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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먼트뉴스 이혜원 인턴기자] 핀란드 영화계의 거장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사랑은 낙엽을 타고> 는 찬란하거나 극적인 사랑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언제나 그랬듯, 말수 적은 두 인물이 차가운 도시의 어두운 골목에서 어떻게 서로를 발견하고, 끝내 서로를 기억하게 되는지를 조용히 그려낸다.
이번 작품은 특히 그의 초기 프롤레타리아 3부작 (그림자 속의 노동자, 어리석은 청춘,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을 잇는 듯한 정서를 띤다. 고용 불안, 빈곤, 알코올 중독이라는 주제를 배경에 깔고 있으면서도, 그 위에 작고 따뜻한 사랑을 뿌려 넣는다.
버려진 이들을 위한, 버려지지 않은 시선
주인공 안사(알마 포이스티)는 유통기한 지난 식품을 정리하다 해고당한 슈퍼마켓 노동자다. 철거 예정인 단칸방에서 홀로 살아가는 그는 어느 날 우연히 노래방에서 홀라파(주시 바타넨)를 만난다. 알코올 중독으로 겨우 삶을 유지하던 그 역시 빈곤의 경계에 선 인물이다. 그들의 만남은 번쩍이는 불꽃이 아니라, 낙엽처럼 조용히 내려와 서로의 어깨에 앉는다.
감독은 이들을 과장하지 않는다. 차라리 무심한 듯 담담하게, 술을 끊기로 결심하는 홀라파의 모습이나, 해고 후 동료와 함께 어두운 거리를 걷는 안사의 실루엣 속에서 관객은 그들이 얼마나 고요하게 싸우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극장, 위로와 연대의 공간
두 사람이 다시 마주치는 공간은 '영화관'이다. 현대의 바삐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영화관은 낡고 조용하지만, 유일하게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장소로 남는다. 실제로 이들이 관람하는 영화는 짐 자무쉬의 좀비영화 데드 돈 다이. 삶과 죽음, 저항과 순응이라는 주제를 다룬 이 작품은 <사랑은 낙엽을 타고> 의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반영한다.
극장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관계 회복의 공간이자, 현실의 부조리함으로부터의 일시적 도피처이기도 하다.
고전주의적 미장센과 시대를 초월한 정서
카우리스마키의 연출은 여전히 고전적이다. 종이에 적힌 전화번호, 날아가는 쪽지, 손으로 다듬은 듯한 따스한 조명. 동시에 그는 라디오 속 뉴스를 통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현대의 비극을 삽입하며, 이 세계가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한다.
결말 없는 결말이 주는 위로
<사랑은 낙엽을 타고> 의 마지막 장면은 영화관이다. 두 인물은 상영관 안에 나란히 앉지만, 카메라는 끝내 그들이 손을 맞잡거나 포옹하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어둠 속 작은 불빛처럼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만이 남는다.
이 결말은 오히려 강렬하다. 명확한 해피엔딩도, 비극도 없이, “살아가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은 가능하다”는 희망이 잔잔히 남는다.
영화 그 자체로 낙엽 같은 위로
<사랑은 낙엽을 타고> 는 화려한 감정의 파노라마가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본 이들은 말한다. “작은 숨결 하나가 너무 소중해서, 끝내 그것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되는 영화”라고.
카우리스마키는 시대를 초월한 고전주의적 미학으로, 냉담한 현실과 그 속에서의 따뜻한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는 문득 깨닫는다. 사랑은 낙엽처럼, 가볍게 떨어졌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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