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끝자락, 바람이 눅눅해질 무렵 숲속 바닥이 서서히 살아난다. 남들보다 빨리 봄을 느끼고 싶은 이들이 제일 먼저 찾는 건 두릅도, 쑥도 아니다. 진짜 봄은 뿌리부터 올라오는 황새냉이에서 먼저 시작된다.
황새냉이는 일반 냉이와 생김새부터 다르다. 잎보다 뿌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실처럼 가늘고 길게 뻗은 뿌리는 수분 머금은 땅속에서 뭉텅이로 엉켜 자란다. 호미가 필요 없다. 손으로 살짝 당기기만 해도 흙 속에서 쑥 빠진다. 그래서 뿌리채 채취하는 데 큰 힘이 들지 않는다.
주로 북향 언덕에서 자란다. 햇볕이 잘 들지 않고 습기가 머무는 땅, 특히 마사토가 깔린 지역이 최적지다. 자갈 섞인 흙이라 배수가 잘되고, 그만큼 뿌리가 잘 뻗는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이런 곳을 찾으면 반드시 있다. 고라니가 자주 오가는 지역이라면 더 확률이 높다. 고라니의 배설물이 천연 거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황새냉이는 독특하게 실뿌리로 구분된다
일반 냉이는 수염뿌리가 드물다. 하지만 황새냉이는 다르다. 뿌리 전체가 실처럼 분화돼 있어 뽑아보면 차이를 단번에 느낄 수 있다. 이 실뿌리는 단순히 식물 생김새의 차이만이 아니다. 영양 성분도 상당하다.
황새냉이 뿌리에는 섬유질과 칼슘이 풍부하다. 잎보다도 뿌리 식감이 더 독특하다. 아삭하면서도 끈적한 느낌이 있어 겉절이로 만들면 고기와 잘 어울린다.
식물학적으로는 ‘냉이속’에 속하지만 종은 다르다. 한국 자생식물로 등록된 ‘황새냉이’는 학명으로도 구별된다. 일찍 피고, 뿌리도 큼직하다. 두릅이나 쑥보다 더 빠르게 자란다. 잎은 부드럽고 얇아 조리하지 않고 바로 생으로도 먹을 수 있다.
단, 땅이 습한 만큼 조심할 것도 있다. 기생충이나 세균이 번식하기 쉬운 환경이다. 따라서 황새냉이를 채취한 뒤엔 반드시 흐르는 물에 여러 번 씻어야 한다. 마지막엔 식초물에 담가야 한다. 식초의 산성 성분이 기생충이나 알을 제거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겉절이로 만들기에 적합해진다. 다른 봄나물처럼 된장국에 넣을 수도 있지만, 황새냉이는 겉절이로 먹는 게 가장 향과 질감을 잘 느낄 수 있다. 양념은 일반 겉절이 레시피와 동일하다. 고춧가루, 식초, 설탕, 액젓, 마늘을 섞고 참기름으로 마무리한다. 살짝 절여서 삼겹살이나 회에 곁들이면 특유의 향이 음식 전체를 살려준다.
농약 걱정 없는 장소에서만 캐야 한다
황새냉이는 물길 주변에서 잘 자라지만, 아무 물가에서나 채취하면 안 된다. 농약 성분이 흘러드는 지역에선 자칫 위험할 수 있다. 이걸 판단할 기준이 하나 있다.
물속에서 장수잠자리 유충이 사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 유충은 평균 3~4년을 물속에서 살면서 실지렁이, 깔따구 같은 곤충을 먹고 자란다. 농약에 노출되면 탈피하지 못해 바로 죽는다. 그래서 장수잠자리 유충이 있다는 건 그 지역이 농약에 오염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유충은 낙엽 쌓인 물웅덩이 옆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흙을 들추면 꿈틀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손으로 채취할 필요는 없다. 단지 이 생물이 있다는 것만 확인하면 된다. 채취한 황새냉이는 뿌리 형태가 멀쩡해야 향이 제대로 난다. 실뿌리 사이에 끼인 흙을 손으로 털어내고 깨끗이 씻으면 된다.
한 번 캐면 줄기 아래쪽 뿌리는 다음 해 다시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너무 어린 새싹까지 뽑는 건 피해야 한다. 큰 개체만 손으로 뽑고, 어린 건 남겨두는 게 채취 예절이다. 숲은 다음 해를 위해 남겨둬야 한다.
황새냉이는 봄에만 잠깐 먹을 수 있다. 두릅이나 쑥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 3월 초에서 중순 사이가 채취의 적기다. 이 시기를 놓치면 잎이 억세지고 뿌리도 질겨진다. 겉절이용으로 가장 부드럽고 향이 풍부한 시점이 지나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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