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국민연금 개혁을 핵심 국정과제로 제시한 가운데 정책 방향에 대한 기대와 함께 구조적 실행 과제에 대한 논의도 시작되고 있다. 의료 공공성과 세대 간 형평성을 높이겠다는 목표는 제시됐지만, 현장에서는 재정 지속 가능성과 제도 설계 방식에 대한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에 따르면 현행 보험료율과 지출 구조가 유지될 때 건강보험 당기수지가 2026년부터 적자로 전환, 2030년 전후로는 누적 준비금까지 소진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개혁이나 필수의료 확충 등 추가 지출 요인이 반영되면 당기수지 적자 전환 시점은 2025년, 준비금 고갈 시점은 2028년으로 앞당겨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달 초 건강보험 개편 방향으로 경증 질환 본인부담 완화, 중증질환 본인부담상한제 정비, 지역 필수의료 인력 확충, 보건부 신설 추진 등을 제시했다. 의료계에서는 이런 조치들이 건강보험 재정과 의료공급 체계에 대한 구조적 접근 없이, 단편적인 수요자 중심 대책에 머물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책 설계 과정에서 의료 공급자의 관점이 배제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언급된다. 정부는 보장성 강화를 통해 국민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입장이지만, 의료 서비스 질과 지속 가능성은 공급자인 의료기관과 의료진의 판단 및 역량에 달려 있다. 전문가 중심의 설계 없이 수요자 편익만을 강조하는 접근은 제도적 균형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한 의료 관계자는 “시민단체와 소비자단체 등 비의료인의 목소리가 정책에 강하게 반영되는 반면, 의료 현장의 실제 설계 권한은 축소되고 있다”며 “정책은 의료소비자의 권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실제 제도 운용 주체인 공급자의 참여가 부족하면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가 보장성 축소 기조를 유지했던 것과 달리 이재명 정부는 확대 기조를 제시하고 있지만 실행 구조 측면에서는 유사한 한계가 반복되고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단편적 의료 쇼핑 방지’를 목표로 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이를 뒷받침할 제도 설계는 아직 구체화하지 않은 상태다.
의료 인력 배치 문제도 주요 과제로 꼽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서울이 4.97명으로 가장 높지만, 충북과 전북은 각각 2.40명, 3.10명 수준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인력을 늘리는 것보다 지역·진료과목별로 의료 수요를 정밀 분석해 배치하는 구조 설계가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건부 신설이나 공공의대 설립 등 장기적 방향을 제시하고 있지만, 단기적 정책 실행은 여전히 공백 상태라는 평가다.
의료계는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면 구조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보장성 확대만으로는 의료비용을 감당할 수 없으며 의료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수가 체계를 전면적으로 재구성하지 않으면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도 이어진다.
국민연금 개혁 논의도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연금 고갈 문제와 세대 간 형평성 확보를 강조해 왔다. 정부 출범 이후 연금개혁특위가 재가동되었지만, 논의는 국회 차원에 머물고 있으며 대통령 직속 추진 기구나 독립적인 실행체계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현행 제도가 유지된다면 국민연금의 재정수지는 2041년부터 적자로 전환, 누적 기금은 2057년경 고갈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인상하더라도 소득대체율 조정·수급 나이 변경 등 구조 전반에 걸친 개혁이 없이는 재정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공공복지 전문가는 “이제는 의료비를 얼마나 줄이느냐보다, 어떻게 지속할 수 있는지를 설계해야 할 때”라며 “재정 추계에 기반한 수가 조정, 지역 단위 의료 인프라 확충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적 계산보다 제도 기반 정비가 우선돼야 한다”며 “정부가 실행 주체로 나서야 개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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