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정세가 다시 혼란에 빠지며 유럽 경제에 전방위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충돌 가능성이 현실화되면서 유가가 급등하고,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유럽 경제의 회복 전망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6월 16일 스페인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원유 가격은 일시적으로 하락했지만, 여전히 시장은 이란과 이스라엘 간 충돌이 확대될 경우에 대비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물가 안정을 이유로 금리 조정을 보류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는 유로존 경제가 새로운 전환기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중동 상황이 에너지 가격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이며, 이는 유럽의 인플레이션과 성장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도이체방크의 조르주 살라벨로스는 최악의 경우 이란의 석유 공급이 전면 중단되고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비교적 온건한 시나리오에서는 유가 상승 폭이 제한적일 수 있으며, 이는 시장이 이미 일정 수준의 불확실성을 가격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기타 산유국들의 유휴 생산능력은 공급 충격을 일부 완화할 수 있으나, 구조적인 리스크는 여전히 존재한다. 스위스 바오성 그룹은 비중동 지역의 석유 수출 확대와 재고 확보 등이 단기적 회복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천연가스 시장은 다소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중동 갈등이 촉발된 이후 유럽의 가스 기준 가격은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네덜란드 TTF 기준 가격은 메가와트시당 36유로에서 38유로로 올랐으나, 이는 제한적인 수준이다. 다만,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폐쇄할 경우 카타르산 액화천연가스(LNG) 공급에도 차질이 불가피해 유럽의 에너지 가격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인플레이션 압력도 무시할 수 없다. ECB 모델은 중동 긴장이 에너지 수급에 타격을 줄 경우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2%포인트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유가가 10달러 상승할 때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0.4%포인트 상승하고, GDP는 동일한 폭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동 정세가 유럽 경제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은 현재까지는 제한적이다. 그러나 에너지 가격이 장기간 상승세를 보일 경우, 소비자 신뢰 위축과 성장 둔화가 동반되며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부상할 수 있다. 이는 유럽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경로에 변수로 작용하며, 금리 인상 재개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환율시장에서는 달러가 일시적으로 반등했다. 유로 강세 흐름이 멈추고, 지정학적 불안 속에 달러의 안전자산 역할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직후 달러는 일부 회복세를 보였으며, 미국이 에너지 순수출국이라는 점에서 유가 상승은 달러 가치에 추가 상승 여지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구조적인 달러 약세 기조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편, 유럽채권시장은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주요국의 국채 수익률은 하락했고, 독일 국채는 스와프 금리를 넘어서는 안전자산 지위를 다시 확인했다. 그러나 유럽의 재정 지출과 구조적 경제 우려는 장기적으로 채권시장에 부담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동의 불안정한 정세는 단기적으로는 에너지 가격과 금융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으나, 충돌이 장기화되거나 공급망 타격으로 확대될 경우 유럽 경제 전반에 심대한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차승민 기자 smcha@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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