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2021년 출범한 미·영·호 3국 안보동맹 '오커스(AUKUS)'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귀환과 함께 중대한 기로에 섰다. 미국이 동맹국 호주에 제공하기로 한 핵잠수함 공급 계획을 포함해 오커스 전반을 재검토 중이라는 사실이 11일(현지시간) 복수의 외신 보도로 확인됐다.
미국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로이터통신에 "오커스는 전임 행정부의 구상이며,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원칙과 부합하는지를 재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며, 기존 동맹정책과의 거리두기를 시사했다.
오커스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군사적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미·영·호 3국이 체결한 안보협정으로, 핵추진 잠수함 기술을 공유하는 것을 중심축으로 한다. 미국은 2030년대 초까지 버지니아급 핵잠수함 최대 5척을 호주에 제공하고, 이후 호주와 영국이 미국의 기술을 바탕으로 자체 건조에 나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미국 내 조선 역량 저하와 방위 산업 생산 차질로 인해 잠수함 공급 자체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희소한 전략 자산'인 핵잠수함을 해외에 이전하는 오커스 구상이 트럼프 행정부의 국익 우선 기조와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특히 국방부 정책차관인 엘브리지 콜비는 오커스에 부정적인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작년 영국의 한 싱크탱크 행사에서 "미국은 자국 수요를 충족할 만큼 핵잠수함을 충분히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며, "가장 필요한 시점에 왜 우리의 왕관 보석 같은 자산을 다른 나라에 넘기려 하느냐"고 비판한 바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현재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일정이 지속적으로 지연되고 있고, 비용 초과 문제도 심각해 의회와 국방부 내에서 오커스 프로그램에 대한 회의가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미 해군의 버지니아급 잠수함 생산 일정은 2020년 이후 계속 지연돼 왔으며, 이미 계획된 일정 내 인도조차 어려운 상태다.
미 국방부는 블룸버그에 보낸 성명에서 "이번 재검토는 미국 장병의 대비태세를 최상으로 유지하고, 동맹국들이 집단 안보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도록 하는 동시에 방위산업 기반이 수요를 충족하는지를 점검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오커스 동맹을 통한 방위력 강화에 기대를 걸어온 영국과 호주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영국 정부 대변인은 "중요한 협력 관계를 새 행정부가 점검하고자 하는 의도를 이해한다"면서도 "오커스의 효익과 기회를 극대화하기 위해 미국, 호주와 계속해서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호주 국방장관 리처드 말스 역시 "오커스 협정에 대한 호주의 전념에는 변함이 없다"며 "재검토 과정에서 미국과 긴밀히 협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호주의 핵잠수함 확보는 자국 안보 전략의 핵심축으로 자리 잡은 상황이라, 미국의 정책 변화는 심각한 안보 공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오커스 재검토가 단순한 정책 점검 수준을 넘어서 동맹의 구조적 수정 또는 축소로 이어질 경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 주도의 안보 질서에 중대한 균열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중국이 이 지역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가운데, 오커스의 흔들림은 그 자체로도 전략적 리스크가 된다는 분석이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은 전통적 동맹보다는 거래 중심의 외교를 선호하는 만큼, 오커스와 같은 집단 안보협약의 유지 자체가 그의 정책 방향과 배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가 오커스 협정의 일부 조항을 재협상하거나 아예 전면 폐기를 선택할 경우, 영국과 호주의 군사력 증강 계획에는 치명적인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 안보 질서 재편의 변곡점에 선 오커스. 향후 트럼프 행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에 따라 동맹의 운명은 물론, 인도·태평양 안보 지형 전체가 요동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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