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오갤러리 서울서 개인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국내 1세대 추상조각가 엄태정(87)의 다양한 작업 세계를 살필 수 있는 전시가 서울 원서동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18일 시작했다.
그동안 널리 소개되지 않았던 1970∼1990년대 작품부터 2000년대 주요 작품과 최근작, 평면과 드로잉 작업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다채로운 조형 세계를 3개층 공간에서 보여주는 전시다.
작가는 작업 초기에는 철을 사용했고 이후에는 구리를 썼다. 그러다 2000년대 이후에는 알루미늄을 재료로 쓰고 있다.
전시에는 3∼5mm 두께의 얇은 알루미늄판을 사용한 '낯선자의 은신처' 시리즈 신작을 소개한다. 밝게 빛나는 알루미늄판을 은빛 베일처럼 두른 '낯선자들'이 전시장에 우뚝 서 있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지난 17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나이가 드니까 차갑고 오만하게 느껴졌던 알루미늄의 매력이 다르게 다가왔다"며 "알루미늄 덩어리로 작업하다 이번에 얇은 알루미늄판을 구부리고 감싸는 부드러운 작업을 소개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신작 '막고굴' 시리즈는 구리를 사용한 작품이다. '1000개의 찬란한-막고굴 시대'는 중국 4대 석굴 중 하나인 둔황의 막고굴(莫高窟)에서 영감을 얻었다. 사암 절벽을 따라 마치 구멍이 난 것처럼 보이는 석굴 모양을 네모 모양으로 형상화한 작업이다.
3층 전시장에는 구리를 사용해 매끄러운 외면과 거친 내부의 대비를 보여준 1970년대 작업을 소개한다. 이 중 1979년작 청동으로 만든 '사물 망각'은 영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전시했던 작품으로, 작가는 오랜 세월이 지난 뒤 국내 경매에서 이 작품을 발견하고 구입해 소장해 왔다.
작가의 작품 속에는 정신적 스승인 루마니아 출신 조각가 콘스탄틴 브란쿠시(1876∼1957)의 영향이 깊게 배어 있다. 가로, 세로 각각 1㎝ 크기의 수없이 많은 정사각형 모양에 수행하듯이 색을 칠한 평면 작업 '만다라' 시리즈에 브란쿠시의 대표작 '무한주'를 연상시키는 조형적 요소를 더한 작업도 새로 선보인다.
60년 넘게 작업해왔고 이제 구순을 바라보는 노(老) 작가는 아직도 "더 열심히 하고 싶다"고 말한다. 작가는 높이 3.5m 크기의 '낯선자의 은신처' 작품을 가리키며 "큰 공간에서 이런 규모의 작업을 50∼60개 정도 한꺼번에 전시해보고 싶다"며 "작가는 항상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작가 생활을 하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한번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는 8월 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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