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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근육의 증가

문화매거진 2025-05-31 00:37:4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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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2시 공원을 걷다 촬영한 이미지. 사진은 밝게 나왔다 / 사진: 구씨 제공
▲ 새벽 2시 공원을 걷다 촬영한 이미지. 사진은 밝게 나왔다 / 사진: 구씨 제공


[문화매거진=구씨 작가] 걷는 것을 꽤 좋아한다고 자부하는 나는 살면서 두 명의 걷기 박사님을 만났다. 여기서 말하는 박사는 진짜 학위가 있는 박사가 아니라 ‘걷기’에 있어 개인적으로 인정하게 된 이들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걷는 것에 취미가 없고, 걷는다고 해도 20~30분 정도의 산책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서울에서 김철수 씨를 찾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걷기 박사님을 찾기 위해 처음 만나는 이들에게 종종 걷는 것을 제안한다. 대부분 거절당하지만 걷기 박사님을 찾기 위해서 선제안은 필수다. 

나의 걷기 박사님들은 4~5시간 걸으면서도 지나다니는 풍경들 사이에서 농담과 상황극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오늘 4시간 걸었다고 해서 내일 걷지 않겠다고 할 사람들이 아니며,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좋은 날씨와 길만 있다면 4시간씩이고 걸어 다닐 사람들이다. 지금 나와 함께하는 산책 박사는 그 정도가 조금은 지나칠 정도다. 그는 이사나 운동 같은 체력적으로 지치는 일 이후에도 걸어서 작업실에 가거나 집에 가는 것과 같은 제안을 빼지 않는다. 꾸준하게 즐겁게 걷는 몸과 마음의 근력을 그를 통해 계속적으로 갱신하게 된다. 

걷는 것에 경쟁과 같은 마음은 없다. 개인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가벼운 의지와 거리에서 즐길만한 개인적인 이유가 있다면 충분하다. 경험상 걷기 박사님들은 걷는 과정의 즐거움을 이미 스스로 파악하고 있다. 나는 풍경이 움직이는 것을 즐기며 다양한 간판과 도시의 변화를 마주치는 것을 좋아한다. 또는 걸어 다니면서 생각을 정리하거나 작업에 대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오며 혼잣말하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까 하는 약간의 걱정은 있지만 머릿속을 헤집어 놓던 분산된 생각의 조각들이 움직이는 풍경들 속에서 자신의 단어와 문장을 찾아가는 것을 느낀다.

걷기 박사님은 작은 것들을 찾아내는 데에 능하고 귀여운 것을 발견하는 것에도 능하다. 도시에 붙여진 크고 작은 포스터와 홍보물뿐만 아니라 주차 금지 표지판처럼 사용되는 투박한 구조물들, 단순한 낙서와 담벼락의 경고 등 흔적들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다. 그들의 발견은 종종 작업에 동원된다. 그들은 날씨를 즐길 줄 알고 사계절과 온도와 습도 등의 변화를 여러 감각으로 기억한다. 비가 오는 날은 걷기 힘들기 때문에 좋은 날은 저금하듯이 꼭 걸어야 하는 날로 통용된다. 그들은 사계절을 촘촘하게 기억한다. 재미있게도 대부분 길을 잘 기억하지는 못하고 지도를 잘 보는 편도 아니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박사님들은 빠른 길보다는 안 가본 길을 선택하며 지도를 보지 않고 길을 잃는 것을 즐기기도 한다. 적어도 나의 걷기 박사님들은 그랬다. 

작업을 위해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니 약 5만 보를 채우게 되었다. 아침부터 시작한 돌아다니는 리서치는 두 시가 되어서야 멈출 수 있었다. 하루종일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두 번 돌았고 마지막은 어두운 공원을 헤매듯이 걷게 되었다. 어둠 속에서의 하늘과 나무는 채도가 아닌 명도로만 구분할 수 있었고 마치 꿈속 같은 그 풍경을 걸어서 나아갔다. 모든 것이 흐림 필터를 넣은 것처럼 흐릿하고 멀리 있는 것과 가까이 있는 초록색의 나무는 모두 같은 검은색처럼 보였다. 

걷기 박사님과 함께한 새벽 두 시 공원 걷기는 꿈처럼 지나갔다. 걷는 것을 좋아하지만 어둠 속의 걷기는 무서웠는데 오늘 두려움의 벽을 허물고 또 다른 걷기 근육을 키우게 되었다. 앞으로 몇 명의 걷기 박사님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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