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으로 설계된 삶, 그리고 구조로 이어진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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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으로 설계된 삶, 그리고 구조로 이어진 사업

이슈메이커 2025-06-05 16:08:5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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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남근 기자]

책임으로 설계된 삶, 그리고 구조로 이어진 사업

배다솜 스몰테이블, 저스트인타임 대표ⓒ 저스트인타임
배다솜 스몰테이블, 저스트인타임 대표ⓒ 저스트인타임


 - 생존을 위한 노력, 현실을 밀어낸 뜨거운 추진력
 - 무일푼으로 시작한 사업, 구조를 설계하는 리더를 만들다
 
한국 사회의 많은 청년들이 ‘생존’을 전제로 삶을 설계한다. 전공보다 아르바이트가, 하고 싶은 일보다 할 수 있는 일이 우선되는 현실 속에서 누군가는 그 선택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대학 시절 수십 개의 아르바이트를 거쳐, 독일로 인턴십을 떠났고, 귀국 후 스타트업 창업과 인테리어 현장을 오가며 ‘살기 위한 일’을 버티고, 밀어내고, 새로 만들어낸 배다솜 대표. 세상은 그에게 공간을 주지 않았고, 결국 그는 직접 무대를 만들었다. 이름 없는 일꾼이 브랜드가 되었고, 이제는 구조를 만드는 플랫폼 기획자가 되어가고 있다.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한 청년이 ‘어떻게 살아남고, 왜 끝내 꿈을 향해 걷는가’를 보여주는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는 배 대표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배다솜 대표는 스타트업 사업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스스로 생존하고 증명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인테리어’라는 카드를 꺼냈고, 그 즉시 ‘노가다’라는 검색어 하나로 가장 먼저 검색된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스트인타임
배다솜 대표는 스타트업 사업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스스로 생존하고 증명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인테리어’라는 카드를 꺼냈고, 그 즉시 ‘노가다’라는 검색어 하나로 가장 먼저 검색된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저스트인타임

 

살기 위한 선택, 견디기 위한 책임
대학교 시절, 배다솜 대표의 하루는 늘 생계를 중심으로 짜여 있었다. 사랑은 많이 받았지만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환경에서 그는 생존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았다. 그가 경험한 아르바이트만 해도 무려 스물다섯 가지가 넘는다. 옷 가게 점원, 택배 상·하차, 호텔 객실 청소 등 손에 닿는 모든 일을 삶의 동아줄로 여겼다. 그는 “그때는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였어요”라고 말하며 당시를 회상했다.


  전공마저도 생존에 유리한 선택을 위해 과감히 바꾸었다. 팀 과제와 밤샘 작업이 잦았던 광고홍보학과에서 혼자 공부할 수 있는 영어영문학과로 전과한 이유는 단순했다. 시간 제약을 줄이고 더 많은 아르바이트와 대외활동을 병행하기 위해서였다. 누구보다 바쁘고 치열했던 대학생이었지만, 그는 소위 말하는 ‘경험 많은 청년’이 아니라, ‘버티는 법을 일찍 배운 어른’에 가까웠다. 생계를 위한 선택들이 반복될수록,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현실과 타협하거나, 반대로 현실을 이기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 시절의 아르바이트는 수입의 수단에 그치지 않았다. 일은 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경험이자 자립의 언어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삶이 가능했던 건 책임감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내면의 강도(强度) 때문이었다. 스스로를 밀어붙이고, 위기에서 도망가지 않으며, ‘되든 안 되든 일단 해보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그렇게 청춘의 시간 대부분을 일로 메운 그는 어느새 이름보다 역할로 먼저 불리기 시작했다. ‘학생’ 이전에 ‘가장’이었고, ‘청년’ 이전에 ‘일꾼’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삶의 시간은 이후 그가 선택한 방향과 기획, 도전의 뿌리가 되었다.

