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마침내 국내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 티빙과 웨이브의 기업결합을 조건부로 승인했다. 두 회사는 내년 말까지 요금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을 받아들였다. 넷플릭스의 독주 속, 국내 토종 OTT들의 '규모의 경쟁'을 가능하게 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 이번 결합은 과연 득일까, 실일까?
양사는 그동안 따로는 넷플릭스의 벽을 넘지 못했다. 티빙과 웨이브의 결합은 단순히 시장점유율을 더하는 것이 아니다. 실시간 방송 채널과 K콘텐츠, 프로야구 중계 등 각자의 강점을 묶는 전략적 움직임이다. 통합 시 월간 활성 이용자(MAU)는 1,127만 명으로, 넷플릭스(1,450만 명)에 근접하게 된다. 숫자만 보면 국내 OTT 1위 경쟁도 꿈은 아니다.
하지만 공정위가 단호히 내건 조건들은 이 결합이 단지 '규모 키우기'에 그쳐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공정위는 양사 결합이 OTT 시장의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할 우려가 있다며, 요금 인상에 제동을 걸었다. 내년 12월 31일까지 기존 요금제를 유지하고, 소비자가 재가입 시 동일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요금 인상을 사실상 1년간 유예한 것이다.
그 배경에는 현실적인 시장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 두 회사가 결합함으로써 OTT 상위 4개 업체가 3개로 줄고, 새로운 결합법인은 시장에서 더욱 유리한 가격 책정 권한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실시간 채널, 스포츠 중계 등 대체 불가능한 콘텐츠를 보유한 상황에서 소비자 선택권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물론 공정위는 이 결합이 콘텐츠 봉쇄나 통신사 기반 독점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 CJ ENM이나 SK텔레콤이 경쟁사 콘텐츠를 막기 어렵고, 다른 통신사와 플랫폼들이 충분히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OTT 시장의 특성상, 가격 인상이나 콘텐츠 접근성 제한은 조용히, 점진적으로 일어난다. 이번 조건이 완충장치가 될 수는 있지만 영구적인 방패는 아니다.
이번 결합은 한국 OTT 산업에 있어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넷플릭스, 디즈니+, 쿠팡플레이 등 글로벌 및 대형 국내 기업들과 본격적인 경쟁에 나설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셈이다. 특히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 등 K-콘텐츠가 세계적 흥행을 거두며 ‘한국형 오리지널’의 가능성을 입증한 가운데, 독창적인 스토리와 장르의 다변화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다.
이제는 드라마 중심의 콘텐츠 편중에서 벗어나, 다큐멘터리와 인터랙티브 콘텐츠,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로의 확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이 과연 소비자 편익과 콘텐츠 다양성, 그리고 장기적인 가격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기업은 ‘크기’로 승부를 보려 하고, 공정위는 ‘가격’으로 브레이크를 건다. 이 둘 사이의 긴장 속에서 누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을까? 결국 그 대답은 늘 그래왔듯, 구독 버튼을 누르는 소비자 손에 달려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knewscor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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