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경북 영주 한 밭에서 수상한 발자국이 발견됐다. 폭 10cm, 길이 17cm. 제법 큰 크기의 흔적이다. 발톱 자국도 뚜렷했다. 전문가들은 덩치 큰 개의 흔적으로 추정했지만 마을 사람들 사이에선 표범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 이 발자국을 계기로 오래된 표범 목격담이 다시 주목받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현재 한반도에서 표범은 사실상 자취를 감춘 상태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후 야생에서 목격된 사례가 거의 없고 현재는 더 이상 자연 서식 개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반도에 살던 표범은 '아무르표범'으로 분류되며 이 아종은 세계적으로도 극소수의 개체만이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국경지대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표범의 국내 목격담은 그동안 여러차례 있었다. 2006년 경북 북부, 2002년 경남 사천과 기장, 함안에서도 비슷한 발자국과 목격담이 이어졌다.
정체불명의 큰 동물이 출몰했다는 소식은 수년 간 반복돼왔다. 발자국은 남았지만 사냥 흔적이나 배설물, 영역 표시 같은 직접적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표범은 어떤 동물인가
표범은 고양잇과에 속하는 육식 동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전역의 숲과 초원에 걸쳐 분포한다. 몸길이는 약 1.2~1.5m이며, 꼬리는 몸 길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 균형 잡힌 움직임을 돕는다.
털은 황금빛 바탕에 장미꽃 무늬처럼 생긴 검은 반점이 흩어져 있어 주변 환경에 자연스럽게 위장할 수 있다. 이러한 무늬는 개체마다 모두 달라 표범을 식별하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탁월한 은신 능력과 민첩성을 가진 표범은 주로 야행성이며 먹이를 사냥할 때는 조용히 다가가 순식간에 제압한다. 다른 육식 동물과 달리 사냥한 먹이를 나무 위로 끌어올려 보관하는 습성이 있어 ‘나무 위의 사냥꾼’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는 경쟁자인 사자나 하이에나로부터 먹이를 지키기 위한 전략이다. 표범은 가젤, 원숭이, 작은 포유류뿐 아니라 때로는 조류나 파충류도 먹는다.
한반도서 무려 7000년 넘게 살아 온 동물, 표범
한반도는 7000년 넘게 표범의 터전이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는 줄무늬 호랑이 옆에 점박이 무늬를 가진 표범이 함께 새겨져 있다. 신라 시대 토우 중엔 표범을 형상화한 인형도 발견됐다. 고려시대 궁궐 출몰 기록,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한 표범 관련 기록은 적지 않다.
조선시대 선조들의 초상화에는 표범가죽을 깔고 앉아 있는 모습이 종종 등장한다. 고위 신분을 상징하는 소재였다. 표범과 호랑이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범'이라 묶어 부르기도 했지만, 점박이 무늬와 줄무늬를 한 몸에 섞어 그리는 경우도 있었다. 속담에도 등장한다. 검은 새끼를 셋 낳으면 줄무늬가 첫째, 점박이가 둘째, 개와 같은 셋째는 버린다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고양잇과 동물을 각각 호랑이, 표범, 들고양이처럼 인식한 전통 인식이 반영돼 있다.
표범은 한반도 백두대간을 따라 남해안에서 러시아까지 오가며 살던 동물이었다. 일제강점기엔 해수구제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해로운 짐승'으로 분류돼 집중 포획됐다. 공식 기록만 624마리, 비공식적인 밀렵까지 포함하면 수천 마리가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광복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목격됐지만 1970년 함안에서 포획된 개체가 야생 표범의 마지막 공식 기록이다. 이후 나타난 발자국과 목격담은 뚜렷한 근거가 부족해 실제 존재 여부를 증명하진 못했다.
현재 한반도에서 사라진 표범의 후손은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아무르 표범'으로 살아남아 있다. 한때 35마리까지 줄었던 개체수는 러시아 정부의 보호 정책으로 최근 약 120마리 수준까지 회복됐다. 별도 보호구역을 지정하고 서식지를 복원하며 지속적으로 개체 수를 늘려가고 있다.
여전히 남아 있는 서식 조건과 생태계 불균형
한반도는 지금도 표범이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산이 많고 숲이 우거져 있다. 고라니, 멧돼지, 노루 같은 중대형 초식동물이 풍부하다. 러시아에서 분석한 아무르 표범의 식성 자료에 따르면 노루, 꽃사슴, 멧돼지, 오소리, 여우 순으로 섭취 빈도가 높다. 이 동물들은 현재 한국 자연에도 그대로 존재한다.
표범과 같은 중대형 육식동물이 사라진 이후 고라니나 멧돼지처럼 개체 수 조절이 어려운 동물들이 급증했다. 생태계의 불균형이 생긴 것이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최상위 포식자의 복원을 주장하기도 한다. 다만 맹수의 재도입은 안전 문제와도 맞물려 있어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Copyright ⓒ 위키푸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