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대법원이 유죄 취지 파기환송 결정을 내린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재판이 연기된다. 해당 사건의 재판부가 9일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규정한 헌법 84조를 적용하면서다.
헌법 84조에 대한 해석을 놓고 여러 의견이 나왔으나 법원이 '재판도 중지된다'고 결론을 내린 만큼 이 대통령의 다른 재판들도 모두 연기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와 관련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당연한 결정'이라는 입장과 함께 오는 12일 본회의에서 대통령 임기 중 재판을 중단하는 이른바 '재판중지법'(재판정지법)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사법부가 권력에 굴복한 것'이라며 비판을 쏟아냈다.
서울고법, 헌법84조 논쟁 종지부…"불소추 특권은 재판도 포함"
서울고법 형사7부(이재권 부장판사)는 9일 헌법 84조를 근거로 들며 이달 18일로 예정됐던 이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심 기일을 변경하고 추후지정했다고 밝혔다.
기일 추후지정(추정)은 기일을 변경, 연기 또는 속행하면서 다음 기일을 지정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재판이 중단되는 것이다.
앞서 대법원이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해당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면서 이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재판 진행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나왔다.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訴追)를 받지 아니한다'고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규정하고 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소추'의 개념을 사전적 의미에 따라 형사 기소에 국한해 봐야 한다며 이미 기소를 한 재판은 그대로 진행된다는 견해와 소추를 기소 이후 공소 유지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봐 이미 기소된 형사재판도 대통령 당선 시 임기 만료까지 중단돼야 한다는 견해가 각각 제시됐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각 재판을 맡은 개별 재판부가 결정할 일이라며 적극적인 해석을 내놓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해당 재판부가 "헌법 84조에 따른 조치"라고 밝히면서 추정 결정을 내린 만큼 대장동과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을 비롯한 나머지 사건 재판부도 재판을 연기하는 동일한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커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이진관 부장판사)가 심리하는 대장동·백현동·위례 개발비리 의혹 및 성남FC 의혹 사건은 오는 24일 속행 공판이, 수원지법 형사11부(송병훈 부장판사)가 심리 중인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사건과 법인카드 유용 의혹 사건은 다음 달 각각 공판준비기일이 잡혀있다.
위증교사 혐의 2심을 심리하는 서울고법 형사3부(이승한 부장판사)는 지난달 12일 이 대통령의 대선 후보 등록을 이유로 기일을 별도로 지정하지 않고 연기했는데, 대선이 끝난 상황에서 추가로 기일과 관련한 입장을 밝힐 가능성이 있다.
이와 별개로 민주당은 대통령 당선 시 진행 중인 '형사재판을 정지'하도록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오는 12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계획이다. 그렇게 될 경우 개별 재판부 판단과 별개로 이 대통령의 형사재판은 일률적으로 정지될 것으로 보인다.
與 "지극히 당연"…'재임 중 형사재판 정지', 12일 본회의 처리 예고
여당인 민주당은 이날 법원이 재판 기일을 연기한 데 대해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사법부가 헌법 84조에 의거 공직선거법 파기환송심에 대해 현직 대통령의 불소추 관련 규정을 인정한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의 검찰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 기소 자체를 취소했다"며 "우리나라 검찰도 현직 대통령에 대한 헌법 조항을 적극적으로 인용, 정치적 기소 자체를 취소해야 한다고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박홍근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생 경제 회복과 관세 협상 대응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증거도 없는 보복성 표적 수사와 억지 기소로 어차피 무죄 나올 게 뻔한 재판에 '프로 일잘러'의 시간을 허비해서야 되겠나"라며 "희대의 대법원 대선 개입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재판부의 오늘 조치도 같은 맥락"이라고 썼다.
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인 김용민 의원도 "당연한 명제를 서울고법이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라며 "이를 당리당략에 따라 정쟁으로 끌고 가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을 흔들려고 하는 세력들에 대해 깊은 우려와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이와 별개로 각종 개혁 과제들은 중단 없이 추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영록 전남지사 역시 페이스북에 "당연한 일로, 재판부 결정을 환영한다"며 "이것이 상식과 국민 법 감정에 합당한 일이고, 미국에서도 관행적으로 현직 대통령에 대해서는 재임 중 재판이 중지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기회에 헌법상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을 명확히 하는 입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국회는 헌법취지를 살려 대통령 재직 중 형사재판 절차를 중단하는 형사소송법의 조속한 개정을 통해 더 이상의 논란을 없애주길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소속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은 9일 "재판중지법을 12일에 (본회의에서) 통과시킨다"고 말했다. 서울고법이 재판 기일을 연기했음에도 '李재판중지법'은 그대로 12일 본화의에서 처리한다는 것이다.
