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KB·신한에 이어 하나까지 요양시설 사업에 본격 진출하면서, 금융지주 3사를 중심으로 한 시니어 헬스케어 산업 재편이 본격화됐다. 보험만으로는 더 이상 생존이 어렵다는 위기감 속에, 생보사들은 노후 돌봄과 건강관리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업의 본질을 다시 쓰고 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생명은 지난 16일 자회사인 ‘하나더넥스트 라이프케어 주식회사’(이하 하나더넥스트 라이프케어) 설립 등기를 신청하며 요양 사업 진출을 공식화했다. 이번 법인 설립은 요양 시설 및 노인복지시설 운영 역량을 강화하고, 토털 라이프케어 전문 기업으로의 성장을 목표로 한다.
이로써 KB·신한·하나 등 국내 3대 금융지주 산하 생보사는 모두 요양시설 운영에 직접 뛰어들게 됐다. 업계는 이를 ‘3강 체제의 완성’으로 평가한다. 보험 산업이 판매 중심에서 돌봄 기반 산업으로 구조 전환되는 흐름이 명확해졌다는 분석이다.
보험업, 쪼그라드는 시장에서 ‘노후 돌봄’으로 활로 찾다
생보사들이 요양시설로 눈을 돌린 것은 단순한 사업 다각화를 넘어, 업권 전체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 문제다.
실제 지난해 기준 국내 생명보험사 전체 수입보험료는 전년 대비 1.4% 감소했고, 개인연금 신규계약은 6.2% 줄었다. 실손보험 손해율도 130%를 웃돌면서 보험업은 기존의 역할만으로는 성장할 수 없는 국면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보험연구원 또한 최근 보고서에서 “보험업은 생애 전반의 리스크를 보장해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만큼, 고령화라는 구조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 전환이 필요하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요양사업은 보험업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보험사가 기존의 종신보험·건강보험·간병보험 가입자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삶 이후’가 아닌 ‘삶의 후반’을 직접 관리하는 구조로 옮겨가는 셈이다.
KB라이프생명은 자회사 KB골든라이프케어를 통해 실버타운, 도심형 요양시설을 운영 중이며, 2025년까지 8개 시설로 확대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수백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하며 공격적 투자에 나섰다.
신한라이프는 분당 데이케어센터, 하남 요양시설, 은평 실버타운 등 실속형 요양시설을 운영하며, 금융상품과의 연계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후발주자인 하나생명은 부동산·신탁·건강관리까지 아우르는 종합 시니어 플랫폼을 목표로, 하나금융의 전 계열사와 협업 체계를 구축 중이다.
최근 동양·ABL생명을 인수한 우리금융 또한 요양사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 구축된 시니어 통합서비스에 요양사업을 연계해 시너지를 낸다는 목표로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서 일본의 요양사업 모델을 연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주권 외 생보사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KDB생명은 지난 5월 1일, 경기도 고양시에 ‘KDB 데이케어센터’를 개소하며 비금융지주권 생보사 중 처음으로 요양시설 사업에 진입했다. 삼성생명도 최근 시니어리빙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중장기 계획을 수립 중이다.
규제 환경도 변하고 있다. 2025년부터는 보험사가 요양시설을 설립할 때 부지를 반드시 소유하지 않아도 된다. 임차 방식으로도 사업이 가능해졌고, 위탁 운영도 가능하도록 제도 개선이 추진 중이다.
금융당국은 요양사업을 포함한 부수 업무에 대한 규제 개선을 통해 보험사의 신사업 확대를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중소 보험사들의 진입도 점차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10년 앞선 일본 보험사들…AI 기반 ‘생애 관리 산업’으로 진화
보험사가 요양시설을 운영하는 구조는 일본이 먼저 경험했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10여 년 전부터 요양사업을 보험업의 핵심 성장 동력으로 삼았다.
일본 최대 생보사 닛폰생명은 2024년 일본 1위 요양전문기업인 니치이홀딩스를 2100억엔에 인수하며, 보험·연금·요양·육아가 통합된 ‘생애 서비스 플랫폼’을 선언했다. 기존 보험과 요양시설이 별개로 움직이던 구조를 하나의 운영체계로 통합한 셈이다.
손해보험사인 솜포홀딩스도 자회사 솜포케어를 통해 2만8500객실 규모의 요양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연매출은 1500억엔, 영업이익률은 6~8% 수준이다. AI 기반 맞춤형 요양계획, 보험 연계 마케팅, 직원 처우 개선 등 전방위적 개혁을 통해 고령자 서비스의 수익성과 품질을 동시에 끌어올리고 있다.
보험연구원은 “일본의 사례는 보험업이 단순한 금융상품 판매를 넘어, 고객 생애 전체를 아우르는 구조로 진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국내 보험사 역시 요양시설을 단순 부동산 수익사업이 아닌, 보험업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투자 전략을 세워야 지속 가능성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요양시설은 보험사의 새로운 수익원이 아니라, 보험업 자체를 재정의하는 시작점”이라며 “금융지주 3강 체제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업계가 구조 전환의 문턱을 넘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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