 

해외에서 얻은 감각, 플랫폼의 씨앗이 되다
청년들에게 해외 경험은 꿈이거나, 선택지를 넓힐 기회로 여겨진다. 그러나 배다솜 대표에게 해외 경험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자유이자, 반드시 붙잡아야 하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대학 시절 ‘해외 연수’의 기회가 걸린 대외활동에서 결승까지 올랐지만 결국 고배를 마셨던 경험은 오히려 결심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해외 연수의 기회를 받지 못한다면, 스스로 해외에 나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무작정 검색해 들어간 곳이 독일에서의 인턴십 프로그램이었다. 영어에는 익숙했지만, 접해본 적 없던 독일어가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의지는 누구보다 간절했다. 번역기를 돌려가며 예상 인터뷰 답변을 통째로 외웠고, 결국 네 차례의 면접 끝에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식단을 짜고, 운동 프로그램을 조율하며 현지에 있는 한국 축구 선수들의 피지컬 트레이너 보조 역할을 맡았고, 그의 역량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다시 그를 시험했다. 유럽 전역을 덮친 코로나19 팬데믹, 아시아인을 향한 혐오 범죄, 인턴 계약의 불안정성. 모든 조건이 ‘귀국’을 말하고 있을 때, 그는 다시 결정해야 했다. 한국으로 돌아갈 그를 기다리던 것은 시즌이 지난 공채, 채용이 멈춘 국내 기업 시장이었다. 그때 그가 내린 선택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방향이었다. 


  “돌아갈 결심을 한 그날, 바로 홈페이지를 만들었어요. 개발도 못 했지만, 독학으로 그날에 완성했죠.”


  자가격리 기간 동안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든 홈페이지를 통해 식단 상담 서비스를 판매했고, 며칠 지나지 않아 첫 매출인 ‘10만 원’이 계좌에 찍혔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금액이었지만, 배 대표에게는 하나의 시장이 열리는 경험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창업은 정답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는 것을. 그렇게 그가 만들어낸 첫 번째 브랜드는 대단한 기술도, 자본도 없었지만, 절박함과 실행력이라는 가장 강력한 기반 위에서 태어났다.


  이후 그는 글로벌 창업사관학교에서 500스타트업의 컨설팅 프로그램을 수료하며, 플랫폼에 대한 감각과 확신을 얻었다. 그 경험은 훗날 ‘국내 인테리어 산업의 구조를 바꿔보겠다’는 그의 플랫폼 기획의 출발점이 되었다. 

배다솜 대표의 첫 자체 프로젝트였던 ‘저스트인타임’ 카페는 단돈 2만 원을 들고, 누구나 편하게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의지에서 시작된 공간이다.ⓒ 저스트인타임
배다솜 대표의 첫 자체 프로젝트였던 ‘저스트인타임’ 카페는 단돈 2만 원을 들고, 누구나 편하게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의지에서 시작된 공간이다.
ⓒ 저스트인타임

 

무모함을 디딤돌로, 경험에서 배운 시스템의 힘
스타트업 사업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배다솜 대표는 냉정하게 말한다. ‘아직 내 시기가 아니다’라고 말이다. 공장 설비 투자에 필요한 15억 원 규모의 자본이라는 ‘현실’ 앞에 그는 고개를 숙였고, 함께하던 팀원들에게 ‘이제는 우리 스스로 생존하고 증명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할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때 그가 꺼내든 해답이 인테리어였다. 누구도 해본 적 없고, 그 자신조차도 문턱에 발을 디뎌본 적 없는 분야였다. 수천만 원 단위의 계약금, 설계 지식 하나 없는 자신이 그 책임을 지겠다는 말에 다들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동료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전달한 그다음 날, 그는 ‘노가다’라는 검색어 하나로 가장 먼저 검색된 현장에 전화를 걸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타일 자재를 옮기고, 청소를 하고, 시멘트를 퍼 나르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가 처음으로 몸담은 현장은 논현동의 고급 하이엔드 아파트였다. 누군가에게는 결과물만 남는 프로젝트였지만, 배 대표에게는 현장 시스템과 자재 흐름, 인건비 구조를 온몸으로 체득하는 훈련장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관리자의 눈에 띄었고, 이후 단순 작업자가 아닌 ‘타일 시공을 총괄하는 역할’까지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된다. 엄밀히 따지자면 역할의 변화였지만, 그는 이를 계기로 정식 직원, 나아가 동업 제의까지 받게 되었기에 승진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자재 분배표와 작업 현황판을 직접 설계했고, 엑셀로 만든 표가 그려진 종이 몇 장만으로 시스템을 만들고 현장을 효율화한 덕분에 인건비와 자재 로스를 각각 약 20% 절감했다. 배 대표의 능력을 다시 한번 검증할 수 있었던 최적의 기회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다시 방향을 틀었다. “동업 제안을 받을 정도면, ‘나 혼자서 사업을 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라는 확신이 들었던 그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현장을 조직하며 인테리어 프로젝트를 첫 계약으로 따냈다. 견적도, 도면도 볼 줄 모르던 그가 수천만 원 규모의 공사를 책임졌다. 결과는 적자. 공사비보다 투입비용이 더 컸고, 부족한 부분은 빚을 내 메웠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책임졌다. 작업이 어긋나면 새로 시공했고, 새벽에는 다른 현장을 돌며 비용을 메꿨다. 그는 그렇게 배워나갔다. 공사 도중 반장들에게 작업 방법을 물으며, 실시간으로 시공법을 체득했고 현장을 이해했다. 유튜브와 책을 끌어안고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 기다리기보단, 직접 손을 대며 현장에서 길을 만든 셈이었다. 남의 프로젝트를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장에서 근무하는 반장님들이 시공한 작업을 보고 배우며 기술을 습득한 그는 결국 기술을 넘어선 구조를 이해하는 사람으로 성장해 있었다.

