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노태하 기자] SK와 LG 등 기업들이 비싼 전기료 등을 피해 한전을 거치지 않고 직접 전력 구매에 나서면서 기업들 사이에서 탈(脫)한전 움직임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한전은 수년간 거액의 누적 적자에 시달리다가 최근 전기요금 인상에 따라 재무구조 개선 기대를 하던 참에 대형 고객들의 이탈이라는 복병을 맞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한전이 이같은 위기 타개를 위해 기업들이 이용하는 한전의 망 이용료 인상 등 조정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한전은 당장 망 이용료 조정을 검토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전은 2일 전력직접구매에 나선 기업들에 대응해 망 사용료 인상 등 조정에 나설 것이란 일부 전망에 대해 당장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일축했다.
한전 관계자는 "한전은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한 자구노력을 지속 추진하고 있으며 합리적인 전기요금 운영 방안을 지속 고민하고 있다"면서도 "전력직접구매 고객들로 인한 망 이용 요금에 대한 조정을 별도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전력직접구매제도는 계약전력 30MW 이상 대형 전력 소비자가 전력거래소를 통해 전기를 시장가격(SMP)으로 직접 구매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 제도는 2001년 도입됐으나 원가 이하로 책정된 전기요금 탓에 활용도가 낮았다.
그러나 최근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이 누적되면서 기업들은 다시 제도에 주목했고, 산업부 전기위원회가 지난 3월 관련 규정 개정을 의결하며 제도 시행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전이 수년간 누적 적자를 기록한 배경에는 연료비 급등과 그에 따른 요금 인상 지연이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위기,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에너지 수급 불균형 등으로 연료비가 급등했지만, 정부는 물가 부담 등을 이유로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 한전은 2021년부터 3년간 43조 원에 달하는 영업적자를 떠안게 됐다.
이제 막 전기요금 정상화를 통해 적자 개선에 나서려는 상황에서, 주요 전력 소비처들이 경제성을 이유로 직접 전력 구매에 나서는 것을 두고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기업들이 저렴한 전기요금 혜택을 누리다 요금 인상이 시작되자 탈한전에 나서는 것은 결국 부담을 가정용·중소기업 요금으로 전가시키는 셈이며 이에 따라 망 이용요금, 송배전 서비스 비용 등 공익적 성격의 비용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전력직접구매제는 대용량 수요처만 이용 가능한 구조로, 중소기업이나 일반 소비자는 접근 자체가 어렵다. 이에 따라 전력시장에서 선택권이 있는 일부 기업과 그렇지 않은 소비자 간의 격차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고 있다. 특히 대기업들이 대규모 전기 구매를 빠져나가게 되면, 고정비용을 회수해야 하는 한전 입장에서는 재무구조 부담이 더욱 커지며 요금 불균형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기업들은 시장 논리에 따른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전력직접구매제도는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최근 전기요금 급등은 제조업을 비롯한 산업계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기업 입장에서는 합법적인 제도 내에서 보다 저렴한 전기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에너지 소비가 많은 기업일수록 생산비용 절감에 대한 압박이 큰 만큼, 전력직접구매제도는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또한 일부 기업들은 전력직접구매제도를 통해 재생에너지원을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ESG 경영을 중시하는 글로벌 시장 환경 속에서 RE100을 비롯한 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직접구매를 통한 재생에너지 도입은 단순한 전기요금 절감을 넘어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전략으로 활용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력직접구매제도는 정부가 정한 제도인 만큼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 절감과 재생에너지 확보라는 현실적인 이점을 보고 활용하는 것”이라며 “지금처럼 산업용 전기요금이 높은 상황에서는 자연스러운 선택”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SK어드밴스드, LG화학, SK이터닉스, 한국수자원공사 등 주요 기업들이 전력직접구매제도(PPA)를 활용, 한전을 거치지 않은 전력 조달을 통해 전기요금 절감하는 동시에 ESG 경영 실현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SK어드밴스드는 전력시장 직접구매를 신청한 첫 사례로,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비용 절감을 위해 전력거래소를 통한 전력 조달을 추진하고 있다. LG화학 역시 전력직접구매를 신청해 전기요금 부담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SK이터닉스의 경우 RE100 이행을 위해 40MW 규모의 태양광 발전 전력을 공급하는 직접전력거래계약을 체결했으며, 한국수자원공사는 네이버와 SK하이닉스에 수력 발전 기반의 재생에너지를 공급하는 직접전력거래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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