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량규제의 역설] ③규제인가 배제인가…실수요와 ‘정책 틈’ 좁히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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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량규제의 역설] ③규제인가 배제인가…실수요와 ‘정책 틈’ 좁히려면

직썰 2025-06-11 16:30:00 신고

3줄요약
이제 금융은 ‘얼마나 절박한가’보다 ‘얼마나 갚을 수 있는가’를 먼저 묻는다. 총량규제는 가계부채 관리를 명분으로 시행됐지만, 정작 가장 절실한 실수요자들이 제도 밖으로 밀려났다. 대출 문턱은 높아졌고, 고금리 대안만 남았다. 이 시리즈는 ‘총량’이라는 숫자 뒤에 숨겨진 현실을 추적한다. 고금리에 내몰린 청년과 서민, 구조적 배제의 메커니즘, 그리고 복귀조차 허락되지 않는 금융의 자기모순을 다룬다. 정책은 숫자를 관리했지만, 삶은 계산 바깥에 있었다. 규제의 목적은 무엇이며, 금융은 누구를 향해야 할까? 그 질문에서 다시 시작한다. [편집자주]
[그래픽=안중열 기자]
[그래픽=안중열 기자]

[직썰 / 안중열 기자] ‘총량’은 관리됐다. 문제는 그 아래 깔린 삶이었다. 주거, 의료, 생계 같은 기본이 ‘포트폴리오 리스크’로 분류되는 현실. 지금의 금융은 타이밍도 맥락도 고려하지 않은 채 일괄 규제를 강요한다. 실수요자를 정책 안으로 다시 불러들이기 위한 해법은 무엇인가. 서울시의 실험, 지역 맞춤형 규제, 복귀 시스템까지. 이제는 숫자보다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수치 너머의 삶, 금융 바깥으로 밀려나다

금융당국의 총량규제는 거시 건전성 확보를 이유로 가계대출 총량, 연간 증가율, 기관별 한도 등 수치 관리에 집중해왔다. 이 수치는 정기 보고 체계와 감독 지침을 통해 각 금융사의 대출 전략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수치 뒤에 있는 삶은 점점 금융권 바깥으로 밀려나고 있다. 한국은행과 금감원에 따르면, 2025년 현재 카드론·저축은행 등 비은행 대체 금융 이용 비율은 28.3%로 2021년(약 15%)보다 거의 두 배로 증가했다.

2030 청년층은 이탈 현상이 특히 두드러진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확대와 대출 심사 강화로 인해 제도권 대출에서 탈락하고, 대신 금리가 높은 비은행권에 몰리고 있다. 이들 연체율은 2024년 대비 2.4배 상승해 신용등급 하락이라는 악순환에 빠졌다.

총량규제 아래에서 실수요자의 선택지는 줄고, 부담은 커진다. 문제는 대출이 거절된 사유조차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창구는 고객의 사정이 아닌 본점의 정량 기준과 포트폴리오 위험도에 따라 기계적으로 판단한다. 상담 창구는 더 이상 상담하지 않고 통보만 한다.

◇‘규제 틈’에 몰린 수요, 5월 대출 6조 급증

이처럼 제도권에서 밀려난 수요는 결국 규제의 빈틈을 비집고 나온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2025년 5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4월보다 5조2000억원 증가해 1155조3000억원에 달했다. 전 금융권으로 보면 전체 가계대출은 6조원 늘어, 지난해 10월 이후 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에 따른 주택 거래 증가, 7월 DSR 규제 강화 전 선제적 자금 수요, 계절적 생활자금 수요 등이 맞물렸다. 주택담보대출은 한 달 새 5조6000억원 불었고, 신용대출도 8000억원 증가했다.

총량규제 아래서도 수요는 멈추지 않는다. 다만 그 흐름은 더 비틀리고, 더 비공식화된다. 가계부채 통계의 숫자 속에는 정책을 앞선 대응, 규제를 피해 도달한 자금 흐름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시기와 지역을 외면한 일괄 규제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자금이 닿지 않으면, 금융은 기능이 아니라 장벽이 된다.

2025년 설 직전 한 달간 경기·인천 지역의 전세 재계약은 평월 대비 38%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전세자금 대출 승인율은 오히려 11% 감소했다. 임대차 갱신과 명절 자금 수요가 겹친 계절성 수요가 정량 규제 앞에서 무시된 것이다.

농촌 지역도 마찬가지다. 충북·전남의 농가들은 1~2월 농번기 준비와 명절 생계자금 수요로 평시 대비 70% 이상 자금 수요가 늘었지만, 지역 금융기관은 본점의 연간 총량 지침에 따라 대출을 제한해야 했다. ‘수요의 증가’보다 ‘할당량 소진’이 우선되는 구조다.

이로 인해 수도권·비수도권 간 금융 접근성과 정보 격차는 물론, 지역경제의 회복력까지 흔들리고 있다. 실수요가 입증된 경우조차 규제 시스템은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

◇서울시의 실험, 제도화의 가능성

서울시는 2025년 1월부터 청년·비정형 소득계층 1천 명을 대상으로 ‘목적 기반 금융(PBF: Purpose-Based Finance)’ 실험을 시작했다. 정형적 신용평가를 넘어서 자금 사용 목적과 상환 의지·이력까지 반영하는 방식이다.

이 모델은 납부이력, 통신비·임대료 납부 성실도, 거래 습관 같은 비금융 데이터를 활용해 대체 신용을 평가한다. 통신 3사, 간편결제 플랫폼, 공공요금기관의 협조로 데이터 연동이 이뤄졌고, 서울신용보증재단이 보증 역할을 맡는다.

핵심은 제도권 금융 ‘복귀’를 고려한 설계다. 실제로 참여자의 18%는 신용 회복 후 저금리 금융상품으로 전환됐으며, 평균 금리는 4%포인트 이상 낮아졌다.

서울시는 금융위·복지부와 협의를 통해 해당 모델의 전국 확대를 논의 중이다. 복지와 금융의 경계에서 사회안전망과 금융접근권을 잇는 제도 설계가 시도되고 있다.

◇규제는 틀, 사람 중심으로 유연화해야

총량규제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일률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시장에는 의료비, 이직, 이사, 계절 생계비 등 예측 불가능한 수요가 존재한다. 그러나 현행 총량규제는 이러한 변수들을 반영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총량규제를 없앨 수는 없다. 가계부채 관리와 금융 안정의 핵심 도구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유연성’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정책 목적이 명확한 금융에는 시기·지역·계층별 탄력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공공 보증과 재정 분담을 통한 리스크 분산, 민관 공동 평가 시스템, 실수요 중심의 신용평가 확산 등이 보완 장치로 제안된다. 이를 위해선 제도적 인센티브와 평가 기준 개편이 병행돼야 한다.

총량규제는 원칙이 아니라 틀이어야 한다. 그 틀 안에서 사람 중심의 금융이 작동할 수 있도록, 규제는 더 유연해져야 한다. 숫자의 완결성보다 삶의 맥락을 반영하는 유연함이 금융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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