과거 스타트업의 CEO로서 청년창업사관학교, 글로벌 창업사관학교 500스타트업 선정 등을 통해 기업가로서의 역량과 아이디어의 우수성을 입증받았던 바 있었던 배다솜 대표는 당시에 쌓아 올린 글로벌 비즈니스 감각을 살려 최근 베버리힐즈 호텔&메디스파 인테리어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본격적인 미국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사진은 호텔 내에 있는 메디스파&호텔 클라이언트들과의 기념 촬영 사진.ⓒ 저스트인타임
과거 스타트업의 CEO로서 청년창업사관학교, 글로벌 창업사관학교 500스타트업 선정 등을 통해 기업가로서의 역량과 아이디어의 우수성을 입증받았던 바 있었던 배다솜 대표는 당시에 쌓아 올린 글로벌 비즈니스 감각을 살려 최근 베버리힐즈 호텔&메디스파 인테리어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본격적인 미국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사진은 호텔 내에 있는 메디스파&호텔 클라이언트들과의 기념 촬영 사진.
ⓒ 저스트인타임

 

버티는 자의 시간 위에 지어진 공간
사람들은 그의 카페인 ‘저스트인타임’에 대해 종종 묻는다. 이 공간이 돈이 되느냐고. 배다솜 대표는 고개를 젓는다. 돈보다는, 누구나 편하게 공부하고 작업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 그에게 더욱 중요했다. 저스트인타임 카페는 단돈 2만 원을 들고, 누구나 편하게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의지에서 시작된 공간이었다.


  그가 이 카페를 시작하던 시기, 함께하던 인테리어 팀원 여섯 명은 하나둘 떠났다. 말 그대로 ‘각이 나오지 않던’ 프로젝트였다. 자금도, 시간도, 전망도 부족했다. 모두가 말렸고, 그 시간에 다른 걸 해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뚝심이자 의지였다. 하지만 이는 그에게 화(禍)가 되어 결국 혼자가 되었다. 낮에는 공사비를 충당하기 위해 외부 공사를 돌고, 밤이면 랜턴을 켠 채 혼자 바닥에 타일을 붙이고, 마감을 했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그는 ‘작업자’가 되었고, 누군가 시공을 거절한 부분은 아버지와 함께 마무리했다. 그렇게 7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겨울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는 저스트인타임이라는 이름에 인생의 시간을 집어넣었다. ‘언제 오픈하냐’는 조급한 질문과 ‘그만하라’는 주변의 말들 사이에서,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답했다. 직접 붙이고, 칠하고, 설계하면서 이 공간을 ‘의지의 물성’으로 바꿔낸 것이다. 배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다들 이 공간을 보고는 예쁘다고 해요. 하지만 저는 이곳이 단순히 예뻐서 좋은 게 아니라,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서도 끝까지 완공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입니다”라며 “저스트인타임(Just in Time)의 영어 뜻처럼 저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공간’이었어요. 결국 이 공간은 가장 힘든 시기에 가장 성공적으로 완료했으니까요”라고 전했다. 


