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정부가 6월 1일부터 비대면 진료를 시범사업 형태로 재개했다. 지난해 종료됐던 제도를 다시 시행했지만, 제도화는 여전히 요원한 상태다. 앱을 통해 이뤄지는 비대면 진료 이용이 빠르게 확산하는 가운데 운영 기준과 책임 구조는 여전히 불명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누적 1100만 건 이상의 비대면 진료가 시행됐다. 당시 이용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2.5%가 비대면 진료가 대면 진료보다 불안하지 않다고 답해 실사용자들의 거부감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2025년 말까지 운영한 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본사업 전환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국의 제도화 수준은 ‘임시 운영’ 단계에 머물러 있어 OECD 국가 중 비대면 진료를 법제화하지 않은 유일한 국가로 분류된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계와 정부의 책임 범위와 제도화 방식은 아직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현장 모니터링을 통해 운영 상황을 지속 점검 중이라는 입장이지만, 현장에서는 세부 지침의 불명확성으로 인한 혼선이 계속되고 있다. 초진 허용 대상은 ‘도서·벽지 거주자, 고령자, 장애인 등’으로 규정했으나 구체적인 기준이나 확인 절차는 마련돼 있지 않다. 의료진 자체 판단이나 환자 본인이 대상에 해당하는지를 직접 확인해야 하는 구조다.
이용 확산 속도와 달리 제도적 안전장치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야간이나 공휴일 비대면 진료 본인 부담금이 대면 진료보다 높아지는 사례도 발생, 의료비 역전 현상까지 지적되고 있다. 진료 오류, 약물 오남용, 개인정보 유출 등 비대면 진료에 따른 새로운 위험 요소에 대한 대응 체계도 미비한 상황이다.
이제 정책 방향이 실수요와 엇갈리고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최근 발의된 의료법 개정안은 초진 비대면 진료 대상을 18세 미만 아동과 65세 이상 고령층으로 제한하고 있다. ‘닥터나우’ 등 주요 플랫폼 통계에 따르면 실제 비대면 진료 이용자의 90% 이상은 18세 이상 64세 이하의 일반 성인층이다.
‘나만의닥터’ 등 의료 플랫폼에서는 직장인, 육아맘, 만성질환자를 중심으로 20~40대 이용자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정작 비대면 진료가 가장 필요한 직장인과 청장년층이 정책 대상에서 제외되며 실질 수요와 제도 설계 간 괴리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시범사업을 통해 본사업 전환을 위한 데이터를 확보할 계획이다. 하지만 1988년부터 시범사업 형태로 운영돼 온 비대면 진료 제도는 임시성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행 의료법 제34조는 원격의료를 의료인의 책임하에 시행하도록 명시, 진료 중 문제가 발생할 때 법적 책임은 의료진에게 귀속된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 전공의는 “앱으로 진료하고 약은 택배로 받지만,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은 의료진에게 돌아온다”며 “의료 현장의 부담은 커지고 있는데도 플랫폼이나 정부는 시스템을 완비하지 않은 채 현장에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비대면 진료가 환자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수단인 건 맞다”면서도 “안전성과 책임 구조가 법적으로 명확히 정리되지 않으면 의료 불신만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는 “비대면 진료는 국민 누구나 평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며 “정부가 비대면 진료를 실제 이용하고 있는 국민 의견을 더욱 효과적으로 청취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비대면 진료를 법제화해 전 국민의 의료 권익을 더욱 신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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