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구씨 작가] 사람들이 작업실을 방문했다.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이것이 무엇이고 저것이 무엇인지, 전체적인 작업과 방향과 그 의미들을 물어보았다. 어렵지 않은 질문들에 답을 하며 떨리는 마음과는 달리 뱀 같은 혀의 능청스러움에 실시간으로 놀랐다. 작업을 설명하며 작업노트의 말보다도 일반적이고 단순한 문장들이 입 밖으로 나왔고 어떠한 질문을 무겁게 누르고 흐리게 만들어 그 순간을 모면했다.
모두가 떠나고 북적거리던 작업실이 고요해졌다. 여러 질문이 돌아다니던 작업실에 홀로 남아 작업을 바라보았을 때 아무것도 변한 게 없음에도 약간은 해진 듯한 작업과 텅 빈 작업실 그리고 그 안에 있어야만 하는 사실에 답답해졌다. 그렇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갈 용기도 없었기 때문에 이것저것을 만지작거리다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본래의 루틴대로 작업실을 나섰다. 불편한 신발에 발이 아팠고 하루종일 운동화에 쓸려 작게 벗겨진 뒤꿈치와 왼발의 새끼발가락 쪽이 약간 까진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불편함에서 오는 생각의 분산에 오히려 안도하며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
매일 반복되는 비슷한 하루 속에서 작업은 완성되고 나는 소모된다. 그 과정에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어떠한 생각 없이 나아가고만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최대한 빨리 돌아 다시 왔던 길을 똑같은 시간을 들여가는 것이다. 작업을 하면서 가장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정신을 차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는 것인지, 내 방향 설정이 본래 가고자 했던 방향이 맞는 것인지. 가끔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아주 느리게 걸어본다.
느리게 걷다 보면 보기 싫은 것들도 찬찬히 들여다보며 걷어야 해서 어떤 시간은 벌을 받는 것처럼 괴롭다. 앞으로 걸어가면서도 계속해서 경사가 낮은 곳으로 향하는 기분이다. 낮아지면 모든 작은 말들이 크게 들린다. 작은 말에 휘둘리는 마음과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작업실로 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머무는 것이다.
오늘따라 놓친 것들, 놓치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작업을 하며 보내온 그 시간 사이로 얼마나 많은 기회와 사랑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일까 생각한다. 놓치고 만 것들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놓쳤다는 생각에 상심하게 된다. 아무것도 놓치지 않았다는 단호한 마음이 분명 크지만 시간이 지나 어느 날, 어느 순간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들이 가까이 오게 되는 그런 괜한 걱정을 해본다. 지금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것들로 인해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이 최선이 아니게 되는 순간이 올까 봐 무섭다는 생각을 한다.
후회하는 것이 무서워 최선을 다하고 싶다. 아침과 저녁 그 사이에 작업을 (열심히) 해야만 편하게 잠이 들 수 있는 것은 나의 두려움 때문일까... 그러나 한 걸음만 뒤로 물러서 생각하면 작업실에서 작업을 해도, 하지 않아도 오랫동안 골똘히 고민해도 모든 것이 계속해서 부족하게 느껴진다. 밑 빠진 독.
깨어있는 모든 시간을 투자한다고 해서 잘 되는 것이 작업이 아니라는 사실은 절망적이고 올바르다.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있는 것을 노력의 기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새로운 나만의 규칙을 찾아내야 한다. 잘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것을 해내야 하고 계속하기 위해서는 잘 해내야만 한다. 턱을 괴고 한참을 걷는다. 이상한 자세로 걷는 사람이 된다. 나는 뭐가 부족한 것일까. 한참 고민하며 익숙한 어두운 길을 걸어 어두운 방으로 향한다. 하루에 무척 많은 순간에 하늘을 보지만 그렇게 멋진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 오늘은 그렇게 생각이 뻗어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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