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압/재업) 한반도에 살았던 특이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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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재업) 한반도에 살았던 특이한 사람들

시보드 2025-06-14 06:22:02 신고

내용:

글에 손 볼 부분이 너무 많아 재업함 미안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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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촬영된 재가승 여성들의 사진

재가승 (在家僧)

본디 재가승은 출가하지 않고 집에 정주하는 스님을 일컫는 말이나, 한국에서의 재가승은 관북 일대에 거주하던 소수집단을 의미한다.

재가승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여러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이들이 불교에 박식한 사람을 촌장으로 우대하였으며, 이웃 고을에 가서 불경을 읽어주는 것을 업으로 삼았기 때문으로 추정됨.

이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이들이 사는 곳을 재가승 마을, 혹은 중골이라는 말로 칭했다고 전해짐.



1936년 동아일보의 기사에 따르면 함경북도 회령군 창두면 종암동과 함경북도 온성군 미포면 월파동에 거주 중인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인구는 대략 4천명이었다고 함.

본디 조선시대부터 하천인으로 분류되어 세금이 면제되었지만 황지(黄紙, 한지의 일종으로 노란 종이를 의미)와 초신을 대신 내는 중노동을 담당했다고 한다.

이들의 언어는 한국어와 비슷하나 특유의 방언이 있어 같은 지역민이라도 재가승 사람이 아니라면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함.

대표적인 방언으로는 나물->나마리, 떡고물->영에, 지각없다(철이나 분별력이 없다는 말)->덕소없다/양소래없다 라는 말이 있음.

추가로 재가승들이 쓰던 독특한 욕도 있었는데 "범이야 범이야"라는 말로, 이는 호환으로 인해 생긴 말로 추정됨.

본디 전통적인 한국인의 풍습과 달리, 사람이 죽으면 매장하지 않고 화장으로 장례를 치루며, 제사를 할 때는 저녁 8시에 지내고, 자신의 아내나 딸을 외지인과 호의, 혹은 돈을 받고 동침을 시키는 특이한 풍습을 지니고 있었다고 함.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이들에게는 성씨가 존재치 않아 승(僧) 누구누구(ex 승 철수, 승 영희, 누구누구 스님과 같은 느낌임)라는 식의 이름을 사용하다가 성씨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짐.

동아일보 기사 기준 약 400년간 공동생활을 지켜왔지만, 딱히 특별한 공동시설이나 규칙은 없었으며, 다른 마을과 통혼하지 않는 대신 재가승 사람과 결혼코자 하는 사람은 무조건 재가승 마을에서 살아야하는 규율이 있었다고 함.

생업활동은 주로 화전(火田)을 했으며, 부업으로 여성들은 삼베를 방직하는 일을, 남성들은 목재 운반을 하였으며 마을 간의 단결력이 매우 끈끈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1년에 2회 정도 실행하는 대산귀(大山鬼)라는 고유의 풍습이 있었는데, 마을에 병자가 생겨 무당에게 점을 쳤을 때 귀신의 소행이라고 판명이 나면 마을 사람들이 발 벗고 나서 대대적인 대산귀를 행하였다.

이 대산귀는 마을 사람들이 돈을 많이 들여 쌀과, 돼지, 송아지를 마련하고, 하천 가까운 곳에 깨끗한 터를 골라 그곳에 3층 다락을 만들어 제단을 만들고, 긴 장대에 귀신의 이름을 적은 크고 긴 천을 매달아 제단 위에 세우면 준비는 끝난다.

이후 떡 20그릇에서 30그릇 정도를 준비해 무당 2~3명을 불러 굿을 하면서, 마을 사람들도 무당들과 같이 밤을 새운다.

이후 이튿날 늦게 돼지를 잡아 고기를 올려 다시 굿을 하면 저녁에 되어서야 대산귀는 끝이 난다. (대산귀 굿을 하는 도중에 여러번 점을 치는데, 만약 점괘가 나쁘게 나온다면 돼지 대신 소를 잡기도 한다.)

대산귀가 끝난 이후에는 복술의 집에 떡과 고기를 보내고, 이후 집집마다 떡과 고기를 보내면서 대산귀는 막을 내린다.

대산귀 말고도 1년에 2번 산치성에서 제사를 올렸으며, 연중 4번정도 산제를 올렸다. 제사를 지낼때는 성인 남자는 참여하지 않으며, 아이들과 여성들이 붉은 옷을 입고 지냈다고 한다.



이런 특이한 풍습들로 보아, 이들이 한민족이 아니라 조선에 동화된 불교를 믿던 여진족의 후손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나, 여진족의 후손이 아닌 승가나 승병들의 후손이라는 설도 대립하고 있다.

현재 재가승들의 근황은 알 수 없다. 1957년 한국전쟁 휴전협정 이후 북한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하였을 때에는 약 1000여호가 남아있던 것으로 파악되었으나, 이후 김일성이 재가승 사람들을 동화하기 위해 창씨개명을 시행하면서 북한 사회에 흡수되면서 점차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한국전쟁 중 피난민들을 따라 신분을 감추고 월남한 재가승들도 소수 존재하기에 현재 이 글을 보고 있는 몇몇 싱붕이들도 어쩌면 재가승의 후손일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겠다.



3줄요약

1. 한반도 북부에는 재가승이라는 불교계 소수집단이 살았음

2. 소수집단 치고는 꽤 많은 인구와 독자적 문화를 보유

3. 한국전쟁 이후로 북한에 동화되면서 사라진 것으로 보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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