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고예인 기자]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의 주도권을 놓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차세대 HBM4 시장을 둘러싼 양 사의 전략과 성과가 반도체 산업의 판도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HBM 후발주자'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던 삼성전자는 올 1분기 세계 D램 매출 1위 자리마저 내주며 고배를 마셨지만 최근 AMD에 이어 브로드컴에도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 공급을 확정하면서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에서의 입지 회복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를 기반으로 삼성전자가 세계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 공급망에 복귀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에도 주목한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브로드컴의 HBM3E 8-Hi(8단) 시제품 자격 시험을 통과하며 제품 대량 공급을 앞두고 있다. 브로드컴은 세계 팹리스(설계 전문) 3위 업체로 구글과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의 AI 데이터센터용 칩 설계를 도맡으면서 엔비디아의 강력한 경쟁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HBM은 기존 D램 대비 최대 5배 이상의 데이터 전송 속도를 제공하며 AI 반도체의 연산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다. 삼성전자는 평택 DS P3 라인에서 생산한 HBM3E 시제품에 대해 글로벌 고객사로부터 전력 효율과 발열 관련 피드백을 받은 뒤 설계 및 공정을 보완, 기술 경쟁력을 입증했다. 업계에서는 브로드컴 등 팹리스 고객사들이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리스크를 줄이려는 전략적 목적도 크다고 보고 있다.
이 밖에도 최근 미국 AMD가 최신 인공지능(AI) 가속기에 삼성전자의 5세대 HBM(HBM3E 12단)을 장착하면서 삼성전자의 기술력 입증과 브랜드 신뢰 회복, 고객 다변화라는 긍정적 신호를 이끌어 냈다.
AMD는 12일(현지시간)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어드밴싱 AI 2025’ 행사에서 신형 AI 가속기 MI350X, MI355X에 삼성전자의 12단 HBM3E를 탑재했다고 발표했다. AMD가 삼성 HBM 채택을 대외적으로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MD는 엔비디아에 이은 세계 2위 AI 가속기 업체로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메타, 오픈AI 등 AI 선두 기업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AMD가 공개한 MI350X와 MI355X는 이전 세대 대비 AI 컴퓨팅 성능을 최대 4배, 추론 성능은 35배까지 끌어올린 제품이다. 각 칩에는 총 8개의 HBM3E 12단이 들어가며, 이는 삼성이 지난해 개발을 완료한 36GB 용량 제품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는 당시 AMD가 선공개한 차세대 MI400 시리즈에도 HBM4를 공급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HBM4 시장에서의 반전을 위해 경쟁사보다 한 단계 앞선 6세대 10나노급(1c) 공정으로 HBM4를 양산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5세대 10나노급(1b) 공정에 머무른 것과 비교해 기술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결국 삼성전자의 최대 과제는 엔비디아 공급망 복귀다.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를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엔비디아 공급망 진입이 절실하다. 엔비디아는 AI 반도체 시장의 약 80%를 점유한 최대 고객사로 삼성의 HBM 전략에서 핵심 변수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고사양 AI칩 규제로 엔비디아가 새롭게 꺼내든 중국용 AI칩 공급망 진입에도 주력하고 있다 . 코드명 'B40'로 불리는 엔비디아의 중국용 AI 가속기 'RTX 프로 6000'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일부를 GDDR7로 대체하고 있어서다.
아직 엔비디아의 HBM3E(5세대) 공급망에 합류하지 못한 삼성전자의 수혜가 기대되는 요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24기가비트(Gb) GDDR7 D램을 전 세계에서 최초 개발에 성공하며 주도권을 쥐었다.
이 밖에도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내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 ‘B100’용 HBM3E 제품에 대한 추가 자격 시험을 추진 중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엔비디아가 요구한 대부분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기술적 보완을 지속하고 있으며 3분기 내 인증 일정을 마무리하면 하반기부터 주요 고객사 공급망에 재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삼성은 연내 HBM4 양산을 공식화하고 엔비디아와의 협업 재개를 위한 품질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HBM3E 기준에서는 엔비디아 품질 테스트를 통과할 가능성이 있지만 HBM4에서는 기술 난도가 훨씬 높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다.
HBM4 시장을 둘러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은 단순한 점유율 싸움을 넘어, 한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와 글로벌 AI 생태계의 주도권을 결정짓는 승부처다.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와의 협력으로 선두를 굳히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AMD와의 협력을 토대로 기술력과 품질 신뢰 회복, 그리고 엔비디아 공급망 재진입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AI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면서 삼성 HBM의 공급 안정성과 기술력이 재평가 받고 있다”며 “삼성전자가 기술력 보완과 대형 고객사 확보, 차세대 HBM 제품 개발을 통해 HBM 시장 주도권 탈환에 성공할지 지켜볼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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