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반도체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내세우며 새 정부 정책이 어떤 전략으로 이어질지 산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이 보조금 축소로 기업 책임을 강화, 유럽은 인재 양성과 공급망 협력에 나서고 있는 분위기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세액공제·특화단지 중심의 양적 지원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계에선 ‘방향’보다 ‘실행’을 내세우며 제도 설계와 현장 여건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앞선 정부의 반도체 예산 구조도 실행력 부재라는 한계를 드러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24~2025년 반도체 예산은 약 33조원으로 상당수가 세액공제, 특화단지 인프라, 연구개발(R&D) 보조금 등 양적 인센티브에 집중됐다. 기업 투자 증가분에 대한 ‘초격차 R&D 세액공제’도 올해 말까지 적용된다.
한국이 재정 중심 지원에 치중하는 사이 미국은 ‘선택과 집중’ 원칙을 앞세우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상원 세출위원회 청문회에서 “대미 투자액의 4% 이상을 보조금으로 지급하는 건 과도하다”고 밝혔다. 기존 바이든 행정부의 10% 수준에서 절반 이하로 줄이겠다는 의도다.
배경엔 재정 통제와 기업 자율성을 중시하는 미국 정부의 철학이 깔려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민간 투자를 세금으로 유도하기보다 시장 논리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TSMC는 약 66억달러 보조금을 제안받은 가운데 총 650억달러의 미국 내 투자를 결정했다. 무차별 지원보다 필요한 곳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방향으로 풀이된다.
이재명 정부는 다른 접근을 택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반도체는 국가가 밀어야 할 분야”라고 강조, 전임 정부에서 마련한 법·제도를 바탕으로 세액공제율 상향, 반도체 특성화고 설립, 첨단 패키징 R&D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다. 민간과 국가의 공동 역할을 강조했던 이전 정부와 달리 정부 역할 확대가 보다 뚜렷하다는 평가도 있다.
문제는 정부의 적극적 지원 기조와 산업계의 체감 간극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업계는 보조금 총액보다 예측 가능한 제도 설계, 실질적인 부지 확보, 기술 인력 양성 인프라를 시급한 과제로 꼽는다.
유럽과 일본은 민관 협의, 인력 양성 등 실질적 실행 장치를 먼저 마련해 대응하고 있다. EU는 반도체법을 통해 민관 협의체와 지역 맞춤형 인력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일본도 대학을 중심으로 한 기술 인력 허브를 조성해 현장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선언보다 실행 체계가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정책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 부족이 여전히 우려로 남아 있다. 반도체 산업은 수년 단위 장기 전략이 필요한 만큼 해마다 바뀌는 기준은 기업의 투자 결정을 어렵게 만든다. 삼성전자와 SK그룹은 보조금 수혜 여부와 별개로, 글로벌 협업과 장기 투자 중심 전략을 지속하고 있다.
주요 기업들은 해외 현지 협력과 기술 파트너십 강화로 선제 대응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최근 미국 출장 중 메타·아마존·퀄컴 등 글로벌 빅테크 CEO들과 만나 AI 및 반도체 협업 방안을 논의했다. SK그룹도 세계가전전시회(CES) 등 국제 행사를 통해 AI·반도체 융합 기반의 글로벌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기업 움직임에 정부 정책이 속도 있게 따라붙기를 기대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지금 필요한 건 방향보다 실행”이라며 “보조금이나 세제 혜택보다 중요한 건 예측 가능한 환경과 일관된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어 “입지, 인허가, 인력 확보 같은 현실 과제를 풀어낼 실행 체계가 조속히 작동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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