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다슬기를 처음 본 건, 초여름 강가였다. 어릴 적 개울가에서 자주 봤던 그 까만 조약돌 같은 생명체는, 그때는 그저 물고기나 잠자리만큼 흥미로운 자연물 중 하나일 뿐이었다.
어느 해 여름, 어머니와 함께 찾은 강가에서 마주한 다슬기는 색다른 존재였다. 물살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바위에 붙어 있는 그 모습은 마치 생을 묵묵히 살아내는 사람 같았고, 언젠가부터 내게 익숙한 한 사람, 바로 어머니를 닮아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다슬기를 먹거리로만 보지 않게 된 때의 시작이다.
물속에 손을 넣으면 강바닥의 자잘한 돌과 함께 다슬기의 감촉이 전해진다. 차가운 물살 속에서도 단단히 자리를 지킨 그 조그만 껍데기. 손에 쥐고 들여다보면 생명이라는 사실이 더욱 실감 난다.
조용하고, 단단하고, 작지만 분명한 존재감.
다슬기의 삶은 겉으로는 거의 정지돼 있지만, 그 속에는 단백질과 미네랄, 타우린 같은 생명의 성분이 고르게 담겨 있다. 몸 안의 열을 내리고, 간을 해독하며, 피를 맑게 해주는 그 기능은 의학적 효능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
그것은 계절을 살아가는 방식이고, 여름이라는 시기를 이겨내는 하나의 철학이자 태도다.
어머니는 그런 다슬기를 손에 쥘 줄 아셨다. 다슬기가 제철을 맞이하는 6월이면 어김없이 아침 일찍 강가로 나섰다. 나는 종종 그 뒤를 따라갔다.
시원한 물속에 발을 담그면 처음엔 오싹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발끝으로 전해지는 물살의 흐름이 익숙해지면 그 안에서 생명을 찾는 일이 오히려 자연스러워졌다.
강물 아래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다슬기를 바라보며 어머니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작은 건 놔둬라. 얘들도 자라야지."
어린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말이 생명에 대한 어머니의 윤리였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다. 어머니는 삶의 크기를 음식에서부터 가늠하던 분이었다.
잡아 온 다슬기는 곧장 우물가로 옮겨졌다. 우물 옆의 평상 위, 함지박 안에서 다슬기들은 바가지와 어머니의 손끝에 의해 깨끗이 씻긴다. 바닥에 까는 마른 수건, 쟁반으로 덮은 해감 과정, 그 순서는 모두 조용하고도 정결한 의식처럼 느껴졌다.
다슬기에게 숨 돌릴 시간을 준다는 어머니의 말은, 다슬기를 향한 존중이었고, 동시에 식재료를 대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물건을 씻는 손길이 아니라, 생명과 계절을 다루는 마음가짐이었다.
이윽고 가마솥에 불이 붙고, 무를 큼직하게 썰어 넣는 어머니의 손은 단호했다. 그리고 삶아낸 다슬기를 건져 하나하나 바늘로 꺼내는 그 작업은 인내심의 결정체였다. 나는 옆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봤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여름 풍경처럼 반복됐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성과 질서는 매번 새로웠다. 어머니는 다슬기탕이 계절 음식이 아니라, 여름을 이기는 보약이라고 했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간 해독, 눈을 밝히는 효능, 몸의 열을 내리는 작용까지 줄줄 외우셨다.
그것은 책에서 읽은 지식이 아니라, 살면서 체득한 경험에 가까웠다. 습한 여름날에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은 오히려 사람을 더 지치게 만든다며 어머니는 늘 다슬기탕을 해장국으로 내놓았다.
아버지는 그 국물 한 숟갈에 속이 풀린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 맛이 어쩐지 마음조차 풀리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가 만든 다슬기탕의 기억은 하나의 이야기로 내게 남았다. 국물 요리의 한 종류가 아니라, 삶을 다스리는 한 방식으로 말이다.