  이후 이 공간은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었다. 인테리어 미팅을 위해 카페에 방문한 고객님과의 인연으로 청라에 2호점이 생겼고, 카페를 보고 간 고객들과 인테리어 계약 수주로 이어졌다. 그는 ‘공간이 주는 힘’을 다시 한번 체감했다.

배다솜 대표는 상업, 주거, 하이엔드 분야로 세분화된 인테리어 브랜드인 ‘스몰테이블’을 통해 인테리어 산업계에 환기의 메시지를 던지고자 하고 있고, 담고자 하는 의미를 확장할 수 있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을 예고했다.ⓒ 저스트인타임
배다솜 대표는 상업, 주거, 하이엔드 분야로 세분화된 인테리어 브랜드인 ‘스몰테이블’을 통해 인테리어 산업계에 환기의 메시지를 던지고자 하고 있고, 담고자 하는 의미를 확장할 수 있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을 예고했다.
ⓒ 저스트인타임

 

사람이 버틸 수 있는 구조의 설계, 플랫폼으로 거듭나다
배다솜 대표가 구축한 인테리어 브랜드 ‘스몰테이블’은 상업, 주거, 하이엔드 분야로 세분화되어 있다. 언뜻 보기엔 브랜드 확장처럼 보이지만, 그 속엔 ‘단가에 따라 구조가 달라지는 산업’에 대한 냉정한 통찰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의 다음 수는 ‘플랫폼’이다. 누구나 쉽게 인테리어를 소개하고, 연결하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 단순한 중개를 넘어, 신뢰 기반의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다. 그가 구상한 플랫폼은 이렇다. 인테리어를 원하는 소비자가 있으면, 주변 지인이 플랫폼을 통해 업체를 소개한다. 계약이 성사되면, 소개자에게는 현금 보상이, 계약자에게는 즉시 할인이 제공된다. 이 모든 과정은 인증된 업체들만 참여할 수 있고, 계약 이후의 책임 역시 인테리어 업체와 소비자와의 관계로 명확하게 구분된다.


  배 대표가 플랫폼에 담은 철학은 “같은 돈이라면 슬픈 돈은 만들지 말자”이다. 더하여, 마케팅에 큰 돈을 쓰지 않고도, 사람들의 자발적 바이럴로 사업이 운영되게 만드는 구조를 설계 중이다. 마치 배달 플랫폼들이 ‘부업’의 개념으로 확장됐던 것처럼, 이 플랫폼 역시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부업 형태로 접근해 문턱을 낮추고자 한다. 인테리어 산업의 연결 방식을 바꾸려는 시도이다. 무분별한 시공, 중도 포기, AS 불가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책임 구조’를 명확히 설정하고, 소비자와 시공업체 모두가 손해 보지 않는 생태계를 구상 중이다.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며 직접 시공까지 해본 사람이 플랫폼을 만들고 있으니, 어디서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누구보다 잘 알아요”라며 자신감을 내비치는 배 대표다.


  그는 이제 기술자가 아니라 구조 설계자로 나아가고 있다. 플랫폼이라는 말은 흔하지만, 그 안에 담긴 구조는 흔하지 않다. 그리고 배 대표는 지금 그 흔하지 않은 설계를, 가장 현실적인 자리에서 묵묵히 완성해 나가고 있다. 독학과 현장 경험, 시스템 이해, 시장 인식까지 갖춘 그의 다음 무대는, 인테리어가 아닌 사람이 모이고 신뢰가 쌓이는 구조 자체가 될 것이다.

 

무일푼으로 시작했고, 일꾼으로 버텼으며, 기술자로 배우고, 설계자로 진화하고 있는 배다솜 대표. 그의 여정의 끝은 아직 쓰이지 않았다. 손에 쥔 것이 많지 않았기에 더 치열했고, 준비된 것이 없었기에 더 많이 뛰어야 했던 그 길 위에서, 그는 묻지 않았다.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단단히 빚어진 오늘의 배다솜 대표는 구조를 설계하는 청년이며, 현실을 다시 그리는 기획자다. 그리고 그의 모든 시작은 결국 사람이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한 믿음에서 출발했고, 그 믿음은 그가 더 높은 곳에서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는 가장 큰 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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