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것들
2025년 3월 22일.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은 삽시간에 안동과 청송으로, 동해와 맞닿은 영덕까지 번졌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새빨간 불길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다. 약 3만3천 명의 우리는 집과 일터를, 이 나라의 유산을, 가족과 친구를 잃었다. 그로부터 두 달이 흘렀다. 다시 마주한 의성과 안동의 풍경 앞에서 지난 시간을 가늠하고 회복할 내일을 그린다. 여전히 누군가는 검고 붉은 산과 나무, 뼈대만 남은 비닐하우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잔해와 함께 그곳에 있다.
이른 여름의 때아닌 단풍처럼 바싹 타버린 소나무 아래. 초록 새순이 제 힘 자랑이라도 하듯 언덕 가득 번져 있다.
까맣게 탄 나무 껍질이 떨어져 나간 자리, 그을린 나무 기둥의 색이 꼭 화염 같다.
의성 고운사에는 지금도 미약하게 탄 냄새가 난다. 전소된 범종각의 자리에는 금이 간 종만 덩그러니 남았다. 누군가의 염원이 담긴 기와불사를 땅처럼 밟고서.
연둣빛 새잎을 틔운 나무의 밑둥에는 스쳐 지나간 불길의 흔적이 선연하다.
쓰러져 뒤엉킨 나뭇가지와 까만 재로 덮인 산. 오후 3시에 드리운 새카만 밤 같은 풍경.
의성 단촌면 구계리. 도로변 공터에는 본래의 형체를 짐작도 할 수 없는 잔해만 널브러져 있다. 건드리면 부서질 듯 위태로운 빈 수레 사이에서도 애기똥풀은 샛노란 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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