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지난해 정부가 저출생 해법으로 추진한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이 무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해당 제도는 최저임금 적용 문제와 전문성 논란 등으로 시작부터 여러 논란에 휩싸인 바 있는데, 해당 사업에 비판적 입장을 드러내 온 더불어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시범사업에서 더 확대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 확정될 예정이었던 외국인 가사관리사 정식 사업 계획은 여전히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해당 시범사업은 지난해 서울시 오세훈 시장과 국민의힘 조정훈 의원 등의 제안에서 출발했다.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가사노동 인력을 도입하자는 취지다.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적극 검토를 지시하면서 사업은 빠르게 추진됐다.
정부는 공청회 등을 거친 뒤 필리핀 출신 인력 100명을 고용허가제(E-9)를 통해 도입하기로 하고 시범사업을 전개했다. 전문성 논란을 의식한 정부는 ‘Caregiving NCⅡ’ 자격증 제도를 운영하는 필리핀을 적합한 국가로 선택했다. 사업 참여자들은 영어 및 한국어 능력 평가, 건강검진, 마약 및 범죄 이력 조회 등 신원 검증 절차를 거쳤다.
가장 큰 논란이었던 최저임금 적용 제외는 결국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국제노동기구(ILO)의 차별금지협약을 비준한 국가로, 해당 협약에 따라 내국인과 외국인 간 동일 수준 임금을 보장해야 한다.
이에 따라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의 시급은 최저임금에 4대 보험 등 부대 비용을 더한 1만3940원으로 책정됐다.
그러나 이 금액을 두고 이용료가 다소 높아 사업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실제로 신청 가구 중 43%가 소득 수준이 높은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에 쏠리면서 특정 계층 중심의 사업이 아니냐는 우려를 키웠다.
이외에도 선발된 가사관리사 2명이 숙소를 무단이탈하면서 강제 출국 되거나 수당이 제때 지불되지 않아 임금체불 논란이 일어나는 등 잡음이 잇따랐다. 또한 현장에서는 애초 안내받았던 정책 취지와 실제 업무 간 괴리가 크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돌봄보다는 더 강도 높은 집안일 중심의 노동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현장의 지적이었다.
당초 시범사업은 6개월간 운영될 예정이었으나 정부는 종료 기한인 2월 이후에도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기간을 1년으로 연장했다. 하지만 상반기 내로 확정하기로 했던 정식 사업 계획은 아직 구체적인 일정조차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고용노동부 김민석 차관은 지난달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된 기자단 간담회에서 지난해 정부가 올해 6월부터 본사업을 하겠다고 한 가사관리사 사업에 대한 질문에 “쉽지 않을 것 같다”며 “결국 문제는 돈이고 돈 문제 해결되지 않다 보니 쉽지 않다”고 답변했다.
오 시장도 지난 12일 제331회 서울시의회 정례회 시정질문에서 “외국인 가사관리사 사업의 실패를 인정하나”라는 더불어민주당 아이수루 의원의 질의에 “‘성공이다, 실패다’로 규정하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을 깊이 있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저렴한 외국인 인력을 도입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나 노동 환경에 비춰볼 때 현실적으로는 어렵겠다고 판단한다”며 정책을 보안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제도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시범사업 연장이 발표된 지난 2월 논평을 내고 “정부는 두 차례 임금 체불, 생활고에 2명의 이탈, 숙소 통금시간 제한, 돌봄과 그에 수반된 가사노동 수행이라는 불명확한 업무 범위 문제, 높은 숙소비, 장거리 이동, 휴게공간도 없이 지하철에서 식사했다던 이주가사돌봄노동자의 호소와 부실 운영을 어떻게 개선해 나갈지 보완 방안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상태라면 지난 7개월의 답습을 넘어 총체적 부실 사업으로 연장될까 우려스럽다”며 “정부는 지금이라도 노동조합, 당사자들과 보완 방안 논의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윤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이후 대선을 통해 정권이 바뀌면서 본 사업 시행은 더욱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앞서 사업 계획단계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해 왔다.
다만 정식 사업으로 이어지지 않고 시범사업이 종료되더라도 이미 입국한 상태인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이 즉시 본국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범사업 기간이 1년 연장되면서 이들에 대한 취업 허용 기간도 총 3년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에 현장에서는 본 사업 추진 전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정영섭 활동가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사업 도입 당시부터 실제 가사노동 시장에 외국인 노동력이 필요한지에 대한 충분한 수요조사 등이 이뤄지지 않았고 정책적 근거 없이 정치적 판단에 따라 제도가 추진됐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며 “시범사업이 시행되는 과정에서도 업무 범위의 혼선, 열악한 근로조건, 인권 침해, 성희롱 피해 사례 등 여러 문제가 연이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엇보다 이주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철저히 차단돼 있다는 점이 가장 심각한 인권 침해”라며 “외부와의 접촉이 제한된 상황에서 현장 실태를 파악하기 어렵고 제도 운영에 당사자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그는 “이런 상황에서 본 사업으로의 전환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면서도 “만약 정부가 제도를 계속 추진할 계획이라면 충분한 수요조사와 실증 연구, 업무 범위의 명확화, 근로조건 개선, 당사자 참여 보장, 인권 침해에 대한 대응 체계 마련 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사전 준비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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