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서원 작가] 요즘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어화둥둥체’는 인공지능이 사용자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풍자한 밈이다. “그 질문 정말 멋지세요! 완전 감탄이에요!” 이런 말투는 처음에는 단지 재미 삼아 소비되었지만, 그 안엔 우리 일상 언어에 내재된 과장된 친절과 기계적인 반응에 대한 불편함이 담겨 있다.
과장된 친절, 자동화된 감탄, 감정 없는 호의. 실은 우리가 이미 직장, 사회생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반복하고 있는 말투가 바로 이런 것들이기 때문이다. 고객 응대에서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는 말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고, 채팅 상담은 상냥하지만 대체 누가 말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진짜 감정’보다 ‘진심처럼 보이는 감정’을 수행하는 데 더 익숙해졌다.
이렇게 자동화된 감정 표현은 일종의 감정노동이다. 문제는 그 노동이 표정과 말투로 수행되면서 점점 더 자동화된다는 점이다. 감정은 명확하게 설계되고 예측 가능해야 하며, 실수를 하면 곧 사과하고, 정중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어느새 하나의 메뉴얼처럼 여겨진다.
‘어화둥둥체’는 그런 현실을 패러디하면서도 그 안의 씁쓸한 진실을 드러낸다. 기계처럼 호의적인 인간, 감정 없는 친절을 되풀이하는 서비스의 언어. 그것은 단순히 웃긴 말투가 아니라, 우리가 내면화한 정서적 피로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이런 시대에서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감탄하고 반응하고 공유하는 감정의 순환이 너무 빠르게 이루어지는 지금, 예술은 그 흐름을 멈추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예술은 종종 불편하고, 애매하며,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지 않는다. 때로는 감정이 너무나 복잡하거나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남겨진다. 그것이 예술의 힘이다. 감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해명하지 않아도 되는 장소. 진짜 감정은 종종 침묵과 멈춤 속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The Artist is Present’다. 이 작업은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2010년 진행된 대규모 퍼포먼스였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의자에 앉아 관객과 눈을 맞췄다. 단순한 형식이지만 그 효과는 강렬했다. 관객은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그러나 어떤 말도 없이 작가와 마주해야 했다. 어떤 이들은 눈물을 흘렸고, 어떤 이들은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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