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미국의 글로벌 보건 원조 축소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수출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 미국의 해외원조 정책이 급변하면서 신풍제약, SD바이오센서, 엑세스바이오 등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의 피해가 가시화되는 양상이다. 정부는 바이오산업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장에서는 대응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의약품 수출액은 92억7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22.7% 늘었다. 바이오의약품 수출은 55억1000만달러로 41.3% 증가, 보건산업 전체 수출은 약 252억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5년에도 수출 증가세가 이어질 전망이지만, 개발도상국형 공공조달 품목을 중심으로 일부 발주 지연 및 중단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1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국제개발처(USAID)의 구조 개편에 착수했다. USAID는 1961년 케네디 대통령 시절 설립된 글로벌 개발협력 기구로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공공보건 수요를 맞추는 통로 역할을 해왔다. 현재 이 통로가 약화되면서 국내 제약사들은 대체 수출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해외원조 예산은 전년 약 610억달러에서 584억달러로 줄었고, USAID·국무부 연합 프로그램 예산의 80% 이상이 삭감 대상에 포함되면서 조달 프로그램 축소가 본격화됐다. 앞서 신풍제약은 지난해 약 100억원 규모의 말라리아 치료제 ‘피라맥스’를 USAID를 통해 아프리카에 공급했으나, 올해는 발주가 전무한 상태다. SD바이오센서, 엑세스바이오, 셀트리온 등도 일부 품목의 납품 중단이나 조달 무산 사례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정부 차원 대응은 지연되는 모양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보건복지부는 이번 사안을 기업 간 계약 이슈로 분류, 외교부의 공적개발원조(ODA) 연계 수출 지원도 체계적으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일각에서는 중견 제약사 중심 피해가 정부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린 배경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재명 정부는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부터 바이오를 반도체와 함께 첨단 전략산업으로 지정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바이오헬스를 5년 내 수출 3대 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히며 국가 바이오혁신위원회 설립, 임상시험 인프라 확충, 바이오 특화 규제혁신지구 조성 등을 추진할 전망이다.
수출 환경이 급변한 상황에서 정부 정책은 내수 중심 연구개발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조달시장 대응과 해외 진출 전략 등 실질적인 수출 지원책은 미흡하다는 평가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개발도상국 보건원조 조달은 그간 글로벌 기업 중심이었으나 코로나19를 계기로 국내 기업들도 일정 역할을 해왔다”며 “현재는 제도와 외교적 지원이 없이는 수출 유지가 어려운 상황임에도 정부 대응은 부족하다”고 말했다.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은 대기업보다 중견·중소기업의 해외 조달 의존도가 높은 구조를 띠고있다. 대형사는 미국 식품의약청(FDA) 등 주요국 허가 시장 중심의 전략을 취해왔지만, 중견사는 세계보건기구(WHO) 사전적격인증(PQ), USAID 등을 통한 조달로 매출을 확대한 사례가 많다. 때문에 이번 조달 축소는 산업 전반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현재를 정부 바이오 정책의 실행 체계의 전환 시점으로 보고 있다. 외교부·산업부·복지부 간 ODA 전략 통합, 공적조달 전담조직 신설, 중견기업 대상 글로벌 인증 지원 등 실질 대응 방안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수출바우처나 연구개발(R&D) 과제와는 별도로 실제 수출로 이어질 수 있는 조달 전략 강화가 필요하다고 분석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지금 제약·바이오 업계는 자금보다 수출 판로가 더 큰 과제”라며 “공공조달 시장 개방이 병행되지 않으면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USAID의 개편은 단순히 한 국가의 변화가 아니라 글로벌 의약품 공급 구조 자체의 재편을 의미한다”며 “한국도 전략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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