정 위원장은 이날 '매불쇼' 유튜브에서 법원의 결정에 대해 "'우리가 이렇게 떡 하나 줄 테니 재판중지법을 통과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시그널로 읽힌다"며 "(이 결정과) 관계 없이 12일에 통과시키자고 박찬대 원내대표 등과 오전에 회의를 했다"고 전했다.
이어 "대선 전에 형사 절차가 (헌법) 84조에 의해 중지된다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나"라며 "지금까지 계속 눈치를 보다가 정권이 교체되니 자기들이 시혜를 베풀듯 하는 것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힘 "법원, 정치권력에 굴복" 한동훈"사법부 역사에 큰 오점"
민주당과 달리 국민의힘은 법원의 결정에 대해 "사법부가 정치권력에 굴복했다"며 비판을 쏟아냈다.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오늘 서울고법의 (재판 연기) 판단은 한마디로 사법의 유예"라며 "권력에 순응한 개별 재판부의 결정"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사법부를 향해 "권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정의의 눈을 바로 뜨라"며 "그렇지 않으면 이 나라는 헌법 위에 권력이 군림하고 법치 대신 눈치가 지배하는 위헌 공화국이 될 것"이라고 촉구했다.
또, 민주당을 향해 "이쯤 되면 사법부를 헌법이 부여한 독립기관이 아니라 정치권력의 하명기관쯤으로 여기는 것"이라며 "법 앞에 모든 국민이 평등하다는 헌법정신이 무너지고 있다. 죄 있는 권력자는 법망을 피해도 괜찮다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도 이날 의원총회에서 "헌법 제84조는 새로운 재판을 위한 대통령의 기소가 불가능하다는 뜻이지,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며 "권력의 바람 앞에 미리 알아서 누워버린 서울고법 판사의 판단은 두고두고 사법부의 흑역사로 남을 것"이라고 질타했다.
장동혁 의원은 "2025년 6월 9일은 사법부가 정치권력에 굴복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며 "입법부에 이어 행정부를 장악하고, 나아가 '사법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사법부까지 굴복시킨 이재명 정부에서 진짜 정의는 죽었다. 앞으로 펼쳐질 5년은 이재명의, 이재명에 의한, 이재명을 위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권 주자들도 한목소리로 법원의 결정을 비판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스스로 사법부 독립을 꺾은 오늘 결정은 대한민국 사법부의 역사에 큰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며 "누구도 헌법 위에 있지 않다는 원칙을 바로 세우지 못하면, 잘못된 나라를 대대로 물려주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경원 의원은 "법원이 드디어 이재명 대통령에 무릎 꿇었다. 오늘의 사법부 태도는 대한민국 헌법의 후퇴선언"이라며 "대한민국 헌정사에 '사법의 정치 예속'이라는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이제 민주당의 재판정지법도 필요 없게 됐다. 유권무죄, 무권유죄 시대가 드디어 열렸다"고 주장했다.
김기현 의원도 "유권무죄가 상식이 되어버린 세상, 권력이 있으면 면죄부를 받는 세상. 가히 '이재명 독재' 세상이 도래했다"며 "헌법과 법치를 지켜야할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는 오늘 자신들의 기본적 책무조차 스스로 포기하며 권력의 발아래 납작 엎드려버렸다. 바람에 눕는 갈대도 이렇게 빨리 엎드리진 않는다"고 비판했다.
'사법신뢰·재판독립'…법관대표회의 30일 열린다
한편 사법부의 신뢰 및 재판독립 등을 논의할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이달 30일 열릴 것으로 보인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지난달 26일 진행한 임시회의의 속행기일을 오는 30일 오전 10시로 지정했다고 9일 밝혔다.
앞서 법관대표회의는 지난달 26일 임시회의를 열었지만 입장 채택 없이 대선 이후 논의를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당시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선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번 회의에서는 지난 회의에서 결론을 못 내린 안건들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회의에서는 우선 공정한 재판과 사법부의 신뢰, 재판독립 침해 우려 등에 관해 법관대표회의 명의로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할지 등 김예영 의장(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이 상정한 2개 안건에 관해 논의했다.
또한 당일 현장에서 추가로 여러 안건이 발의됐고 5개 안건이 상정 요건을 충족했다.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가 법관 독립에 대한 중대한 위협 요소임을 확인하거나,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이 사법부 신뢰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음을 지적하거나, 개별 재판을 이유로 법관에 대해 과도하게 책임을 묻는 것이 사법부 독립을 침해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하자는 안건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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