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의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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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의 시계

바자 2025-06-20 10:13:42 신고

3줄요약

정치는 시간을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떤 시간은 굳은 약속으로, 또는 사라진 권위로 남는다. 그리고 시간은 물건으로 기록된다. 다짐의 마음을 담아 대통령마다 고유한 디자인과 메시지를 담은 손목시계를 선보여 온 지 어느덧 반 세기가 넘었다.


권력의 증표였던 시계

사진/ 유튜브 캡처 (채널A 채널 에이드 유튜브)
사진/ 유튜브 캡처 (채널A 채널 에이드 유튜브)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새마을운동 지도자들에게 손목시계를 선물했다. 박정희 시계는 1978년 12월 27일 제9대 대통령 취임을 기념하면서 등장했다. 당시 일본산 자동기계식 시계에 청와대 봉황 문양과 대통령 친필 사인이 각인된 시계는 단순한 선물이 아니었다. 실용성과 권위, 효율과 상징은 물론 국가가 특정 개인에게 ‘임무’를 부여한다는 무거운 무언의 약속이었다. 실용성과 권위가 온전히 담긴 시계를 받으면 국가에 충성을 다해야 했던 시기였다.

대통령 시계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공식 ‘인증’한 선물이다. 관행은 굳어져,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할 때마다 어떤 디자인의 시계가 등장할지는 늘 화제가 되곤 했다. 가격은 약 4만 원 대 수준이며, 모든 시계에는 고유번호가 부여된다. 수령자 명단은 청와대가 직접 별도로 관리한다. 측근 인사나 청와대 내부인이나 외교행사, 대통령 지인, 각종 공로자 등에게만 배포되는데, 일반 국민에게 판매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시계를 만든 이유는 지지층의 사기 진작용으로 이만큼 가성비 높은 아이템이 없어서다. ‘내가 만든 대통령’이란 애착심을 심어주기도 한다. 이는 한국만의 독특한 정치·문화적 현상이다. 미국은 펜, 기념주화, 배지 등을 대통령 선물로 제작하지만 ‘시계’는 없다.

수집 욕구를 자극하는 존재

사진/ ACROPOLIS 아크로폴리스 유튜브 캡처
사진/ ACROPOLIS 아크로폴리스 유튜브 캡처

우리는 정치적 상징을 일상적 물건으로 번역해내는 데 익숙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수집하고 애호한다. 과거엔 시계가 권위와 독점의 아이콘이었다면, 현재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소비되는 모습이다. 수집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인기를 끄는 아이템 혹은 SNS에 인증을 하거나 구하고 싶은 굿즈에 가깝다. 유튜브 브이로그, 팬 커뮤니티,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거래되는 박정희 대통령의 시계는 30만 원을 훌쩍 넘는데, 대통령 시계 중 유일하게 날짜와 요일 기능이 있고 흔들면 자동으로 동력이 생기는 오토매틱 무브먼트 방식을 채택해서다. 취임 버전, 자이툰 파병 버전, 여성 버전 등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는 노무현 시계 역시 높은 가격에 리셀된다. ‘받은 사람의 맥락’이나 인기도에 따라 중고거래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한다. 정권의 후대 평가와 현 정권과의 관계에 따라서도 ‘시계의 무게’는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시대 정신과 정치 철학 담은 디자인

사진/청와대 대통령실 제공
사진/청와대 대통령실 제공
사진/청와대 대통령실 제공
사진/청와대 대통령실 제공

보통은 친필 싸인 정도에 그치지만, 정부의 국정 철학을 시계 뒷면에 각인하는 경우도 많다. 김영삼 대통령은 ‘대도무문(大道無門)’을 새겼고,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과 함께’라는 문구를, 노무현 대통령은 ‘원칙과 신뢰, 새로운 대한민국’을 각인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 내외의 친필 사인을 뒷편에 넣었고 유일하게 네모난 디자인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시계에는 한글 ‘박근혜’가 새겨졌다. 이 시계는 이번 대선 기간 중 국민의힘 대표의 성상납 의혹과 연루되어 다시금 조명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이 먼저다’라는 철학을 반영한 문구와 함께 청와대 봉황 마크를 넣고 로즈골드 포인트를 더해, 은은한 품격을 강조했다. 친환경 포장재와 재생지 설명서까지 포함된 문재인 시계는 디자인 면에서도 완성도가 높다고. 수집가 사이에서 '이니시계'라는 애칭으로 통하고 방탄소년단 멤버 모두 시계를 가지고 있어 큰 화제가 되었다.

이재명의 선택은? ‘No 시계’?

사진/뉴스1 제공_이재명 OST 시계
사진/뉴스1 제공_이재명 OST 시계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발 공식 시계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여당 지도부 관저 초청해 만찬을 가진 자리에서 “대통령 기념시계가 뭐가 필요하냐”는 대통령의 발언이 공개되면서 시계를 만들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예상이 오갔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최근 대통령이 시계를 제작하지 않을 것이라는 언론의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고 밝히며, 시계 제작을 검토중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그러자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착용한 개인 시계가 주목받았다. 아직 공식 시계는 없지만, 검색창에 ‘대통령 시계’를 입력하면 이 제품이 먼저 등장한다. 검은색 가죽줄의 시계는 이랜드 패션 브랜드 OST에서 판매한 ‘달빛정원 블랙레더’ 제품. 시중 가격은 5만 9,900원으로 단종된 버전 이었는데 화제가 되자, 이랜드월드에서는 바로 예약판매를 진행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사진/대통령실 제공

한 편에서는 X(구 트위터) DM를 통해 ‘대통령 시계를 만들 계획이 없다면, 배경화면으로라도 대통령 시계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대통령실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디지털 굿즈 형태의 대통령 시계도 함께 출시될 예정이다. 스마트폰·스마트워치 배경화면을 배포한 뒤 화면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미지 파일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 파격적 행보는 피드백이 빠르고 국민과의 거리가 가까운 대통령의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젊은 정치를 표방하는 현 정부의 성격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새로운 시도는 대통령 시계가 단순 권력 상징이 아닌 ‘친근한 팬 아이템’으로 진화한 사실 또한 보여준다.

대통령 시계는 권력과 시대정신, 정치의 미학이 응축된 ‘착용 가능한 선언’이다. 권위에서 실용으로, 상징에서 인증으로. 대통령 시계는 정권의 취향을 드러내는 물건이자, 그 시대가 어떤 정치를 원했는지를 말해주는 시간의 형상이다. 지금 손목 위의 시간은, 누구를 향해 흐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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