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행운일 수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굴 가격이 가장 저렴한 나라 중 하나다. 마트나 수산시장에서 쉽게 살 수 있고 가격도 비교적 낮다. 때문에 국내에서는 일반 서민들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식재료지만 서구권에서는 굴의 가격이 상당히 비싸 고급 식재료 중 하나로 취급받는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지에선 굴을 개당으로 판매한다. 한 접시에 낱개로 몇 개만 넣고 가격을 책정한다. 때문에 굴을 즐기고 싶다면 어느 정도의 지출을 각오해야 한다. 반면 한국은 굴을 무게 단위로 팔고 한 팩만 사도 양이 많다. 굴 요리를 해 먹거나 초장에 찍어 먹기에 부담이 없다.
서민들도 즐겨먹을 만큼 흔했던 굴
서양에서도 원래 굴은 귀한 음식이 아니었다. 중세 유럽에선 가난한 사람들이 즐겨 먹던 흔한 해산물이었고 양이 많아 껍데기를 처리하는 게 골칫거리일 정도였다.
로마 제국 시대에는 귀족들이 굴 맛을 구별할 만큼 열광했다. 나폴리 인근 폴리아라미드에서 굴을 양식해 제국 전역으로 유통했다. 당시만 해도 굴은 특별한 식재료라기보다 접근하기 쉬운 식량에 가까웠다.
영국 템스강 하구와 프랑스 북부 해안 등은 굴 산지로 알려졌고 품질이 뛰어난 것으로 소문났다. 값도 싸서 서민들이 자주 먹었다. 17세기부터는 네덜란드에서도 인기가 높아졌고 그림에도 등장할 만큼 흔했다.
뉴욕은 한때 ‘굴의 도시’로 불렸다. 리버티 섬 주변은 굴 암초가 많아 배가 정박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당시 가난한 사람들은 1년 내내 빵과 굴만 먹고살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세기엔 단돈 1센트에 27kg의 굴을 살 수 있었다. 길거리에서는 굴 카트가 핫도그만큼 흔했다.
이후 철도가 발달하면서 내륙 도시까지 굴 유통이 가능해졌고 수요가 폭증해 무분별한 채취가 이어졌다. 영국에서는 쌍끌이 저인망 어업이 도입돼 굴을 바다 바닥에서 긁어모았다. 결국 굴의 서식지가 급격히 파괴됐고 생산량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수질오염과 전염병… 굴 시장 몰락의 시작
가장 큰 문제는 수질이었다. 템스강 하구, 파리 인근 해안, 뉴욕 강변 등은 공장과 인구 밀집 지역이 되면서 하수와 폐수가 바다로 흘러들었다.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시대라 오염은 치명적이었다. 굴은 바닷물을 빨아들이며 플랑크톤을 걸러먹기 때문에 수질이 곧 품질과 직결됐다.
이 무렵 콜레라와 장티푸스가 유행하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원인을 몰랐던 당시 사람들은 빈민층과 이민자를 탓했지만 점차 세균과 오염된 해산물의 관계가 밝혀지면서 굴 소비가 급감했다. 1896년 영국 의료조사관 H. 팀블랙이 장티푸스와 굴 사이의 상관관계를 지적하는 보고서를 내놓자 굴은 위험한 음식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뉴욕에서도 굴에 장티푸스균이 있다는 소송이 제기됐다. 법원이 피해자 손을 들어주자 식당들은 위험을 피하고자 굴 사용을 중단했다. 리버티 섬 인근 굴 양식장은 석유 정제소 인근이라 ‘기름 맛이 난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1927년 뉴욕 마지막 굴 양식장이 폐쇄되며 도시 전체의 굴 시장은 붕괴했다. 당시 뉴욕은 미국 굴 생산의 절반을 담당하던 지역이었다.
한국 굴이 저렴한 이유
굴이 사라진 서양과 달리 한국은 굴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 이유는 몇 가지로 정리된다. 첫 번째는 수요다. 한국은 굴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대중적으로는 조개나 새우만큼 폭넓은 선호를 받지 않는다. 그만큼 남획 우려도 덜하다.
둘째는 생산지의 지리적 특성이다. 국내 굴 생산의 대부분은 통영과 남해에서 이뤄진다. 이 지역은 공장이나 대도시에서 떨어져 있어 수질이 비교적 깨끗하다. 굴이 자라기 좋은 해류와 수온 조건도 갖췄다. 양식 환경이 안정적이니 공급이 꾸준하고 가격도 유지된다.
셋째는 품종이다. 한국에서 양식되는 태평양 굴은 병에 강하고 환경 적응력이 높다. 서양에서 번식이 어려운 품종 대신 한국과 일본에서 들여온 품종이 현재 미국과 프랑스 양식장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다만 굴이 완전히 안전한 것은 아니다. 생식으로 먹을 경우 노로바이러스 감염 위험이 있다. 양식장 관리 수준이 나아지긴 했지만 주의는 여전히 필요하다. 굴을 먹을 땐 익혀 먹거나 철저히 위생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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