의 칼럼은 '이렇게 사는 것이 정답이다'를 작은따옴표로 인용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사는 것이 정답이다"는 큰따옴표로 할 수도 있다. 더 정확히 살펴보자면, 큰따옴표 " "와 조사인 '라는'으로 받아야 옳다. 직접인용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간접인용으로 고치려면 따옴표를 없애고 아래와 같이 쓰면 효과적이다.

→ 이렇게 사는 것이 정답이다는 경직된 신념과 확신을 뒤흔드는 사건은 매일 일어난다.

비슷한 상황을 예시로 들어본다.

→"여기 로또가 있다"라고 그가 외쳤다.(O)

→여기 로또가 있다고 그가 외쳤다(O).

작은따옴표, ' '는 간접인용의 전제하에 상대적으로 길이가 짧고, 그걸 강조할 때 쓰인다.

→'여기 로또를 보라'고 그가 말했다. (O)

어쨌든 '~다'는/"~다" 형태는 오류다.

◇ 인성구기(因聲求氣)라는 말을 아시나요?

"소리로 인해 기운을 구한다/소리를 타야 기운이 찾아진다". (인성구기 뜻)

책은 성독(聲讀), 즉 소리 내어 읽어야 여러 효과가 난다는 말이다.

학창 시절, 어학 과목은 무조건 외우라는 선생님의 주문은 당시로서도 다분히 억압적이고 수긍하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청나라 문호 요내(1731∼1815)는 진즉, 소리가 의미에 선행하며 소리를 고르게 내어 반복적으로 책을 읽으면 그 뜻이 어느새 자기 안에 맺힌다는 이론을 설파한다.

신속/편의/재미만을 좇는 터치와 클릭의 시대. 앞 사람, 옆 사람 하고도 그저 문자만으로 소통하고 도무지 말을 안 하는 세상이다.

말하기가 어렵고 꺼려지는 건, 그 내용의 적절성/부실함을 걱정하는 이유도 있겠으나, 입술/혀/주변 근육을 놀리고 부리는 행위 자체가 부담이고 귀찮은 탓이 더 크다는 생각이다.

텍스트를 작더라도 소리 내어 읽어 보자. 자기만의 리듬이 생긴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움이리라.

읽다 보면 그다음엔 말하고 싶어진다. 저절로 표현력이 강화된다. 소리의 신통한 힘이요 기운이다.

이번 생에 난 이미 틀렸다고?

그럼, 아이들한테로 시선을 돌려보라. 국어를 좋아하게 되고 국어 실력이 늘어난다. 진짜다.

◇ '저버리다'와 '져버리다'

이런 거 틀리면 속상하다.

표기로는 한끗 차이 아닌가. 그러나 뜻은 아주 다르다.

'저버리다'를 이처럼 '져버리다'로 잘못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무언가를 잊거나 어기거나 거절하거나 배반하는 게 '저버리다'다.

"그는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은퇴했다"

"공직자의 본분을 저버리고 부패했다."

'져버리다'는 '지다'와 '버리다'의 결합이다.

"능소화가 져 버리고 말았다"

"축구에서 져 버린 결과였다"

띄어쓰기는 '져 버리다/져버리다', 둘다 된다.

◇ 혜경과 요령

요 며칠 새 글쓰기 관련 책을 여전히 뒤적거리고 있다. 마음에 맺히는 키워드를 발견했다.

'혜경'(蹊徑)과 '요령'(要領)이다. 혜(蹊)는 지름길/발자국, 경(徑)도 질러가는 길/좁은 길을 뜻한다.

어쨌든 길이다. 지금 어디로 향하는 길인가? 내 좌표는 어디쯤이고 목표는 무엇인가?

이는 곧 흐름을 단단히 잡고 방향을 잃지 말라는 얘기다.

요령(要領)은 으뜸이 되는 줄거리란 뜻이다. 요는 원래 '모으다/합치다'의 의미고, 령의 뜻은 '깨닫다/알아차린다'이다. '중요(重要)한 것'이라는 표현도 여기서 왔다.

다시 말해 으뜸이 되는 요긴한 것을 찾으려면 우선 뭔가 모아야 할 것 아니겠는가. 그러고 나서 알맹이를 추려내는 눈과 감각을 키우자는 말이다. '무엇을 갖고 임할 것인가'가 골자다.

'혜경과 요령'.

누가 한 말이냐고? 연암 박지원이다.

그가 쓴 '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이란 책에 들어있다. 조선시대 과거 시험장에서 나온 명문장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이런 말도 나온다.

"글을 잘 짓는 자는 병법(兵法)을 깨친 이다. 비유컨대, 글자는 군사요 글 뜻은 장수요 제목은 적국(敵國)일 터."

글자와 글 뜻을 잘 버무려 구절을 만들고 문장으로 퍼지며, 거기에다 북소리/나팔 소리에 깃발까지 휘날리는 운율/리듬까지 살리면, 글의 제목이라 할 수 있는 적장(敵將)의 목을 베어낼 수 있는 말이렷다.

멋지지 않은가?

◇ 성인지 암묵지화 유감

"아빠의 귀가 시간이 빨라졌다.

누나의 잔소리가 늘었다.

형과 게임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엄마의 웃음소리는 더 커졌다." (00기업 캠페인 광고문구)

성평등과 성인지 감수성이 아쉬운 대목이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할 때는 특정 성(性)이 기본/주도/대세임을 암묵지(暗默知) 화해선 안 된다. 그 맞은 편의 다른 성(性)이 불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도했건 안 했건 그렇다.

이 텍스트는 '누나/형'을 통해 만든 이가 남성임을 그대로 드러낸다. 비좁은 시야와 편협한 세계관의 발로다.

물론 언니/오빠라고 해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나 그런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둔감한 관성의 남성이 항상 문제다.

강성곤 현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 전 KBS 아나운서. ▲ 정부언론공동외래어심의위원회 위원 역임. ▲ 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전 건국대·숙명여대·중앙대·한양대 겸임교수. ▲ 현 가천대 특임교수.

* 더 자세한 내용은 강성곤 위원의 저서 '정확한 말, 세련된 말, 배려의 말', '한국어 발음 실용 소사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