나는 그것을 손자병법의 '군쟁(軍爭)의 장'에 대입해봤다. 손자는 군사 전략에서 "유리한 지형을 먼저 점하라, 혼란 중에 질서를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무를 넣어 끓인 다슬기탕은 그런 전략에 딱 맞는 요리다.
여름철 몸의 열을 식히고, 수분 대사를 조절하는 중심 요리. 그것은 정면 돌파형 전략이다. 무는 군의 보급선처럼 인체의 순환을 돕고, 다슬기는 해장을 통해 병사들의 사기를 회복시키는 약과 같다. 전장의 본진이자, 여름 식탁의 중심축이다.
고추 다슬기볶음은 이와 달리 속도와 기습의 전략이다. 짧지만 강한 자극으로 입맛을 깨우고, 무더위에 무뎌진 감각을 되살린다. 손자가 말한 전격전, 변화무쌍한 전장의 흐름을 반전시키는 카드다.
이 요리는 반찬이 아닌 기습이자, 자극이자, 살아 있다는 감각을 일깨우는 전술이다. 식탁 위의 작고 빠른 전투, 그러나 임팩트는 강렬하다.
부추 다슬기전은 그와는 또 다르다. 정과 기를 병행하라는 손자의 병법처럼, 부추의 따뜻한 기운과 다슬기의 차가운 성질이 균형을 만든다. 이는 후방을 지키는 병참선이자, 유연하게 전장을 메우는 전략 보조다. 입 안에서 부드럽게 감싸는 전의 맛은 마치 방어선의 조화처럼 섬세하다. 단단한 공격보다는 부드러운 연결, 그리고 기세 전환의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자소엽 다슬기튀김은 기만전술의 정수다. 겉은 튀김의 바삭함으로 감췄지만, 속에는 해독과 해열의 효능이 담겨 있다. 허를 찔러 적을 교란하는 계략, 병법의 위장을 음식으로 옮긴 형태다. 기름진 음식이 몸에 안 좋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속에 숨어 있는 치유력을 드러내는 요리. 전장에서 예상하지 못한 공격이 가장 치명적인 것처럼, 이 요리는 식탁 위의 숨겨진 반전이다.
그렇게 다슬기 요리 네 가지는 각각의 전장을 맡는다. 국물은 전면전, 볶음은 기습, 전은 보조, 튀김은 기만이다.
손자의 병법처럼, 음식도 전략이다. 다슬기는 계절을 넘는 병법이다. 어머니는 그 병법을 본능처럼 알고 있었고, 나는 그 곁에서 배우기만 하면 됐다.
어머니가 끓이던 다슬기탕 한 그릇은 여름을 지키는 보약이었고, 가족을 돌보는 철학이었다.
지금 나는 도시의 좁은 주방에서 어머니의 방식을 따라 한다. 정결하게 씻고, 해감하고, 무를 썰고, 국물을 낸다. 그런데 맛은 내 기준에서 어딘가 부족하다. 어머니의 손길도, 우물가의 공기도, 아궁이 앞의 불꽃도 없다.
그래서일까, 맛보다 더 그리운 것은 그 시간들이다. 허리를 굽혀 다슬기를 줍던 강가, 뜨거운 가마솥 옆에서 땀을 훔치던 어머니, 무심하게 떠주던 국물의 따뜻함. 그 모든 것이 나의 이야기였다.
다슬기는 지금도 강가에 있다. 작고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계절이 바뀌어도, 도시의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내 마음 한켠에서 살아 숨 쉰다.
우리네 삶도 다슬기를 닮아야 하지 않을까. 소란스럽지 않지만 흔들리지 않고, 작지만 생명을 품고, 늘 같은 자리에서 계절을 살아내는 것. 그리하여 결국은 사람을 살리고, 마음을 다독이고, 기억을 남기는 것.
내가 다시 다슬기를 찾는 이유는, 어쩌면 그 삶의 태도를 다시 되새기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정리 :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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