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전시현 기자]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디지털 자산 허브’ 구축을 국가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를 위한 현물 기반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원화 결제 스테이블코인 발행, 토큰증권(STO) 법제화 등 굵직한 공약들을 내놨다.
국내 1800만명 규모의 암호화폐 투자 현실을 감안, 투자자 보호와 시장 활성화를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업계는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분위기지만 한편에선 실효성과 실행 가능성을 두고 신중론도 적지 않다.
◆ 현물 ETF 도입, 여전히 높은 기술·제도 장벽
이 대통령은 “청년들의 자산 형성과 미래 설계 지원을 위해 안전한 투자 환경을 만들겠다”며 암호화폐 현물 ETF 합법화를 대선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암호화폐 시장의 제도권 편입을 통해 투자 안전성을 높이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관련 정책은 금융당국의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다.
현물 ETF 도입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적지 않다. 국내에서는 증권사의 암호화폐 직접 거래가 금지돼 있어 ETF의 기초자산인 비트코인조차 금융사가 보유할 수 없는 실정이다. 아울러 암호화폐를 안전하게 보관할 국내 커스터디(수탁) 기관도 전무하다. 전통적 주식 ETF의 경우 은행이 수탁을 맡지만 디지털 자산 보관 경험을 지닌 곳은 없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미국의 경우만 해도 11개 현물 ETF 가운데 8곳이 코인베이스에 수탁을 맡기고 있다. 여기에 가격 변동성을 방어할 헤지 수단 역시 부족해 운용사는 위험에 직접 노출될 수밖에 없다. 파생상품 부재로 인해 미국 선물시장에 의존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지난달 20일 열린 '현물 ETF 도입 방안' 심포지엄에서 유진환 삼성자산운용 상무는 “암호화폐 ETF의 안정적 운용을 위해 파생상품 시장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비트코인 현물 ETF가 가상자산 ETF 발전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파생 시장이 동반되지 않으면 다양한 상품 개발엔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 원화 스테이블코인, 달러 중심 시장의 장벽
이 대통령은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한 ‘원화 스테이블코인’ 육성도 약속했다. 달러 중심의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벗어나 금융 주권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98%가 달러 기반이다 보니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수요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암호화폐 시장에서 원화가 달러처럼 기축통화로 자리 잡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외 거래소나 주요 결제망과의 연동 역시 쉽지 않은 과제다.
거래소-은행 독점 연동 체계도 변화가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은 ‘1거래소 1은행’ 연동 폐지를 검토 중이다. 현 체계에서는 거래소별 단일 은행과 실명계좌만 연동할 수 있어 시스템 장애 시 전체 거래가 한꺼번에 막힌다. 다중 은행 연동이 허용되면 보안과 신뢰도는 높아지지만 자금세탁방지 시스템 강화라는 과제 역시 뒤따른다.
◆ 투자자 보호와 시장 활성화 갈림길…관건은 '속도'와 '실행력'
이 대통령의 공약은 투자자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암호화폐 양도소득 과세 기준은 현행 25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상향 조정됐고 손실 이월 공제도 5년간 적용된다. 암호화폐 거래 수수료 역시 현행 0.2%에서 인하해 증권사 간 경쟁을 유도한다는 계획도 담았다.
핵심은 제도 정비 속도다.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 당시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후 4개월 만에 시장 규모 600억달러를 돌파한 것과 달리 국내 도입 지연시 글로벌 유동성 확대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블록체인 기업의 해외 유출이 뚜렷한 가운데 규제 완화 없는 정책이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민주당은 디지털자산위원회 신설, 토큰증권(STO) 허용, 실물 자산 토큰화, 장외 유동성 플랫폼 육성 계획도 내놓았다.
이재명 정부의 암호화폐 정책이 기업가 정신을 자극했다는 점에선 긍정적 평가가 따른다. 하지만 현물 ETF 도입과 관련해서는 올해 안 실무 태스크포스(TF) 구성 여부가 정책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처럼 그대로 따라가기에 앞서 커스터디 기관과 파생상품 연동체계를 먼저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류경은 고려대 로스쿨 교수 역시 “법인 계좌 허용은 점진적 도입이 바람직하다”면서 “현물 ETF는 자본시장법 위반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기존 금융사가 가상자산을 직접 수탁할 수 있도록 할지 가상자산 사업자에게 금융업 인가를 부여할지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며 “이용자 보호법 등 인프라 정비 없는 가상자산 ETF 도입은 시기상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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