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여름 하면 떠오르는 음식은 단연 냉면이다. 북한 음식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냉면은 얼음이 자연히 어는 겨울에만 먹을 수 있었지만, 과학기술 발달로 인류가 온도를 맘대로 조절하게 되면서 이젠 여름을 대표하는 별미가 됐다. 동남아시아 못지않아진 우리나라 무더위에 시원한 육수와 면을 후루룩 들이켜면 땀이 식고 기운도 난다.
냉면은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던 대중 음식이다. 그러나 최근 통계를 보면 이젠 우리 지갑에 부담되는 요리로 변신 중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서울에서 냉면 한 그릇 평균 가격은 지난 4월 1만2천115원에서 지난 달 1만2천269원으로 154원 올랐다. 특히 요즘엔 MZ 세대까지 소비층으로 끌어들일 만큼 '붐'을 일으킨 평양식 냉면의 경우 '맛집'에선 한 그릇이 평균 1만5천원을 넘어간다. 면 요리가 이 정도면 호화 음식이라 해야 할지. 그런데도 여전히 냉면집 앞의 줄은 길다.
왜 평양냉면에 열광할까. 다소 높은 가격과 줄 서는 수고를 마다치 않을 정도로? 평양냉면의 가치는 육수와 면의 품질이 좌우한다. 면은 메밀로 만드는데, 순도 99% 메밀면으로 주문하면 돈을 더 받을 만큼 고급 식재료다. 순메밀로 면을 뽑기도 쉽지 않다. 메밀은 약간 독성이 있지만 단백질, 탄수화물, 무기질, 식이섬유가 잘 조화된 건강 음식이다. 메밀의 미세 독성을 중화하려고 냉면에 무 김치를 곁들인다. 육수는 원래 꿩고기로 만들었는데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소고기, 돼지고기를 쓰게 됐다. 여기에 동치미 국물을 섞기도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메밀과 고깃국물의 만남은 영양학적으로 우수한 조합이란다.
먼 곳에서 찾을 만큼 유명한 '평냉 맛집'들이 있다. 실향민들이 월남해 차린 유서 깊은 가게들로, 푸드 칼럼니스트나 미슐랭 가이드 등도 거론한다. 특히 서울 사대문 안엔 '4대 천왕'으로 칭하는 마니아들이 있을 만큼 전통을 자랑하는 집들이 손님을 기다린다. 분류 시각에 따라 좀 다르나 대체로 충무로 필동면옥, 을지로 우래옥과 을지면옥, 장충동 평양면옥이 꼽힌다. 이 가운데 을지면옥은 이름이 무색하게 낙원동으로 옮겼다. 마포 을밀대 등을 사대장에 넣자는 의견도 있다.
필동과 을지면옥은 '의정부 계열'로 꼽힌다. 의정부 평양면옥 사장의 두 딸이 상경해 각각 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 세 집의 레시피는 같다. 소와 돼지고기 육수를 섞어 쓰고 고춧가루를 면 위에 뿌려 낸다. 반면 우래옥은 소고기 육수를 고수한다. 그래서 진한 육향을 좋아하는 이들이 즐겨 찾는다. 장충동 평양면옥은 초보자에겐 난도 높은 집이다. 동치미 국물이 생각나는 맑은 육수를 쓰므로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겐 밍밍하게 느껴질 수 있다. 실향민들은 '이북 맛'과 가장 가깝다고 평가한단다.
평양냉면은 지난 202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당시 고무된 북한은 관영매체를 통해 '평양냉면 풍습'이 "우리 당의 손길 아래 세상에 자랑할만한 민족의 우수한 유산으로 됐다"고 선전했다. 최고지도자의 인민 사랑이 깃든 음식으로 치켜세우기도 했다. 북은 또 남북회담이 열릴 때마다 오·만찬 메뉴로 평양냉면을 대접하며 '의전 요리'로 사용했다. 지난 2018년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엔 북측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우리 대통령을 수행한 기업 총수들과 식사하면서 '랭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알려져 외교 결례 논란이 인 적도 있다. 돌아보니 평양냉면은 이야깃거리가 끊이지 않는 음식 이상의 문화 현상인 것 같다. 유네스코도 인정한 헤리티지를 보유한 평양냉면, 글을 쓰다 보니 당장 목구멍으로 넘기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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