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교원들은 12일 교육부 국립국제교육원(국제교육원)이 추진 중인 '한국어능력시험(TOPIK)의 디지털 전환 민간투자형 소프트웨어사업' 사업 중단을 촉구했다. 시험의 공공성과 공신력 훼손, 교육과 평가의 상업화가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TOPIK 민영화 반대 연대'는 12일 오후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한국어능력시험은 국가시험"이라며 "국가가 관리해야 할 국가시험을 민간에게 넘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날 회견에는 이창용 직장갑질119 온라인노조 한국어교원지부장,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석원정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소장, 최유하 한국어 강사 등 현장의 한국어 교원들과 연구자, 인권 단체가 참여했다.
TOPIK은 교육부 직속 책임운영기관인 국제교육원이 주관하는 한국어능력시험으로 외국인들의 국내 대학 입학, 취업, 비자 취득 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시험이다. 지난해 TOPIK을 응시한 인원은 약 50만명으로 종이 기반 시험(PBT)은 89개국에서 48만1505명이, 인터넷 기반 시험(IBT)은 6개국에서 1만993명이 응시했다.
TOPIK을 첫 '민간투자 소프트웨어'로 사용해 디지털 체제로 전환하고 한국어 평가·학습 서비스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이번 사업의 골자다. 해당 사업은 지난해 5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수익형 민간투자 소프트웨어 사업'으로 인정받으며 본격화됐다.
수익형 사업은 정부의 재정 지원 없이 민간사업자가 구축 및 운영 비용 전액을 부담하고, 그 비용을 시스템 운영에 따른 수익으로 회수하는 사업을 뜻한다. 이번 사업의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네이버 컨소시엄이 사업시행자로 최종 지정될 경우 전체 3439억6800만원을 전액 부담하게 된다.
TOPIK 민영화 반대 연대는 TOPIK을 수익 창출을 위한 '소프트웨어'로 취급해 출제와 평가를 민간에 맡기는 것은 공공성과 신뢰성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국제교육원이 교육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전무해 절차적 정당성이 부재하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백승주 전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정란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학부 교수, 강남욱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공동 입장문을 통해 "정부가 허락해 공공의 평가에 민간 기업이 개입하고 이로부터 수익을 내어 투자비를 회수하도록 하는 것은 연구자로서 이해할 수도 없고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방식"이라며 "한국어는 상품이 아니라 공공재"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어능력시험의 디지털화가 필요하다면 어떤 방식으로 진행돼야 하는지 공론장에서 투명하게 논의하고 논쟁할 필요가 있다"며 "공론화 과정 없이 기술이 민간 기업의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한국어능력시험의 핵심 영역을 민간에게 넘기는 것은 교육부가 그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번 사업으로 응시료가 인상되고 PBT가 전면 폐지돼 IBT·홈테스트가 시행되며 이주민들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을 지낸 석원정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소장은 "(이주민들에게) TOPIK은 단순히 한국어 실력 보여주기가 아니라 수십, 수백만원을 쏟아부어서라도 갖춰야 하는 절실한 자격증"이라며 "한글과 컴퓨터에 미숙한 이주민에게는 진입장벽이 될 것이 분명한 IBT 방식으로의 전체 전환, 무려 3만~4만원 이상 대폭 비싸지는 응시료만으로도 기존의 TOPIK 시스템이 대다수 이주민에게 끼쳤던 불편을 해소하는 방향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날 TOPIK 민영화 반대 연대는 ▲정부의 TOPIK 디지털 전환 사업 민영화 방식 추진 즉각 중단 ▲교원, 연구자, 학습자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공론화 절차 시작 ▲공공성 보장하는 대안적 디지털 전환 방안 마련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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